‘염화미소(拈花微笑)’
‘염화미소(拈花微笑)’
  • 범현이
  • 승인 2010.03.26 18: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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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마음으로 부처를 닮아가는 작가 김두석(43)

▲ 김두석 작가.
프롤로그

2~3년 전부터 여러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가의 도록을 보았다. 작은 아기 부처의 미소가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운주사 작은 연못 입구에서 만나는 작은 아기 부처의 석상과도 같은 이미지였다. 작고 애잔한 미소. 항상 머금고 있는 미소. 볼수록 평안함을 갖게 하는 미소.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 작가를 만나러 간다. 터널 안에 들어서면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로 가는 터널이다. 작은 또 다른 세상을, 작가만의 세상을 향해가는 게임 속으로 들어가 미로 찾기를 즐기는 우주게임. 순간 빛이 보이고 다시 터널로 들어서서 어디에서 다른 세상과 맞닥트리는지 상상을 한다. 세상은 늘 그 자리에서 작은 움직임으로 파닥이는데 여전하게도 길 위를 서성이며 로드 페르몬을 따라 간다. 작가도 이러한 자기만의 페르몬을 따라 작업을 하지 않을까.

논과 밭 한가운데 너와지붕을 올린 작가의 작업실이 보인다. 커다란 당산나무 두 그루와 작은 나무다리. 그 옆의 정자. 부드러운 곡선이 아름다운 산봉우리. 어스름한 하늘에 젖어 바람 속에 흔들리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우보천리(牛步千里)

도자기를 전공하면서 그의 머릿속을 늘 떠나지 않은 것은 부처였다. 흙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불경, 부처의 가르침을 흙으로 표현하고 싶은 중독이 너무 강했다. 철이 들면서부터 비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작가이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비구가 되려고 절에서 생활을 했던 적도 있다. 어찌된 일인지 절에 있으면 저잣거리가 늘 내 발목을 잡았고 이곳에 뿌리를 내릴라치면 마음 한쪽이 공황으로 비어지며 절이 그리웠다”며 작가는 “어디에 있어도 부처의 자애로움과 같이 할 수 있는 찾았다. 그것이 도예였고 한 발이라고 가까이 발을 담그려 노력하다보니 부처의 미소를 주변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전파하는 일을 업으로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108배는 기본이다. 미소를 조각할 돌을 찾아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고 인연이 맞는 돌을 골라 작업실로 돌아오면 마음이 넉넉하다. 손이 빨라지며 일일이 손으로 정을 사용해 조각을 한다. “조각을 전공했으면 차라리 돌의 성질을 알아 작업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우보천리(牛步千里)이다. 미소를 생각하며 그 미소를 찾아내기 위해 정을 쬐며 열반하신 승산 스님처럼 오직 ‘할’ 뿐이다.”

작업실을 짓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사람들의 성화에 함께하기로는 했지만 혼자서 작업실을 완성하는 데는 1년6개월이 걸렸다. 날이 밝아지면 들로 산으로 냇가로 돌을 주우려 다니고 주워 온 돌은 두께 40cm의 벽을 황토와 함께 쌓았다. 처음시작은 막막했지만 하루하루 일하다 보니 어느새 작업실이 완성되어 있었다고 웃으며 말하며 작가는 이미 부처의 마음으로 넉넉해져 있다.

내 마음 속의 부처 - 세상 어디에도 부처는 있어

물레를 하다 만난 부처의 미소는 작가에게 있어 세상의 모든 것이다. 흙으로 미소를 표현 하는 데는 엄청난 인내와의 싸움을 요구했다. 전시계획을 잡아두고 작업이 끝난 작품들이 가마 안에서 부서져 전시를 취소한 적이 있을 정도의 인내이다.


정으로 일일이 조각을 한 돌들은 다시 석고를 뜨고 석고 안에 흙을 다독여가며 그 틀에 맞는 부처를 떠낸다. 건조는 그늘에서 최대한 천천히, 오랜 시간을 말린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정성들여도 정작 가마를 열어보기 전 까지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들여다 본 장작 가마 안에는 섬세한 조각을 한 부처가 균열이 간 상태로 들어앉아 있다. 작가는 너무 속이 상하고 죄송스러워 가마 안에서 꺼낼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물레로 다관을 만들었다. 지금도 이따금 작업을 하지만 그것은 생계를 위해서다. 미소 작업은 코일링도 불완전했다. 쌓아올려도 스스로의 무게를 못이긴 채 무너지고 다행히 완성이 되었다 하더라도 건조 과정이나 가마 안에서 균열이 가고 터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작업을 찾아 나섰고 만난 것이 현재의 작업이다.”

불교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불교를 알아야 부처의 미소를 더 깊게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 같은 사람, 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꿈꿔

그가 만들어 낸 부처는 하나같이 친근하다. 두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원한다. 친근함이 스스로도 입가에 웃음을 머물게 하는 신비로운 마력도 지녔다. 산 속을 걷다 우연히 만난 절벽에 그려진 마애불의 모습 그대로이다.


“옛 선조들이 암각해 놓은 듯한 마애불의 미소를 표현하고 싶었다. 빛의 방향대로, 시간의 흐름대로 각이 달라 보이는 미소, 정말 우연히 뒤를 돌아보다가 만나는 미소 등이다.”

세월의 풍화에 적당히 선이 지워지고 입가의 모습은 보일 듯 말 듯 정겹다. 자연석 그대로를 사용해 정으로 선을 만들었어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낯익은 표정으로 친근하다. 게다가 장작 가마를 사용한 느낌이 그대로 나타나 가마 안, 불의 온도와 놓여 진 위치에 따라 다르게 구워지는 미묘한 신비로움까지 올곧게 드러나 도예가 아닌 자연석 그대로의 느낌이 최대한 살아있다.

그것뿐이 아니다. 작업실의 한 벽면은 빼곡하게 장식하고 있는 도자기들로 가득하다. 어린아이가 낙서하듯 그려놓은 뼈대만 있는 탑, 걸음걸음마다 피어났다는 연꽃송이, 항상 눈을 뜨고 깨어있는 목어, 극락세계에서만 산다는 가릉비가 새까지 작가의 작품에는 불교의 경전에 대한 작은 이야기들로 가득 조각되어 있다.

“법당 안 근엄한 표정의 부처님 보다는 작은 부처, 친근한 부처의 미소를 만들고 싶다. 사는 것에 힘들어 기대고 싶은 부처, 늘 곁에 두고 부적처럼 자신을 믿게 힘을 주는 부처, 경내만이 아닌 안방으로 들어간 부처, 해학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어 언제보아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부처를 말한다.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작은 부처가 있다. 단지 찾아내지 못할 뿐이다.”

작가의 투명한 웃음은 이미 작품 속 부처의 미소와 닮았다.

문의 : 011-620-7273


에필로그

지상에서 길 잃고 허둥거리는 사람을 / 구름은 낚아 올려 제 속에서 절인다 / 소금물에 배추가 절여지듯이 / 구름 속에서 사람들은 흠씬 절여 진다 / 그의 몸속에 절여진 상태로 웅크리고 있는 / 그가 끌고 다녔던 무수한 길들이 밖으로 나와 / 빗줄기처럼 지상으로 쏟아진다 / 상한 만년필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잉크같이 / 그의 울음이 섞여 떨어진다. / 깊은 밤 구름이 울 때 / 그것은 구름의 울음이 아니다 / 구름 속에 절여진 사람의 울음인 것 / 지상에서 무수한 길을 걷고도 정작 / 제 길을 잃어버린 무수한 사람들의 슬픔인 것 / 깊은 밤 구름이 울 때 / 고개를 올려 그 구름을 쳐다보면 안 된다 / 구름 속에 절여진 사람들의 생각들이 /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눈 속 터널 등을 통해 / 광활하게 균처럼 퍼질 것이므로 / 그 순간 그자도 길을 잃고 허둥거리게 될 것이므로 - 作김충규. 詩구름이 울 때

호흡을 가다듬는 어스름녘, 점점 켜지는 불빛에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있는, 아무리 길게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에서 붉은 울음으로 흐르는 상처의 내력들.

수 만결의 바람이 뒤집히며 일제히 파닥인다. 짙은 초록의 이파리에 마구 엉겨있는 바람의 부레들이 줄기마다 헤엄쳐 다니며 반짝인다. 이마를 송곳처럼 파고들던 빗줄기와 햇살. 몸속에 너를 키운다. 살을 저미는 적막 속에 너를 가두고 소리에 몸을 기댄다. 가파른 절벽을 때리는 소리. 살과 뼛속 젖은 살로 스민다. 내 몸속 가시만 돋는다. 내 몸 속에 너를 파묻고 내 몸 속에 너를 키운다.

상처는 다음 세상으로 가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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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2010-03-29 09:02:01
돌이 갖고 있는 무던함과 듬직함안에 작가님의 진실어린 손길이
참으로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 내셨네요
김두석작가님의 작품을 인사동전시회에서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자연스러워서...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작가님의 아름다운 여정이 행복하시길, 좋은 작품을 다시 보여 주신 기자님께도
감사 드려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