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토록 처절하게 매달리는 젊은 여자
저토록 처절하게 매달리는 젊은 여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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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몰라도 조강지처 버리고는 못산다라는 말 흔히들 하죠. 그래서 실컷 나가서 계집질하던 남정네들도, 마치 큰 선심이나 쓰듯 그 조강지처에게 돌아들 옵니다. 큰 소리 뻥뻥 치면서 나갈 때와는 달리 행색 초라해진 몰골로, 젊음과 돈은 이미 몇번 바뀐 여인네들 가슴에 묻어둔 채로 말이죠 .

까미유 클로델(1894-1900)의 '중년'

생각하면 이것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말입니다. 뭐, 아직 갈 마음은 없다지만, 벌받기 싫어서 마지못해 돌아왔노라,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아, 왜 이렇게 시니컬하게 나오냐구요. 까미유 클로델이란 여자가 생각나서입니다. 이른 바 잘 나가는 여자들이 남성에 의해서 얼마나 철저히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그 처절한 드라마 같은 삶을 같은 여자 입장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결코 여유로울 수만은 없어서지요.

까미유 클로델은 그냥 두었으면 어쩌면 로댕보다, 혹은 로댕만큼의 조각가는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거의 천재 소리를 듣던 까미유 클로델은 이미 13세때 파리의 에콜 드 보자르라는 최고의 예술학교에 입학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저토록 처절하게 매달리는 젊은 여자

까미유 그 자신 아닐까



아무튼 그녀가 그 학교 교장의 강력한 추천으로 로댕을 만난 것이 18살 때이랍니다. 로댕의 그 때 나이는 마흔 둘, 막 성공의 절정에 달해 있을 때였겠지요. 둘은 급속도로 서로에게 밀착합니다. 그리곤 사랑으로 잉태된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구요. 여기까지는 여느 러브 스토리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나 로댕에겐 로즈뵈레라는 동거녀가 있었습니다. 이른 바, 그 조강지처인 셈이지요(혼인신고 유무를 떠나서 말입니다). 카미유 클로델 역시 보통 여자는 아니었나 봅니다. 늘 그의 사랑에 굶주려 했고, 그를 온전히 자기만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한 모양입니다. 카미유 입장에선 정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 로즈뵈레와의 관계를 청산하길 바랬겠지요.

그러나 이 우유부단한 남자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또 다른 새로운 여자까지 사귀는 둥, 난리를 피웠답니다. 흔히 바람피는 남자들 그런 소리 잘하지요, 외로워서 그랬어. 다 잊고 싶어서 그랬어.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실제로 로댕은 자신의 작품 여러 부분을 그녀에게 맡겨서 마무리하게 했다는군요. 조각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특히나 손이나 발 같은 중요 부위는 어지간해서는 남에게 맡길 수가 없다는군요. 즉 그것은 그만큼 그녀의 실력이 뛰어났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가 그녀의 실력을 충분히 시기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댕 미술관에 가면, 까미유 클로델의 작품이 있습니다. 그 역시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세기에 하나 날까말까한 이 최상의 여류 조각가에겐 아직도, '로댕의' 라는 소유격 대명사가 붙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그녀의 작품 '중년'(혹은 숙명, 운명으로 해석가능합니다)을 보면, 한 노파에게 끌려가는 남자를 안간힘으로 붙들고 있는 젊은 여자가 보입니다. 물론 노년이 되긴 싫고, 젊음에게 계속 발목이 잡히는 그 '어쩔수 없음'의 이미지를 조형화시킨 거겠지만 한편으로는 저 처절하게 매달리는 젊은 여자는 까미유 그 자신이 아닐까. 그리고 악랄하게 그를 끌고 가는 노파는 로즈뵈레, 남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만 결국 노년으로 상징되는 조강지처에게 끌려가는 로댕으로 보입니다.

이 난잡한 바람둥이, 죽기 얼마 전, 조강지처 버리면 지옥에라도 갈까봐 무서웠는지, 로즈뵈레를 그제서야 호적에 올려준 모양입니다. 그가 평생을 이 여자 저 여자에게 돌아다니는 동안, 한번도 한 눈 팔지 않고 그를 지켜준 순종적인 아내, 로즈뵈레. 그가 그녀에 대해 평가한 말 한 마디가 결정적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여자들을 불쾌하게 만듭니다.
"그녀는 내게 동물적으로 헌신한 여자였다".

thoughtofyou@hanmail.net (cyberjubu.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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