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온다!’
‘봄은 온다!’
  • 범현이
  • 승인 2010.02.19 20: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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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로 희망을 노래하는 인형작가 소빈(43)

▲ 소빈 작가.
에필로그

명절 전, 몇 번의 전화와 메시지를 남겼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혹 잘못된 연락처가 아닌가 싶어 다시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는 당황스러웠다.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에게 스토커처럼 무수하게 일방적인 연락을 취한 것이다. 숫자 하나를 잘못 읽은 대가로 결국은 잘못된 연락이었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괜찮수다’ 라는 답변이 왔다.

전시 중인 갤러리로 작가를 만나러 간다. 간 밤, 느닷없이 많은 눈이 내려 길 떠나려는 차  머리를 다시 돌려 제 자리로 가게 하더니 오늘은 바람마저 한 겨울 못지않게 매섭다. 무료하게 올라가는 다습한 엘리베이터의 제한된 공간. 들숨과 날숨을 타인들과 같이 하게 하는 억지에 차라리 차가운 바람을 즐긴다.

갤러리 안은 봄날처럼 화사하다. 노랗게 올라 온 튤립 한 송이가 분위기를 생생하게 하고 간간히 손바닥만 한 작은 화분에 심어져있는 야생화가 봄이 오는 것을 미리 말한다.

한 발 내딛으면서 깨닫는다. 뼈대도 없이 단지 한지에 풀만을 묻혀 만들어낸 인형들. 갤러리 안 가득 들어 차 있는 것은 ‘달’이었다. 봄보다 이미 먼저 와 갤러리를 동그랗고 환하게 껴안고 있었다.

한지인형의 새로움, 한지인형의 섬세함

기존의 한지로 만들어진 인형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 표정, 동작들이다. 한때 이 땅에 한지로 만든 인형들이 급작스럽게 유행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대부분이 산업화 과정 이전의 가족의 향수를 그리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엄마아빠의 옛날 옛적에’ 라는 이름의 대명사로 고향에 대한 향수와 유년에의 기억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인형들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었다.

▲ 작품명 <한새>

작가가 만들어 낸 한지 인형들은 향수를 자극하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한다. 작가는 “내 인형을 보는 사람들에게 봄과 같은 따뜻함, 미래를 이야기하고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의 다양성을 이야기 한다. 기다림도 있고, 절망하는 인형도 있으며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인형도 있다. 바람을 맞은 채 걷고 있고, 개를 끌고 가는 스웨터를 입은 인형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나는 우리의 표정들이고, 바로 느껴지는 생각이라는 점이다.

▲(왼쪽부터) 작품명 <그리움만 쌓이네>, <나는 아직도(still)>, <너>, <아침>

작가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은 얼굴을 가졌다. 늘 즐거운 상상 속의 작업은 늙지 않은 유전자를 그에게 선물했다. “작업을 하는 모든 것이 즐겁고 재미가 있다. 보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인형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며 멈출 수가 없이 지금까지 왔다. 아마도 일부러 하는 일이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고 말한다.

손으로 만드는 조형에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일부러 배우지 않아도 손가락을 움직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신의 손처럼 막힘없이 해 낸다. 플로리스트 자격증이나 미용사 자격증까지 손으로 해내는 자격증은 거의 가지고 있다.

언제나 희망과 봄은 함께 온다

슬프다. 슬픈 표정의 인형이다. 마흔 세 살의 남자가 만든 인형들이다. 서른여섯에 대학원에 진학해 조소를 전공하고 선택한 작업이다. 피부의 주름 하나, 머리칼, 동작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몸에 비해 무거울 정도의 큰 머리를 하고 있는 인형들은 각각의 표정과 조형으로 발받침 위에 우뚝 서 있다.

▲(왼쪽부터) 작품명 <별(wishing on a star)>, <그리움만 쌓이네>, <spring blue>

생각이 많아 머리가 커진 인형들이다. 몸통은 머리를 받치고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표정들은 하나같이 슬프다. 아니, 애절하다.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듯하다. 두 손을 가슴에 꼭 쥐고, 혹은 등 뒤로 모으고 무엇인가를 갈망하거나 기다린다. 마음을 다해 기다리는 열정이 보인다. 아직도 길을 서성여야하는 작가 자신을 보는 것 같다.

▲ 작품명 <순이>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하고 치마까지 흔들리며 <순이>는 길 위에서 서성인다. 작가는 유년시절의 우리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멀리 길 떠난 어머니를 기다리고, 퇴근해 돌아 올 아버지를 기다리며,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 하는 어린 시절의 환유이다.

어린 시절. 기다림은 정말 많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빈 집에서 늘어지게 자고 난 후 해거름 정적이 몰려들면 까닭 없이 외로워지며 눈물이 앞을 가리던 시간들. 소나기 내리는 텅 빈 마당을 바라보고 앉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던 그 막막했던 시간들. 어른이 되고 나서의 하루는 정말 빨리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지만 어린 시절의 시간은 자신의 키 높이만큼으로 돌아간다. 이 모든 기다림의 시간들이 인형의 눈빛에는 섬세하게 녹아들어 표현되어 있다.

<길 위에 서다>에서는 작가의 고뇌가 보인다. 길을 떠나려 하는 작가가 보인다. 하지만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발은 아직도 생각 속에서 머무른다. 이제 길 위에 섰으니 걸음을 떼는 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왼쪽부터) 작품명 <며칠내 오던 비>, <엄마는 20원을 빌려 조랑말을 사주셨다>, <님이 오시는가>,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아도...>

달 - 그 무한한 영속성, 그리고 잠재력

작가의 작업 중의 백미는 단연 ‘달’이다. 갤러리를 들어서는 입구에서 만난 <품>은 충격이다. 작가는 달이라고 표현했지만 보여 지는 이미지는 어머니의 자궁이다. 아니, 세상의 모든 만물을 키워주고 재워주는 달과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주는 어머니의 자궁은 동음일지도 모른다.

달과 자궁은 작가의 작품 전반에 완벽하게 녹아있다. 너무 작아서 오히려 크게 생각되고 보여 지는 인형들은 작은 조형을 넘어 우주로 나간다.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인형은 단지 인형이 아닌 채 날개를 달고 우주로 날아간다. 깊은 무중력의 공간에서, 지금 막 심장을 만들어 박동을 시작하려는 태아에게 자궁을 열어주며 달과 같이 호흡하게 한다.

▲ 작품명 <연리지>
둥근 달 안에, 어머니의 자궁처럼 그리운 얼굴하나, 작은 아기의 얼굴과 함께 샴쌍둥이로 자리하고 있다. 결코 헤어질 수도 인연을 끊어버릴 수도 없다.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그들은 자신의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한 몸으로 가야 한다. 바로 어머니와 아이이다.

<연리지>도 마찬가지이다. 인형이라고 단적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로 마주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 한 가지에서 난 얼굴이 다른 가지에서 난 얼굴과 인연이라는 끈으로 서로 칭칭 감겨있다. 엉켜진 실타래가 아니라 보이지 않은 규칙들을 이용해 스스로 자신들을 연리지로 엮어 냈다. 한 몸이 아니면 안 되는, 한 뿌리에서 비롯되었지만 더는 떨어져 있을 수 없어 서로 다른 이들이 눈치 챌 수 없는 시간동안 서로가 서로를 칭칭 동여 매 결국은 한 가지로 다시 태어났다. 그것은 사랑이다. 떨어질 수 없는 사랑.

에는 기다림과 눈물, 희망이 봄과 같이 다가온다.

문의 : 010-2799-4973


에필로그
간밤에 / 마당에 내놓은 의자 위에 흰 눈이 소복이 내렸다 / 가장 멀고 먼 우주에서 내려와 피곤한 눈 같았다 / 쉬었다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친 눈 같았다 / 창문에 매달려 한 나절 / 성에 지우고 나는 의자 위에 흰 눈이 쉬었다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 아직도 더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아직도 더 가야 한다고 / 햇살이 퍼지자 / 말고 먼 곳에서 온 흰 눈이 잠시 앉았다 쉬어가는 것 / 붙잡을 수 없었다. - 詩 의자 위의 흰 눈. 作 유홍준

이제 마음을 털어낼 때다. 가슴 속에 안아도 안아도 가라앉지 않은 무엇. 내 몸 어느 한 부분도 저리게 베어져 나간다. 아직도 내 안에 집을 짓지 못했다. 지나쳐가는 온갖 것들의 점과 선의 거리의 진실을. 찍히고 찢어진 것들이 어찌 마음뿐이랴. 허탈해 묻어 온 어두운 생각들. 불신과 몸살처럼 열나던 찌꺼기 까지 이제는 가슴에서 꺼낼 때다. 이제 하나씩 지울 때다. 이제 깨끗이 지울 때다.

눌러놓은 손톱자국 따라 영혼 속 깊디 깊은 길 하나 생겼어. 참 이상하고 이유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자꾸만 가던 길을 돌아가야 했어. 꿈속에서만 놓인 안타까운 그 길. 돌아 올 시간을 접고 다가 올 시간을 기워 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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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2010-02-20 21:38:58
글쓰시는 기자님. 주마다 잘 읽고 있습니다. 고생하십니다. 시민의 소리 신문이 발간되는 그날까지 작가탐방 연재를 계속해주세요..무리한 부탁인가요? 사실은 전북의 작가들도 매우 궁금하답니다.. 신문사 사장님. 원고료 많이 주시고 하시는 김에 전북 작가들 소개도 부탁드립니다..이번주 인형들 너무 아름다워요..작가이름도 예쁘네요..소빈.

김박사 2010-02-20 18:10:00
자주, 시간이 날 때마다 들어와 보는 작가탐방입니다.
역시 이번주도 실망하지 않게 하네요..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답고 정겨운 인형을 만들게 하는 것 같군요..좋은 작가님들 많이 소개해주시고 좋은 글 써주신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다른 필진은 얼굴이 나오는데 범현이님은 얼굴이 나오지 않네요..궁금한데 알 수가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