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월든
  • 김인순 목포 하당중학교 교사
  • 승인 2010.01.1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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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빗 소로우/이레출판사

▲ <월든>책 표지 사진.
솜털을 흩뿌린 듯 팔랑팔랑 하늘을 가득 메운 눈이 아파트 숲을 채웠다. 저 아래층 땅바닥에 하얗게 쌓인 눈 위를 허연 이불을 뒤집어 쓴 자동차가 맨들맨들 썰매를 타고 있다. 보기에도 미끄러운 빙판 세상이다. 하필 이런 날 약속이 있다. 나가면 바로 동태가 되거나 미끄러져 큰 사고라도 날 것 같은 생각에 옷을 몇 겹 껴입고, 모자며 목도리로 중무장을 했다. 어렵사리 지하에 모셔둔 차를 길에 끌고 나가는 것은 미친 짓이리라.

집을 나서자 몰아쳐야 할 폭풍은커녕, 바람이 거리 어디에도 없다. 아파트 골목을 돌아 큰 거리로 나서자 말끔하게 씻긴 차도에 차들이 질주를 하고 있다.  노란 외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나풀나풀 걸어가는 아줌마를 비롯, 사람들의 옷차림이 모두 경쾌했다. 갑자기 칭칭 감은 목도리가 거추장스러워졌다. 컴퓨터, TV, 전화, 첨단장비 다 갖춘 아파트에서 내다 본 세상은 조난당한 난파선처럼 세상과 딱 단절되어 있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가, 완전히 속은 것 같기도 했다가, 이렇게 자연을 보는 눈이 멀어버린 내가 한심하기도 했다가 혼자 어이없어 하며 걸었다. 기계에 모든 것을 의지하다보니 보이는 것도 헛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인간의 본능적인 감각이 무뎌져 버린 것이다.

내가 요즘 눈 속에 꼭꼭 갇혀 내내 읽었던 책이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월든’이었다. 영원한 고전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의 문제를 고스란히 꿰뚫는 힘이 있다. 19세기 산업사회가 완성되던 미국에서 돈과 권력과 탐욕에 눈멀어 자연을 오직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사람들에게 조근 조근 훈계를 하는 어른의 목소리가 그곳에 있었다. 백년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날의 바로 우리를 깨우는 생명의 소리였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는 전깃줄에 줄줄이 앉아 짹짹거릴 참새소리며, 눈밭을 헤집어 풀을 찾는 고라니 새끼들이며, 비닐 포대를 들고 비럭(비탈의 방언-편집자 주) 등에서 눈썰매를 타며 낄낄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풍경이 거기 있었다.

우리가 절대적인 능력이나 일로 여기며 바둥거리는 일상에 대해 “사람들은 장부를 기입하고 장사에서 속지 않기 위해 셈을 배우는 등, 하찮은 목적으로 읽기를 배운다. 고귀한 정신을 위한 독서는 없다.”라고 질책하는가 하면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두지 말라. 지금 우리는 너무 서두르고 있다.…왜 우리들은 이렇게 쫒기 듯이 인생을 낭비해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오늘 천 바늘을 꿰메고 있다. 일, 일 하지만 우리는 이렇다 할 중요한 일은 하나도 하고 있지 않다.”라고 꼬집는다.

자연과 소통하며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삶, ‘아바타’의 나비족들의 삶을 그는 이야기 하고 있다. 뭔가에 쫓겨 허덕이면서, 사람들 속에서 늘 외로운 우리들이 마음의 양식으로 이 겨울 저장해 둠직한 한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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