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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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현이
  • 승인 2010.01.15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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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공간 개념으로 다가서는 작가 박관우(41)

▲ 박관우 작가.
프롤로그

지인들에게 작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대인시장 안에 제비집이 생겼다고 이구동성이었다. 시장 안에 웬 제비집?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흘려들었던 이야기들을 오늘, 작가를 만나고서야 지인들이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 했는지를 비로소 알았다.

늘 오가는 길목, 대인시장에 갈 때마다 중고용품을 판매하는 장깡에 들리곤 한다. 작가는 그 장깡을 만들어 상인들과의 커뮤니티를 가지며 바로 옆에 제비집도 만들었다. 제비집에서 만난 작가와 다시 골목길을 걸어 작가의 작업실을 가본다. 처음으로 걸어보는 길이다. 시장 안에 꼬불한 골목길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낯설음보다는 정겹다. 시장은 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아직 눈이 덜 녹아있는 골목길을 지나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선다. 얼기설기 나무 파레트로 만들어진 작업실이다. 장깡도, 제비집도 작가의 작업실도 공통점은 파레트로 만들어졌다.

제비집 같은 작업실. 작업실 같은 제비집

딱히 작품이랄 게 없다고 손사래를 치던 이유를 작업실을 들어서자 금방 이해한다. 작가는 “설치 작품이 주조이다 보니 보관할 수가 없다”고 설명한다. 제비집에서 보았던 돌로 만든 작업들을 보기 위해 다시 제비집으로 돌아온다. 파레트로 만들어져 숭숭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돌아다니던 작업실과는 달리 제비집은 따뜻하다. 연탄난로의 화력이 대단하다.

제비가 일일이 나뭇가지를 물어와 집을 지은 것처럼 정성들여 만들어서 제비집이다. 하루를 시장에서 맞고 보내는 상인들이 들어와 담소를 나누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 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산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무인공간이어서 제비집이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장상인들은 들어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문을 닫고 들어 온 것처럼 나갔다. 우리는 이미 투명인간이었다. 작가가 이곳만 정확히 이해한다면 다른 작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던 말을 이제야 이해한다.

별게 다 있다. 파레트를 이용해 직접 만든 하얗고 초록인 제비집 안에는 엄마제비가 물어다 놓은 장애 작가들의 소품이 벽에 걸려있다. 작은 이모티콘 같다. 선반에는 작가의 돌로 만든 작품들이 대여섯 개 놓여있다.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돌과 시간의 연속성을 조형하다

시리즈로 만들어진 이 작품들의 명제는 ‘시골’이다. 작가는 석기시대를 기억해내며 작품을 재현하려 했다고 말한다. 돌이나 나무 뼈 등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석기시대와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길을 걷다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돌들을 주워 직접 깨트리거나 다듬어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은 이모티콘 처럼 다듬어져 만들어진 돌들은 작가의 의도대로 박물관 안, 석기시대의 작은 도구로 조형을 가졌다.

▲작품명 <시골>

돌들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지역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지나온 흔적이 모두 완벽하게 다른 돌들이다. 서로 틀린 의미가 아니라 다른 의미로 느낌을 가지며 흔적으로 다가온다. 흔히 만나는 돌이지만 돌의 형성과정과 그 돌이 어떤 서로와의 연관성을 지닌 채 서로 다른 환경에 놓여 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 각기 다른 지역, 다른 환경, 다른 얼굴로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이 지구상 위를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생물일 뿐이다. 어디에나 놓여있는 돌과 어디에서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성이다. 돌 하나하나를 만날 때마다 경외감이 들었다. 사람도 이런 의미로 존중하며 만난다. 각각 있어야 할 자리가 있기에 돌이 있는 것이고, 사람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다”

▲작품명 <시골>
살아가는 것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

작가는 지체2급 장애를 가졌다. 같이 걷다 물었다. 걸음걸이가 왜 그래요?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이래요 대답한다. 보기에는 별 문제 없어 보이는데 걸음을 걷는 두 다리가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새로 맞춘 안경에 적응이 안 돼 하늘은 흔들려 보이고 땅의 평형이 어긋나 휘청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작가는 의기양양 잘 걸어간다.

“다리가 장애라 해서 작업을 못하는 것은 없다. 제비집도 그렇고 장깡, 그리고 비엔날레 기간 동안 만들었던 온통 노랗던 파프리카 까지 파레트로 공사를 모두 했으니깐”

특별한 개인작업 보다는 공간 해석에 대한 사람들과의 커뮤니티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 후 이곳저곳으로 떠돌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20여 년 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다. 현재의 광주는 진도까지 가기 위한 길목이다. 조금씩 천천히 고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한 때는 미술의 경계를 고민하며 노점상을 하기도 했다. 작가는 노점의 경험이 시장 안 상인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작가들 보다는 일반인들과의 삶을 같이 하고 싶어 한다. 보여 지는것 보다는 삶의 건강성을 찾고 싶고 각각의 소중한 시간들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설치 작품.

“우리는 고호나 고갱의 그림들을 거부감 없이 보며 즐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 안과 밖에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제비집이나 장깡에서 하고 싶은 일들은 이런 일들이다. 익숙하게 다가서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과의 공간성,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이유다. 시장 안 상인들과 장애인 단체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을 알려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문의 : 010-3032-1071

에필로그

몇 날을 많이 아팠다. 누운 배게 밑에서도 소리는 웅웅 거렸다. 너무 안스러워 다독이며 괜찮다고 얼러보아도 한 번 상처 난 곳의 피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피가 배어나오지 않도록 칭칭 붕대를 감았다. 상처받기 싫어서 보이지 않았던 마음이 아무리 꽁꽁 묶어도 피가 배어 나온다. 견고하리라 생각하고 도끼로 찍어대던 곳이 사실은 대나무 속 잎 같이 파르르 떨리는 곳이라면.

기다릴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지나 온 길은 이미 다르다. 서로에게 이미 다른 길을 열었고 다른 선상에 놓여졌다. 방법은 하나다. 다시는 상처 받지 않도록 그곳을 내가 떠나거나, 아니면 기억 속에서 아예 흔적을 지워버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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