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도청별관 ‘사망선고’
옛 도청별관 ‘사망선고’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01.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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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업체, 종합평가서 최하위 E등급 판정
대책위·문광부, “부분존치 합의정신 존중”

옛 전남도청 별관이 건축물로서 ‘시한부 사망선고’를 받았다.

설사 보수·보강을 하더라도 10여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사실상 해체주문에 다름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1월12일 (주)한국구조안전기술원에 의뢰한 용역조사결과다.

그동안 도청별관 보존을 주장해왔던 시민사회단체는 즉각 용역결과에 의문을 제기했고 문광부는 부분존치 합의이행을 강조하며 파문의 조기진화에 나섰다.

■ 용역결과

문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단장 이병훈·이하 추진단)은 지난 7일 오후 광주사무소에서 ‘(구)전남도청 별관 정밀안전진단 및 지반조사결과보고’ 공개설명회를 개최했다.  

▲ 문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단장 이병훈·이하 추진단)은 지난 7일 오후 광주사무소에서 ‘(구)전남도청 별관 정밀안전진단 및 지반조사결과보고’ 공개설명회를 개최했다.

용역업체 이강일 대표는 이 자리에서 옛 전남도청 별관 건축물 상태를 ‘D등급’으로, 구조 안전성을 ‘E등급’으로 평가한 뒤 종합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E등급’ 판정을 내렸다. 또 보수·보강을 하더라도 건축물로서 그 가치가 나타날 수 없다고 말해 보존가치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대표는 “옛 전남도청 별관건물이 50년대 2층 벽돌 건물로 최초 건축된 뒤 80년 이후까지 5차례에 걸쳐 증축이 이뤄졌다”며 “건물하중과 10년 전 지하철 공사로 부등침하가 일어나 건축물의 뒤틀림 현상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주요골조를 구성하고 있는 기둥과 보에 이미 콘크리트 탄산화와 철근부식 현상 등이 진행돼 원상회복할 수 있는 보수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고 “더구나 상시하중은 물론 지진하중에 대한 구조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보강방안도 찾을 수 없는 상태”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이 대표는 이어 “사람이 거주하지 않은 상태로 구조물만 원형보존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보수공사를 하더라도 10년이 지나면 콘크리트 이탈이 가속돼 존치하기 힘들 것”이라며 “특히 게이트 안 등 부분존치 요구는 아픈 환자에게 대수술을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는 “보수·보강 방안이 있으면 제시해야 하는 것이 전문가의 의무지만 사실상 회복시킬 방법이 없다”며 “여타 전문가에게 용역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보수·보강 방법을 제시할 전문가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대책위 반응

5.18 사적지 원형보존을 위한 광주전남시도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관계자들은 용역결과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9월 문광부와 지역정치권이 지역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해 어렵사리 ‘부분존치’ 합의를 이끌어냈는데 용역결과가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하는 노심초사 때문이다.

▲ 용역업체 이강일 대표는 이 자리에서 옛 전남도청 별관 건축물 상태를 ‘D등급’으로, 구조 안전성을 ‘E등급’으로 평가한 뒤 종합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E등급’ 판정을 내렸다.

김범태 한국투명성기구 광주전남본부 상임대표는 “용역업체가 몇 군데나 조사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고 다른 분야 전문가의 의견은 구했냐”며 “역사유물은 보존가치가 있다면 흔적만이라도 남기는 데 너무 경제논리로만 접근했다”고 비판했다.

조영임 광주여성민우회 공동대표도 “전문가에 따라,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조사결과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며 “다른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전남 진보연대 유봉식씨는 “시설물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보수·보강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용역업체가 종합적으로 철거하라는 판단 근거를 제시한 것이 아니냐”며 “사적지 보존 관점으로 접근하면 다른 방안이 있지 않겠냐”고 따져 물었다.

장헌권 대책위 공동대표도 “추진단이 철거를 추진할 때는 일언반구도 않다가 부분존치를 합의해 놓고 별관에 대한 사망선고를 내리고 대수술도 안 된다고 하고 있다”며 “합의정신을 존중하고 도청별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왕선 건축사는 “E등급이라는 것은 당장에 의미 있는 시설물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의미이지 자체가 시설물의 존폐여부를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며 “구 도청에 대한 안전진단 결과는 미래의 사용을 위한 시설물의 보수·보강대책 수립의 자료로 사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추진단 입장

추진단은 일단 ‘합의정신 이행’에 방점을 찍었다. 용역발표는 단순히 사실만을 전달하는 자리인 만큼 큰 의미를 두지 말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추진단 내 전문가와 전당 설계자 의견청취라는 관문이 남아 있어 용역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김흥범 추진단 전당 시설과장은 “문광부와 10인 대책위가 별관부분 존치에 합의한 만큼 현재까지 문광부 입장은 부분보존”이라며 “비용이 얼마가 들든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건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더라도 기둥과 보를 설치해 보존하면 역사성과 상징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며 “지난 9월 합의정신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거듭 말했다.

김 과장은 이어 “추진단 내에도 구조, 시공, 구조계획, 디자인 분야 등의 전문가들이 있다”며 “이들에게 용역결과를 설명하고 보존을 위한 방법과 아이디어를 찾아 우규승 전당 설계자와 숙의하겠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건축 설계자의 컨셉이 나오기까지는 3~4개월 가량 시간이 소요된다”며 “향후 추진단장이 보존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광부는 지난해 9월 별관 부분존치 결정이 난 뒤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용역업체를 선정했으며 11월12일부터 12월 30일까지 50일 동안 별관에 대한 구조안전진단과 지반조사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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