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꿈을 찾아 떠나다
고래. 꿈을 찾아 떠나다
  • 범현이
  • 승인 2009.12.28 23:2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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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형으로 고래를 찾아가는 작가 조광석(42)

▲ 조광석 작가.
안개가 뿌옇다. 아니, 안개인지 연기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산과 하늘이 경계가 없을 정도로 모두 비슷한 색으로 뒤덮였다. 손은 핸들을, 발은 엑셀을 무감각하게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안개 속에서 한 몸으로 움직인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스며드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이 된다.

이파리 하나도 매달고 있지 않은 나무들과 그 사이를 유영하는 바람을 보고 느끼며 작가를 만나러 간다. 작가는 자주 다니는 길목, 수만리를 가기 위해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풍광 좋은 길에 자리하고 있었다.

몇 주 전, 전시회 오픈을 하기 위해 설치 준비 중인 작가를 갤러리에서 만났었고 작업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도착을 알리는 전화를 하자 작가는 쌓아져 있는 통나무 사이로 빼 꼼이 얼굴을 보인다. 얇은 벙거지 같은 모자, 톱밥가루가 잔뜩 묻어 있는 작업복, 동그란 안경. 눈빛이 맑다. 하얗게 웃는다. 바로 그 뒤. 통나무가 산처럼 쌓여져 있다.

집 - 영원한 안식처인 영혼의 집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간다. 생활공간의 흔적이 묻어 있다. 바로 눕기만 하면 좋을 이부자리, 물만 부으면 바로 끓어주는 전기포트, 잠깐씩 생각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며 명상에 잠겼을 목재들. 편백나무 향이 컨테이너 안에 자욱하게 배어있다.

반으로 나뉜 한 쪽에는 아름드리 조각 난 나무들이 다음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스스로 제 몸을 열심히 말리고 있다. 쌓아두는 것이 정리이고, 쌓아두는 것이 최고의 재산이라는 목재는 컨테이너 공간이 협소해서 더 이상은 쌓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냥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겠다.

“늘 <집>이 머릿속 화두로 남아있다. 내게 있어 집에 대한 이미지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안락함이나 쾌적함 등으로 대변되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강원도 태백 광산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태백에서 생활 한 것은 기본이고 정말 방방곡곡 여기저기 부초처럼 떠돌아 다녔다. 대학을 가기 위해 이곳 광주로 왔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 때부터 현재까지 역시 나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전히 떠돌아다닌다.”고 지난 시절을 회고한다.

▲ 작품명 <공유지의 비극>

작가에게 집은 머무르고 싶은 꿈, 스며들고 싶은 꿈같다. 맴돌아도, 늘 부초처럼 떠돌아도 해질녘 피어오르는 아스라한 굴뚝 연기를 보며 쉬고 싶은 소망, 하루 내내 마른 나무와 씨름하다 편백나무 향기와 함께 드러눕고 싶은 소망, 잘 자란 아이를 목말을 태우며 긴 길을 걷다가 팔베개를 해주며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우고 싶은 소망 등, 바로 그런 것이다.

작품 안에는 이런 소망들이 녹아들어 있다. 정밀하고 섬세하지는 않지만 꿈을 담은 집이다. 지붕이 뾰족하고 길이와 넓이가 같은 동화 같은 영혼의 집이다.

고래 -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희망, 가야할 길

작가는 물고기를 좋아한다. 자유스럽게 유영하며 따뜻하고 안락한 물을 즐기는 물고기를 좋아한다. 엄마의 배속, 자궁 안에서 태어나기 전, 작가도 한 마리의 물고기였다. 작가는 꼬리를 흔드는 꿈을 꾸며, 즐거운 상상을 하며 한 마리의 물고기로 태어났으리라.

한 때는 어락(魚樂) 시리즈를 한 적도 있었다. 원천적인 자유를 그리워해서다. 물고기와 나무는 서로 자유스러운 바다와 물, 하늘과 바람과 어우러져 한 개의 집을 짓고 다시 물고기로 태어나 유영한다.

이번에는 솟아오르는 고래다. 고래는 탄탄하고 힘찬 꼬리를 흔들어 서로 의사 표시를 하고 자유를 찾아간다.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는 꼬리를 하늘 높이 튀어 오르며 흔든다. 작가가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주는 고래는 몸통을 배제한 꼬리 부분이다.

건조한 바닥이 이미 바다의 수면이 되고 꼬리는 더 깊이 더 멀리 튀어 오르기 위해 힘차게 물을 차고 오르는 준비를 하고 있다. 각각의 꼬리는 나무를 잇댄 흔적도 없는 가지가 뻗어나는 모습을 그대로 가공한 꼬리이다. 작가는 “가능하면 인위적인 모습을 배제한, 최대한의 자연적인 맛을 살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얼굴이 다르듯 각각의 꼬리도 서로 모양과 색을 달리한다. 위치도 다르다. 서로가 꾸는 꿈이 달라 모양도 색도 특성을 갖고 있지만 이들 고래가 꾸는 꿈은 여전히 <자유>이다. 바다로 나가고 싶은 꿈, 더 멀리 깊이 헤엄치고 싶은 꿈이다.

▲ 작품명 <유영>

작가는 “물고기를 좋아한다. 특히 어린 시절 태백에서 익숙해진 고래는 늘 내 마음 한 쪽에 방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다. 직접 보지 못한 고래를 그리는 것이 어쩌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움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져 꿈으로, 자유로 남아 있는지 모른다”고 설명한다.

꿈 = 집 + 고래 - 영원히 찾아가야할 영혼

한 때는 양은으로 작업을 하던 때도 있었다. 공장에서 만들면서 사람의 손을 거치고, 다시 판매원들의 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손, 사용용도가 지나 다시 고물 집합소로 돌아오는 시간까지의 순수한 노동력을 작업 안에 넣고 싶었다. 작가는 “반복적인 육체노동은 시간이 지나면 무심(無心)의 상태로 발전한다. 내가 작품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서 자신만의 색채가 농후한 꿈과 집, 고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보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관심 밖이다. 단지 스스로 무엇인가를 정말 자유스러운 영혼으로 꿈꾸며 해내고 있다는 것, 혹은 앞으로의 꿈과, 그 꿈을 이루어 나갈 하나하나의 소망이 중요하다.

작가는 늘 자신만의 고래가 유영할 집을 짓는 꿈을 꾼다. 누구의 그 무엇도 소용이 없다. 순수한 자신만의 영혼과 자유만 소망해 녹아들어 있으면 된다.

▲ 작품명 <우주>
“정말 소망은 집을 지어 보고 싶은 것이다. 앞마당에는 분수를 뽑아내는 고래가 유영하고 기둥 하나하나를 깎아 대들보를 세우고, 잘 마른 편백나무로 따뜻한 침상도 만들고, 바람을 모아 머무르고만 싶었던 집을 지어보고 싶다. 꼭 지을 것이다”

작가는 고래를 타고 날아다닌다. 고래와 함께 유영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산(나무)에 바다(고래)의 꿈을 심는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신의 흔적을 찾아 떠난다.

“내게 있어 조각이 주는 의미는 바로 일상 그 자체이다. 조각이 삶의 목표는 아니다. 조각보다 더 좋아하는 일이 생긴다면 아마 그 일을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에 있어 조각은 일상이고 가장 좋아하고, 평생 하고 싶어 하는 일이다.”

문의 : 011-625-8976

에필로그

고래를 기다리며 /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다네 / 누군가 그 고래를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네 / 설혹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우리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다만 바라보았지 /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 기다렸네 /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 빠는 파도 보았지 / 숨을 한번 내 쉴 때 마다 그 어깨 들썩이는 그 바다가 /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생각하면서 / 귀신고래야 - 詩 안도현 · 귀신고래

또, 한 해를 보내며 한 해를 맞는다. 새 한 마리 허공을 가르며 단숨에 하늘로 벅차오름을 본다. 삶이 저렇게 단 한 번이라도 비상한 적이 있었던가. 끝내 저버려선 안 될 것들 하나 둘씩 내버리며 텅 빈 책상 위로 소리 없이 쓰러지던 내 마른 영혼들.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힘들었다. 이완, 소급, 우울, 환멸, 남루라는 단어와 동음이 된 지는 오래이다. 잠들면서도 살아갈 것을 걱정하고 죽으면서도 어떤 것을 붙잡고 있는,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

밤이면 나는 나를 껴안고 잠이 든다.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온 몸으로 나를 껴안는다. 내 모든 걸 잊기 위해.

수선화가  보고 싶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 시작 노트의 첫 장에 다시 내 이름을 쓴다.

일 년 동안 작가탐방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부디 소망이 이루어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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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고래 2010-01-06 21:49:55
고래를 꿈꾸는 작가는 필경 해바라기도 좋아할 것 같군요.
몸집은 작은 편이나 마음은 태평양일 거고....
작가님 또한 삶은 고단하나 이상은 아름다운 분이실 겁니다.
수선화! 그 고운 꽃들을 가까이서 보면 찬 꽃샘바람에 잘게 찢겨져 있걸랑요.

시몬 2009-12-31 16:02:00
창조자와 그 결실들을 찾아 떠나온 작업들에 감사와 경의를! 한 해동안 애 쓰셨습니다.
새 해에도 더 좋은 작가들을 발굴해주시고 그 향기를 소개해주시길! 당신의 못다 쓴 시를 쓰듯~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