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흔번째 생일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
  • 박현희 전교조전남지부 수석부지부장
  • 승인 2009.12.18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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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미 글 / 정용연 그림 / 청년사

▲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 책 표지 사진.
가영이 엄마 윤서영은 마흔 번째 되는 해에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미혹하지 않는다는 (四十而不惑) 불혹(不惑)의 나이에 엄마, 아내, 며느리의 이름으로 살았던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위해 반란을 시작한 것이다.

시어머니가 아픈데 전공을 살려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말한다. “당신 마음대로 해! 앞으로 엄마한테 무슨 일만 있어 봐. 그 건 다 당신 책임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는 정작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서 일상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나도 내 삶의 후미진 곳을 돌아보며 이제는 정말 ‘현모양처’일뿐만 아니라 더불어 다른 무엇이고도 싶다는 열망이 잠재워지지 않았다. 공동의 가치를 위해 일하는 아내, 엄마의 모습 속에서도 가족의 행복이 가능해야 한다는 바람이 가득했다. 윤서영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내가 시작하고 만들어가야만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삶이었기 때문에 가족의 동의 없이 교육운동을 위한 구체적인 역할을 시작했었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이름 안에 깃든 돌봄과 헌신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이었다.

기혼 여성들이 자신의 세계를 갖기까지 감당해야 하는 저항들은 각기 다른 빛깔일 수 있지만 근원은 결국 한 가지가 아닌가 싶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속에 고정된 성역할, 모성과 돌봄의 이데올로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서영은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며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건강한 여성성의 상징이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이 아프고, 때로 길을 잃곤 하지만 그 길의 끝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어린이 책 속에서 이렇듯 건강한 여성주의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여성에게 드리워진 역할들을 다시 해석하고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도전들을 어린이 문학 작품 속에서 형상화한 자체가 의미 있다. 기존의 가족주의를 부수고 새로운 의미의 가족을 완성해가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세상의 많은 윤서영들이 보다 진취적인 여성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 길에서 엄마이기에 아프고 아내이기에 힘들며 며느리이기에 버겁기도 하겠지만 다시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성이란 이름으로 우리가 걷고 걸으면 누군가의 길이 될 그날을 위해 굳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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