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치는 아해
돌 치는 아해
  • 범현이
  • 승인 2009.11.13 19:2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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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서예를 회화로 표현하는 작가 박영도(38)

▲ 박영도 작가.
프롤로그

비가 많이 오시는 날이었다. 문평 터널을 지나자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비가 급작스러운 비로 변했다. 오랜만에 쏟아지는 시원한 비였다. 일부러 멀리 나서는 길을 택했다. 어쩌면 비가 오시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9월초.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 작가의 전각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는 충격이었다. 아. 돌이 이렇게 사람의 손을 거쳐 회화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 돌은 자연이 품고 있을 때 가장 회화적이고, 가장 아름다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작가의 전각전시를 보면서 한꺼번에 무너졌다. 돌 하나 만으로도, 작가의 손을 타면 빛이 되고 여유가 되고 산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전시된 돌로 만들어진 전각들은 아름다웠다. 단지 도장, 낙관, 전각이라는 개념을 떠난 돌은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지니고 세상을 향해 강력한 흡인력을 발하고 있었다.

다시 작가를 만나러 간다. 목포시 용당동. 차가 다니는 길가에서도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각 종 책들로 작업실 벽 한 쪽이 빼곡하다. 파놓은 전각들도 켜켜이 잘 쌓아져 있다. 들여다보고 있는 내 눈 속으로 작가의 노곤한 삶과 한없는 시간들이 보인다.

전각으로 보여준 아름다운 세상 - 멋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서다. 그림을 그린 후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임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세기는 낙관과, 요즈음 새로운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전가에 대한 해석이다.

▲ 선뜻 내어주는 것-멋

<전각(篆刻) - 나무·돌·금옥(金玉) 등에 전자(篆字)로 인장(印章)을 새기는 일, 또는 그 새긴 글자>, <낙관(落款) - 글씨나 그림을 완성한 뒤 작품에 자신의 아호나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는 일 또는 이름이나 도장.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다. 중국의 옛 동기(銅器) 등의 각명(刻銘) 중에서 음각자(陰刻字)를 ‘관(款)’, 양각자(陽刻字)를 ‘지(識)’라고 하는데, 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상세한 설명이 곁들어 있다.

▲ 小欲知足

붉은 색을 찍는 행위는 우리가 하나쯤은 갖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인장(도장)이 대표이지만 전각이나 낙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적으로 각인되고 표현된다. 서예나 그림을 그린 후에는 자기 이름이나 호(號)를 쓰고 도장을 찍는다. 이 도장은 문인묵객(文人墨客) 스스로가 새기는 것이 통례이다.

▲ 水流不爭先
중국에서는 인장이 쓰였는데, 가장 발달하였던 시기는 한 대(漢代)였으며, 수많은 문인들의 손을 거치는 동안, 전각은 시(詩)·서(書)·화(畵)와 병칭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한국의 전각역사는 인장이 사용되기 시작한 고려 때부터이다. 당시는 대부분 동인(銅印)·석인이었고, 모양도 4각형, 6각형, 원형이었다.

 자체(字體)는 대부분 구첩전(九疊篆)이며 배자(配字)는 방사선식으로 되어 있어 원주를 향하여 머리를 두고 있다. 역대 임금의 많은 어보(御寶)가 만들어졌으며, 서예 ·회화의 발달과 함께 문인 스스로가 전각하는 사인(私印)이 유행하였다. 재료는 대개 부드러운 납석계(蠟石系)의 돌을 사용하고 도구는 철필(鐵筆)이라는 양날의 손칼을 사용한다.


전통을 남다른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해

“전각은 예부터 우리 문인들이 주로 사용한 순수한 우리의 문화이다. 일반인들이 생소하게 느낄지는 모르나, 문인화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일반적인 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서예나 문인화를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전각을 스스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단지 인장이나 낙관으로서 만의 기능이 아닌 회화적 이미지로 확장시켜 형상화 작업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기도 하다.

▲ 卽是現今-更無時節
작가가 전통, 그 답습에만 머무르지 않고 회화적인 느낌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 여기에 있다. 가장 전통적인 우리의 문인화 역사 안에 전각은 이미 존재해 왔고, 미미하나마 그 전통 역시 이어져 왔다.

작가는 단지 낙관으로만 치우쳐지는 전각을 다양한 해석으로, 기존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재해석한다. “대학 교과 과정 안에는 서예 뿐 아니라 전각의 과정도 있다. 서예라는 큰 줄기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공부해 왔다면 전각이라는 잔가지들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며 “서예를 공부 하던 중, 전각은 내게 의미 있게 다가 왔다”고 고백한다.

작가에게 돌은 그 이상의 의미이다. 세상의 전부이기도 하고 영혼이기도 하다. 수많은 독서를 통한 방대한 독서량은 돌에 의미를 부여한다. 단지 돌이었던 물질이 하나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물성을 버리고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식을 주는 기도의 대상이 된다.
 

편안함, 안락함,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세상의 날숨을 제공해

작품 안에는 세상의 모든 <비어있음>이 보인다. 세상을 다 비우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순간 훅! 한숨을 내쉬며 세상을 입김으로 비운다. 머릿속을 비우고 잠시 둥둥 떠 있다. 빨간 바탕의 그림을 대하는 순간 잠시 머무른다. 세상의 온갖 것 비워버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쉬어간다.

▲ 중화

한글이 그림으로 다가온다. 회화와 어우러져 글씨가 더 큰 그림으로 읽혀진다. 휴식이 된다. 안온하고 혼곤한 마음으로 잠시 세상의 모든 짐들을 벗어두게 한다. 눈으로만 읽을 수 있던 그림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가슴 안으로 비집고 들어 와 집을 짓는다. 뜨거운 영혼의 집으로 가는 길을 소리 없이 문자로, 느낌으로 일러준다.

▲ 참삶
작가는 “문자성을 잃지 않아 오히려 회화적인 요소를 더 자극해 강렬함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눈으로 굳이 읽어내려 하지 않아도 가슴이 먼저 읽는 특징을 지녔다. 먹감이 좋고 식인성이 좋아 전각은 회화자체의 인식론으로 너무나 쉽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동물도 식물도 작가의 칼끝에서 영혼을 지닌 존재가 된다. 한 마리 느릿한 달팽이도, 까마귀도, 새 한 마리도 영혼을 지니고 살아서 날아오른다.

“서예와 전각은 한 몸이다. 무엇 하나라도 덜어낼 수도, 한쪽으로만 더할 수도 없다. 형상화 작업 속에서 한 몸으로, 회화로 다가서고 읽혀져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전각 작업은 낙관과 전각의 모든 연장선이다. 이니셜, 동식물 뿐 아니라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한문과 한글 서예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고 울림으로 오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

작가는 자신의 흐름을 주변 사람들과도 넉넉히 나눈다. 전각 공부모임인 <탁마(琢磨)>의 전시회도 예정되어 있다.

문의 : 018-602-4133

에필로그

<흠뻑 젖은 잠 속에서 끙끙 앓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네가 옆에 와 있다. 창가 나뭇가지처럼 기우뚱 앉아 있다. 언제 왔냐? 물으니 답이 없다. 무슨 일이냐? 해도 답이 없다. 끙끙 앓는 소리만 새벽의 어둠을 들썩인다. 오다가 다쳤냐? 하니 절레절레. 집에서 다쳤냐? 하니 절레절레. 멀리서 다쳐 이제 왔냐? 물으니 이내 잠이 든다. / 잠이 들어 / 이내 물이 된다 / 물이 되어 내 이불을 적신다 - 詩 김준철.  너를 꾸고>

언제부터인가 자꾸 한 쪽 어깨가 쑤신다. 자갈 구르는 소리가 난다. 이불 속, 온기를 느끼며 눈을 뜨지 않는다. 언제나 혼자였다. 그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난 눈을 뜨기 싫었다. 이렇게 어디로 휩쓸려 가는가. 문득 나는 거기 서고 만다.

어둠 속에서 더 견고해지는 벽. 우리의 아픔은 닮았다. 내내 기다리는 것도, 내내 아파하는 것도, 또, 그렇게 내내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우리는 그렇게 닮아서 평행선으로 오래 걸어가야 한다. 살아가는 것이 그리움으로 커가는 한 그루 나무라는 생각이 어렴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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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2009-11-16 22:27:59
목포에서 이 분 전시회 보고 감동받았는데 이렇게 소개되니 정말 반갑고 기쁘네요.
앞으로도 좋은 작가, 소개 많이 해주세요.

범현이 2009-11-16 22:22:49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계속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나도 행인 2009-11-15 14:44:47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는 지, 정말 궁금합니다. 정보를 얻는지 구하는지 정말 발로 뛰는 기사를 쓰고있다는 생각이들어서 <시민의 소리>가 늘 기대됩니다. 문화에 대한 소양 하나 없던 내가 점점 유식해져 근 것은 순전히 기자님 덕분입니다..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