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가족과 이웃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가족과 이웃 그리고 지금”
  • 이경선 기자
  • 승인 2009.11.13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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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 지난 10일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언론학교에서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프랑스사회와 한국사회라는’주제로 강연했다.

한 국가의 사회적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지난 10일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언론학교에서 강사로 나선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은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답했다. 

신자유주의가 표방하는 무한경쟁과 자본의 논리 속에서 만연한 이기주의, 그로 인해 너무나 쉽게 유린되는 인간의 존엄성. 그러나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어쩌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이미 이윤 극대화만이 개인과 조직의 전부인 듯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논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현대인들이 누리는 물질의 풍요만으로 만족되지 않는 그 헛헛함의 원인이 바로 이것 때문이라면 우리 모두가 지금부터라도 되물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다음은 지난 10일 홍세화 편집위원의 ‘프랑스사회와 한국사회’라는 주제의 강연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한 사회의 평가기준으로 본다고 할 때 한국은 어느 지점에 와 있나.
-‘생각의 좌표’라는 책을 곧 발간한다. 현 한국 사회를 규명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책 내용의 핵심이기도 한데, 본인은 늘 ‘인간의 존엄성’을 한 사회의 평가기준 혹은 핵심 화두로 본다.
옆으로 하나의 횡선을 하나 긋자. 그리고 이 선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삶의 조건이라고 하자. 그런 다음 이 선의 위쪽에 있으면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아래쪽에 있으면 존엄성을 지키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조건에 처한 것이라고 말하기로 하자.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 중에서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 북유럽 선진국들은 거의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선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사회의 존엄성 유형은 자연스럽게 누워있는 달걀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유형은 중산층이 두터우며 고소득층의 비율은 낮다. 또 존엄성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거의 없다.
반면 한국사회는 콜럼버스의 달걀. 아래 부분이 깨지고 ‘종’으로 서 있는 달걀형이다.
깨져서 떨어져 나간 달걀의 아랫부분에 속한 사람들은 사회안전망, 사회공공성 결여, 사회적 차별 등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조건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노숙인, 장애인, 독거노인, 이주노동자, 가난한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미래의 약속보다 현재의 존엄성 지켜야 건강한 사회”

▲한국 사회와 유럽사회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은 어떤 차이가 있나.  
-톨스토이가 말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옆에 있는 일상을 같이 보내는 사람이다.” 사람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하는 것은 인간관계에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내일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으로 오늘을 저당 잡힌 채 산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자. 초·중·고등학교라는 긴 시간동안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다.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인데 아직 오지 않는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가장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대학에 들어가도 또 취업에 대한 불안이 기다리고 있고, 취업을 해도 구조조정 칼날로 불안하다. 어느 대기업 직원이 362일을 12시간씩 일하다가 과로사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벌 수 있을 때 벌자는 미래에 대한 생각만으로 살아온 사람일 것이다.
사람들이 엽기엽기 하는데 진짜 엽기는 엽기적인 일에 대해서 놀라지 않는 것이다. 엽기적인 일을 논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이 엽기다. 그렇기 때문에 용산참사 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 살았던 경험에 의하면, 남다르게 뛰어난 사회는 아니지만 우리와는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 즉, 존재, 삶, 인간관계 등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 어떤 상황이 오게 되더라도 현재의 존엄성은 지켜야 한다는 주의이다. 아무리 추락하더라도 그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하한선을 약속한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존재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현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진단한다면.
-공자가 끝까지 지켜야할 인간의 조건이 ‘수오지심’, ‘측은지심’이라 했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고,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러나 용산참사만 보더라도 현 사회의 수오지심, 측은지심은 찾아 볼 수 없다. 대한민국은 인간성이 훼손된 사회다.
우리 사회는 물질, 소유, 경제에만 관심이 지대하다. 광고 카피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당신이 사는 곳이 어디인지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보여 줍니다’, ‘부자 되세요’. 사람이 사람에게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이웃에 대한 상상력’이다.
‘당신의 사는 곳이 어디…’라는 광고를 보면서 이웃에 대한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TV도 안보나. 
돈독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현재 국민들 곳간이 엄청 찼다. 그럼 인심이 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인심이 나기는커녕 과거 보릿고개 때보다 더 각박한 사회가 됐다. IMF겪으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
1999년 프랑스에서 20년 만에 귀국했는데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를 하더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미에 ‘마음의’ 이런 말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정부가 친 서민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신자유주의가 주창하는 국가부문의 축소란 국가의 왼손은 약화시키지만 국가의 오른손은 더욱 강화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노동, 교육, 복지 등 왼손의 부처들과 오른손인 경제 부처들. 이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씨가 언급했듯 우리 사회가 눈사람사회 혹은 팔자형 사회로 가고 있다. 상류층은 대물림되며, 중산층이 감소하고, 중산층 이하는 많아지는 유형이다. 흔히들 20대 80의 사회라고 한다. (사회구성원 중 상위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경제 이론) 이런 현실은 나와 내 옆 사람에게 충실할 수 없게 만든다. 더불어 삶의 의미도 추락한다. 20대 80사회가 존속되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째는 20%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지는 현실은 아니지만 미래에는 20%에 속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비롯되는 자기배반의식이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갈등과 같이 20%에 속하지 못한 80%사이의 갈등도 한 몫 한다. 20%에 속한 사람들에 비해 떨어지는 사회에 대한 관심과 적극성 때문이기도 하다.

▲양극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프랑스의 경우는 어떤가.
-프랑스나 독일은 30대70, 유럽은 35대65 정도 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북유럽 국가들은 모든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들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의 사회적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교육·양육비를 국가가 부담한다. 뱃속에서부터 만3세까지 수당이 나온다.
또 의무교육기간인 6세부터 16세까지 10년간 교육비가 지급된다. 심지어 초·중·고 기간에 학용품비까지 지급된다. 아들이 파리1대학에 다니는데 1년 치 등록금이 의료보험료를 포함해 350유로(60만원)정도 된다.
또 프랑스 법률은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인간의 주거 공간을 세 평(9㎡)으로 규정하고, 국가가 이를 제공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학생이나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무료로 주거공간을 제공받고, 시민 만 명 이상의 지자체는 전체주택의 20%를 저임대 주택으로 건설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는 어디를 가나 어렵지만, 프랑스는 25세 이상의 실업자에게 기초생활수급과 비슷한 지원금을 지급한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시켜주는 시스템이다.
우리 헌법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가 주다. 그러나 국가의 국민에 대한 의무가 주가 되어야 한다. 무상교육과 보편의료체계를 비롯하여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끊임없는 성찰·반성으로 인간과 사회 보는 눈 틔워야” 

▲한국 교육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톨스토이는 또 말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 바로 지금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을 보면 꿈과 열정을 키워나가야 할 때 좁은 공간에서 암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차이는 ‘암기한 것을 시험 본 후에 잊어버리느냐, 시험 후에 잊어버리느냐’인 것 같다. 좁은 공간에서 자연도 친구도 벗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한국의 학생과 유럽의 학생에게 백지 한 장을 줬을 때의 반응이 판이하다.
한국학생들은 종이를 단어로 채운다. 그러나 유럽학생은 자기생각을 정리해서 쓴 글로 채운다. 이 차이가 엄중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공부를 제일 많이 하지만, 인간과 사회를 보는 눈은 전혀 뜨지 못한다.

▲앞서 짚어본 한국사회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대안을 제시한다면.
-우리는 어차피 잡초를 없앨 수 없다. 그러나 그때그때 잡초를 뽑을 수는 있다. 잡초를 없앨 궁리는 하면서 정작 오늘 잡초 뽑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르크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라고 말했다. 또 “교육이 의식을 통제하는데, 이것은 지배세력에 의해서 활용될 수 있다”고 했다.
의식을 형성하도록 하는 기제를 20이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두말할 것도 없다.

스스로에게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질문을 던져보라.
아마 상위 20%에 속하는 사회구성원들에 의해서 주입된 것이 절대적으로 많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밟으면서 의식세계를 채워나간다. 그렇다면 의식세계를 채울 내용은 누가 선택했나. 사람의 삶은 몸과 의식으로 구성된다. 몸은 삶의 상태를 규정하고, 의식은 삶의 지향점을 규정한다.

문제는 몸은 건강하지 않을 때는 자각증상이 있지만 의식은 건강하지 않을 때 자각증세가 없다는 것. 몸은 또 자신의 몸에 좋다고 판단되는 것만 주입하지만, 의식은 생각·이미지·욕망체계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주체적으로 의식형성하지 않을 경우 절대적으로 지배세력에 의해 채워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성찰과 회의가 필요하고, 그것의 방법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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