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죄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죄
  • 명등룡
  • 승인 2009.11.09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등룡(광주비정규직센터 소장)

1929년 11월 3일,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지 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년 만에 광주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일제의 폭압에 항거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났습니다. 

당시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넘어 만주를 발판 삼아 아시아 전역을 집어 삼키고자하는 야망에 들끓고 있었고, 국내외의 반일투쟁은 혹독한 탄압 앞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입니다.

그러한 때에 이곳 광주의 중고등학생들로부터 시작된 항일운동의 들불은 그해 겨울 동안 전국과 해외로 확산되어 다음해 1월까지 동토의 땅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온 민족의 가슴에 자주독립의 정신을 되살려 놓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제 과거청산 

그로부터 꼭 80년이 지난 11월 3일 정오, 광주시청 앞에는 일제 침략에 강제 동원되어 피해를 당한 어르신들과 그 정신을 이어 받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이미 오전에 광주일고 기념탑 앞에서 행사를 치렀고, 저녁에는 중고등학생들과의 80주년 기념 촛불집회를 예정해 놓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노구를 이끌고 미쯔비시 자동차 전시장 앞으로 모이셨습니다.

젊은 여성들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께서 일본에 끌려가 공장에서 일하던 당시의 작업복과 머리띠를 하고 할머니들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새삼스레 광주학생운동과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자와 근로정신 할머니 애기를 꺼낸 이유는 내년이면 일제강점 100년이고 해방된 지도 벌써 64년이 흘렀지만 오늘의 나라와 민족의 모습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위태롭고, 앞으로 다가올 추위가 더욱 완강하고 혹독한 시련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가 해방된 지 20년 만에 단 돈 3억 달러에 팔아먹은 일제청산으로 인해 100만 명이 넘는 강제동원피해자는 물론이요, 온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아픔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일본법정의 강제동원피해배상에 대한 기각 판정은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었지만 과거청산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양심적 가책이나 해결의지가 없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일본엔 저자세 민족엔 고자세 정부

그보다 더 분통이 터지는 일은 자기 나라에서도 천황이라 부르지 않는 일본국왕을 천황이라 부르고 외교적 관례에 벗어날 만큼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같은 민족보다는 외세와의 단합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현 정부의 태도입니다.

역사교과서 수정, 우리나라 우주항공산업과 관련하여 미쯔비시(2차 대전부터 지금까지 전쟁산업 주요기업)와의 협력체결, 독도문제에 대한 애매한 표현,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외세편향 정책 등 여러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 정부의 일방통행으로 인해 분단 55년 만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 형제의 정을 나누고 쌓아가던 민족이 하루아침에 다시 원수가 되어 동토의 땅으로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13살의 어린나이에 “일본에 가면 공부시켜준다”는 말 한마디에 따라갔다가 지난 70여년을 사람으로서는 차마 겪기 힘든 인고의 세월로 평생을 보내신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께서 “일찍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저의 인사에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맴돌고 있습니다. “괜찮아, 늦지 않았어, 모든 일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이야”

 ※ 꼭 한 번씩 찾아가 보시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http://cafe.daum.net/1945-815 >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