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행사의 양면성
자선행사의 양면성
  • 이경선 기자
  • 승인 2009.11.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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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닷컴]
광주 북구 우산1동은 변변한 난방시설 없이 연탄 두 장으로 겨울밤을 나는 집이 태반인 광주의 대표적 달동네다. 깎아지른 듯한 언덕배기를 오르다보니 즐비하게 늘어선 허름한 무허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2009사랑의 연탄나누기’ 현수막이 달린 연탄배달차 한대가 서 있다.

광주 5·18 부상자회가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불우한 가정에 연탄을 배달하는 온정 행사를 시작한 것이다. 좋은 취지의 행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취재를 하며 두 가지의 아쉬움이 남았다.

한 가지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했던 성경 구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선행사면 자선행사답게 조용히 실천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다. 이번 자선 연탄배달로 다만 며칠이라도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게 된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탄 나르기에 동참하겠다며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등장한 북구청장을 비롯한 정치 인사들과 그들의 동선을 따라 사방에서 터지는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는 ‘자선 행사’라는 본래의 취지는 퇴색시키고, 심지어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간접유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불우한 가정을 대상으로 한 연말 연탄무료지원 등 자선행사가 특이할만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 연탄 한 장 가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날 행사에 참여한 인사 중 아무도 대답한 이가 없더라는 것이 특히 안타까운 대목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요즘처럼 초상권에 엄격한 때에 기자를 비롯해 그날 현장에서 사진을 찍던 그 누구도 나 할머니에게 촬영 동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행사에서 연탄을 배달받게 된 나청자(68·여)할머니는 가족도 자식도 없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수 해째 시에서 기초생활비를 지급받고, 연탄도 지원받고 있다.

나 할머니는 연탄 배달 자원봉사자들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참 고맙죠”라고 반색을 했지만,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놀라 “카메라에 얼굴 찍힐라”라며 부엌문 뒤로 몸을 숨겨버렸다. ‘사생활 침해죄’는 유명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

조금 가난하다고 해서 수치심도, 부끄러움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인권존중’은 특별한 게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한번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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