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상태 ; 아귀
결핍의 상태 ; 아귀
  • 범현이
  • 승인 2009.10.30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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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허상과 허기를 작업으로 풀어가는 작가 안정(29)

▲ 안정 작가.
프롤로그

어? 선생님이셨어요?... 얼굴을 보자마자 작가가 한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장소에서 자주 얼굴을 익혔던 작가이다. 낯설지 않은 편안함이 인터뷰를 순식간에 진행하게 만들어 버린다.

사실은 나도 수인사를 여러 번 했었을 터인데 기억이 없다. 둘이 마주 앉아 우리가 언제 어디서 마주쳤는지 시간을 모자이크 해 본다. 서서히 서로 간의 장소와 공간, 같이 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너무 젊은 작가여서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은 몇 년을 더 두고 보자고 내 스스로 기억의 창고 안에 저장해 두었을 것이다.

작가탐방을 진행하면서 만난 작가들 중 가장 젊은 나이의 작가이다. 너무 이른 취재가 아닐까 많이 망설이면서도 <아귀>라는 주제를 인지하는 순간, 가슴 속은 이미 작가를 취재하기로 결정해버린다. 아름답고 좋은 예쁜 것만을 찾아나서는 요즘 그 나이의 작가들에 비해 마음의 허상과 허기, 비어있음을 잘 표현해낸 작품을 주조로 하기 때문이다.

아귀 - 그 잔혹하게 눈물 나는 허기

<아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해 아귀도에 태어난 귀신. 이승에서 욕심꾸러기로 지낸 사람이 죽은 뒤에 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겪는다’ 고 풀이 되어 있다.

작가의 작품에는 허기가 극명하게 보인다. 현대인들이 아귀 들리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문명에 대한 허기, 물질에 대한 허기 등 모든 갈망과 허상들이 작가 작품 속 주제이다.


작가는 말한다. “오랜 시간을 혼자서 살아왔다. 처음엔 가벼웠던 몸무게도 덩달아 점점 허기와 같은 분량으로 늘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공복감을 채워도 곧 다가오는 어쩔 수 없는 허기는 결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 모든 허기들이 작가의 작품 안으로 녹아들었다. 관람자가 있으나 없으나 상관하지 않고 돌아가는 영상물을 허기를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한 여자의 입을 보여준다. 입 안으로 넣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꾸역꾸역 채워 넣지만 영상 속 여자는 목이 너무 가늘어 입에 담았던 모든 것을 삼킬 수 없다. 바로 ‘아귀’다.

목이 가는 것 뿐 아니라 온갖 물질의 허영을 채운 또 다른 여자 역시 먹을 수도, 자신이 온 몸에 휘감고 있는 명품들을 정확히 소유할 수도 없다. 손과 팔이 너무 가는 기형이 그것들을 올바로 지탱할 수 없도록 구조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여러 개의 바늘을 쌓아올려 만들어 낸 구조물은 너무 강력하다. 바늘이 무기가 된다. 무기의 형상에 비해 바늘 귀는 너무 작고 협소하다. 허상이다.


내 안에 있는 허기, 내 안에 자리 잡은 아귀

현대인들은 모든 아귀들의 집합체이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 욕망의 덩어리로 뭉쳐진 잘 포장된 아귀일 뿐이라고 작가는 작품 안에서 절규한다. 입(口)으로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는 작품은 달리 설명이 필요 없다. 아이쉐도우가 꺼멓게 녹아내린 여자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입 안으로 쑤셔넣는다. 멈출 기미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처절하도록 슬픈 허상의 덩어리이다.

그 욕망의 덩어리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현재보다 좀 더 나은 환경, 좀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앞만을 보고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의 화신들은 애석하게도 자신이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터무니없는 착각에 빠진다. 알 수 없는 힘에 떠밀려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작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브레이크를 건다. 스스로 악셀을 밟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낸다. 아귀는 우리 모두라고, 귀신이 아닌 현실이라고 브레이크를 건다. 스키드 마크가 생기도록 아주 강력하게.

조소를 전공했지만 조소로 표햔해 낼 수 없는 모든 상황들을, 인지하고 있는 현상들을 퍼포먼스로도 작가는 표현한다. 비엔날레 개막식과 영상물이 그 대표이다.

“사실 영상물을 작업하면서도 거의 컴맹에 가까울 정도로 컴퓨터와는 거리가 멀다. 이상하게도 친해지지가 않는다. 아주 단순한 것, 소박한 것, 작은 것, 사람의 안정된 마음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의외였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화려해보이면서도 채워질 수 없는 허기를 작가는 사람의 소소한 마음으로 채우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작가는 딱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자신을 표현할 작업들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앞으로도 해나갈 것이다. 작품으로 자신이 느끼는 허기를 채우려 또 다른 아귀로 나설 것이다.

일시 : 11월4일까지
장소 : 롯데화랑
문의 : 011-611-3249

에필로그

눈을 깜박이는 것마저 / 숨을 쉬는 것마저 / 힘들 때가 있었다 /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 자살을 꿈꾸곤 했다 / 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 나무가 흙 위에 쓰러지듯 /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 그러나 나는 아직 / 당신 앞에 /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 - 詩류시화. 자살

바닥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바닥까지 추락했다는 것은 더 아름답다. 땅을 닮아 평평함이 나를 지탱해주고 다시 튀어오를 시간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바닥이 있다는 말은 깊이를 가졌다는 말이다. 그 깊이를 거쳐야 비로소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 세상의 허기를 다 느끼고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절대 절명의 순간을 놓아버린 시간이다.

창 뒤편으로 오래된 길이 보인다. 흘러내린 길. 텅 빈 흔적. 무채색 시간 속으로 흰 운동화 적신 얼룩에 또, 얼룩이 지고 발이 시릴 때까지, 길이 끝날 때까지 걷는다.

그로부터 나는 얼마나 많이 되돌아 왔는지, 되돌아와 또, 바라보고 있는지. 그래. 다시 올라가면 되는 거야. 툭툭 손 털고 이제 떠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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