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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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갑순 시인
  • 승인 2009.10.3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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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재혁 역/ 책세상

 

▲ <형상시집> 표지사진.
가을을 떠올리는 순간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생각난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그의 시 ‘가을날‘은 문학소녀였던 내게 사랑의 열병처럼 다가온 시였다.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고독, 낭만, 이별, 슬픔에 대해, 해답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꿈 많던 여고시절을 문학이란 열병을 앓으면서 보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를 일곱 살 때까지 여자아이로 키웠고 아버지에 의해 육군 유년 학교에서 군인 교육을 받았으나 중퇴한다. 이때가 가장 참혹한 시기로 시를 쓰게 된 동기가 되었으며 그 뒤에 프라하·뮌헨· 베를린 등의 대학에서 수학한다. 그는 《가신에게 바치는 제물들》,《나의 축제를 위하여》, 《두이노의 비가》등 사랑, 슬픔, 고독, 죽음 등의 시를 쓰고 백혈병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당시의 삶을 예술에 투영하는가 하면, 고독이나 사랑의 열병으로 괴로워하는 젊은 청년 프란츠 카푸스에게《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뮌헨 대학 시절 시를 쓰고 발표하면서 그의 생에 있어서 중요한 만남을 갖는다. 그때 그는 22살이었고 루 살로메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으며 36살이었다. 첫눈에 반한 그는 편지를 계속 보낸다. 살로메는 릴케에게 연인이자 어머니였으며 임종 직전에도 살로메를 보고 싶어 했다. 두 사람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분량이 400쪽이 넘었다. “때로는 가슴 안에 우울도 꽃이 될 수 있다네/때로는 가슴 안에 사랑도 죄가 될 수 있다네/오늘 내가 그대에게 보내는/흑장미 한송이/ 전생에 뉘 가슴에 맺혔던 피망울인지” 아마 루 살로메를 향한 사랑의 통증을 한송이 흑장미로 가슴에 맺힌 피망울로 형상화하고 있는 그는 천상 가을과 사랑의 시인이 아니겠는가.

“저는 기도하고 싶은 심정으로만 당신을 보았습니다. 저는 당신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만 당신을 열망했습니다.” 릴케의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깊어가는 가을의 발목을 자꾸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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