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다리를 찾아서
옛다리를 찾아서
  • 전고필
  • 승인 2009.10.2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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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의 농다리

삶은 유혹의 연속이다. 타자로부터의 유혹 보다는 절로 감염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더 강렬하며 지속적이고, 이를 일컬어 세인들은 절제심이 없다고 얘기한다.

여행은 내게 늘 유혹이었다. 하나 하나의 예기치 못한 지역과 사람과 상황을 만날 때 그 자체가 너무나 고혹적이어서 길을 버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늘 길 위에서 길 너머를 또 그리워하는 고질에 걸린 것이다. 그런 길에서 내게 몇 년 동안 삼팔선 같은 존재가 있었다.

바로 충북 진천군에 있는 “농다리”였다. 그 다리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로 편입되어 가다 다시 중부고속도로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다.

▲농다리 전경 마을사람들은 고려 고종때 임행장군이 효심이 강한 한 새댁이 겨울 아침 친정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찬 강을 건너는 것을 어여삐 여겨 백마를 타고 일순간 쌓았다고 말한다.

고속도로 곁 내 지역을 알리는 거대한 광고판이 있는데 생거진천이라 일컷는 그곳에는 농다리를 지나는 아낙과 사내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광고판 옆을 보면 졸아든 물이지만 큰 강이 형성되고 거기에 돌다리가 쭉 이어져 있다. 여기를 달리는 차의 속도는 시속 110킬로까지 허용된다. 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광고판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다리 또한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목적지가 그곳이 아니니 따로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아 늘 그림의 떡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가야하는데 가야하는데 라는 숙제를 스스로에게 지워놓고 있던차 3년전 겨울 드디어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농다리를 찾았다.

지방도의 구불한 길을 돌아 15킬로쯤 가니 농다리가 선연하게 눈 앞에 드러냈다. 기록에는 고려시대쯤 축조한 1,0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다리라고 하며 농다리라 명명한 것은 다리를 쌓은 모습이 마치 지네의 몸통과 다리를 엿보는 듯 하다 하여 지네다리, 농다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뜻밖의 일탈을 통하여 만난 농다리는 잠시 100여미터가 못되는 다리를 건너보는 사이에 어둠속으로 잠겨 버렸다. 만나고 걷는 즐거움 말고 담아오는 즐거움을 놓쳐 버렸던 것이 그날의 추억이었다.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또 가봐야지. 언젠가 가봐야 하는데.

그러던 차에 작년쯤에 어느 기업의 광고에 그 두명의 꼬마가 장대에 책가방을 메달고 양쪽어께에 장대를 얹고 그 다리를 지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곳을 다시 가야 한다는 마음을 부채질한 광고였던 것이다.

하지만 세속의 하루는 야금 야금 흘러가다 드디어 때를 만났다. 청주에서 워크숍을 하는 날이 온 것이다. 부지런히 청주를 가서 일을 마치고 벗들과 함께 아침의 일들을 논했다.

잠시라도 짬을 내어 농다리를 다녀오자. 불과 30여킬로도 안되는데 마침 비도 왔으니 아침 물안개가 얼마나 예쁠까. 거기에 천년의 세월동안 어떠한 홍수와 재앙으로부터도 스스로를 지켜왔다는 모습은 또 얼마나 감동적인가.

이른 아침 서둘러 길을 나섰다. 하지만 우리 보다 더 이른 사람들이 도로를 막고 있었다. 우리 행로와 공단의 출근길이 맞물린 것이었다. 도리없이 스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평원의 안개를 감상하다 길이 열려 농다리에 닿았다.

안개를 놓쳐 버린 것이 아쉬웠지만 다리는 몇해전처럼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본디 28칸의 교각이었고 길이는 100m 가 넘는 길이었는데 토사매몰로 양쪽의 2칸씩을 잃었다. 해서 지금은 24칸의 교각을 가지고 있고 총길이가 93.6m이다.

다리를 쌓은 돌의 암질은 사력암질의 붉은 색을 띤 자석으로 바치 물고기의 비늘처럼 쌓아 올려 물이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스쳐가도록 설계되어 역시 자연에서 배운 이치들은 자연과 대립하지 않고 자연에 스며들어 한 부분이 된 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었다.

▲물에 짱짱히 맞서는 다리가 아닌 물을 안아주는 다리의 모습이다. 그것이 천년의 세월을 견디게 한 말랑말랑한 힘이다.

어제 내린 비로 물색이 탁한 가운데 붉은 색의 돌들이 물에 젖어 검게 보였지만 세월의 더께가 우람하여 앞으로도 수만년은 꺼떡 하지 않을 듯 보여 한층 우러러 보였다.

그런 농다리를 두고 아래에서 보고, 조망하도록 만든 정자에 올라서 보고 이리 저리 모습을 보다 조그마한 야산의 정상에 오르니 뒤편으로 커다란 호수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의 안개는 이제 조금씩 걷어지는데 안개사이로 가을이 다가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아쉬움이 일렁인다. 쩝 한주만 더 늦게 왔으면 저 호수의 단풍까지 내것인데... 라는 부질없는 욕심 말이다.

고요하던 호수가 안개로 훈증을 하고 나니 수면을 가르는 무언가가 들어온다. 카누를 하는 친구들이 연습장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흐르는 물에서 세월을 달관했을 농다리의 뒤편에는 갇혀진 물속에서 사람이 자기세상을 떠 메고 가고 있었다.

정자를 내려 두 공간을 연결하는 조그만 재를 넘으니 성황당이 나온다. 초로의 부부가 스쳐가더니 길을 멈춘다. 구르는 돌멩이 하나씩 집어 소원을 쌓는다.

▲서낭당 삶에서 거쳐야 하는 다양한 문들이 있다. 언덕을 넘을 때, 다른 마을에 들어설 때 옛 사람은 어떤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단정하게 하고 하늘에 나의 길을 열어주길 기원했다. 아직 그 마음 유효하다.

부족한 마음 다시 서낭당 우러러 기도로 갈구한다. 그렇게 다리 구경하다 보니 어느 덧 길이 그만 내려가자 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참 튼실하고 아름다운 다리 그 유혹에 언제고 빠져들 것을 약속하며 이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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