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All or Nothing(전설; 모든 것,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
Legend; All or Nothing(전설; 모든 것,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
  • 범현이
  • 승인 2009.10.1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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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화가로 다시 세계를 향하는 작가 김광철(42)

▲김광철 작가.
에필로그

처음 퍼포먼스 아트로 작가를 만났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성경책과 국어사전을 바닥에 두고 공연 도중 한 장 한 장 손으로 찢어 둥글게 공으로 만들어 눈을 가리며 얼굴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가는 광경은 잊을 수 없는 작가만의 신체적인 언어 소통이었다.

느릿느릿, 천천히 자기만의 예술을 관객들에게 이해시켜가는 작가는 이 지역의 퍼포먼스로 이미 얼굴을 알렸다. 그런 작가가 2008년에는 평면회화로 전시를 했다. 물론 개막전에서 퍼포먼스와 더불어 관객들로 하여금 평면의 이해를 더했다.

퍼포먼스 작가라고 사람들이 익숙하게 입에 올리는 시기에 작가는 혼자서 캔버스를 앞에 두고 평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이 전공했던 회화를 다시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가를 만나러 간다. 너무 늦은 메일링으로 작업은 이미 끝났고 작가의 작품들은 화랑으로 이동 중이었다. 같이 늦은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미처 걸지 못하고 화랑의 벽에 세워 둔 100호 그림들이 좀 더 순화된 색채로 다가온다. 거기 작가의 머릿속이 환히 들여다보일 정도의 온갖 생각들이 들어있다.

퍼포먼스로 표현하지 못한 느낌들을 회화로 풀어내

2008년 작가의 평면 개인전에서 만난 그림들은 퍼포먼스 아트처럼 강렬했다. 원색을 주조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그림을 처음 접해 받는 느낌이어서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혁명의 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작품들을 하나씩 온전하게 들여다보며 흡수한다. 기분이 좋아진다. 벌거벗은 알몸을 보는듯한 느낌으로 작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 잠시 어지럽다가 그림에게 말을 건다. 아니 그림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하나하나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즐겁고 명쾌하다. 반어적이기도 하고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것들을(물체) 상큼한 색채로 즐겁게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보여 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밝고 선명한 화폭 안에는 우울과 절망과 눈물도 적당히 비빔밥으로 뒤섞여 선명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회는 그림 안에 숨어있는 모든 것들을 찾아 떠나는, 참 나를 찾는 외로운 두 번째의 여행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주 안에 내가 있다. 이미 내가 우주다. 작가는 그림 속에서 이미 둥둥 떠다니며 여행 중이다. 나. 우주를 여행하고 있어. 사람들과 열심히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통 중이다.

▲달콤한 텍스트

“전시를 기획한 후 그림을 그리며 너무 행복했다. 평소에도 우주에서 생활하면서 잠시 지구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생각의 자유와 영혼의 올곧음까지도 그림으로 소통할 수 있어서 명도 높은 색으로 형상화 할 수 있었다”

그의 화폭 안에는 우주 만물의 모든 것들이 속속들이, 혹은 빠짐없이 즐거운 상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고 있는(認知) 이미지들과,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이미 내 안에 잠겨 들어 와 있는 이미지들까지 모두가 다 가감 없는 작가만의 표현 방법으로 그려지고 노래하고, 보여 지며 혹은 만져지고 혹은 맡아지며 표현되고 있다.

▲마릴린 먼로의 요새
자유로운 의식이 분방함이 오히려 대중적 아이콘들을 생성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서서히 모든 기억들이 깨어 와 살아오면서 기억 되었던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모자이크 되면서 걸어 나온다. 소통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세계다. 우주 속에서 자아(自我) 찾기가 더 맞는 말이다. 우주 속에서 인식되고 안 되는 것들의 차이와 간극들을 쪼개고 또 쪼개가다 보면 늘 카오스에 부딪힌다. 그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세상에 빚지고 있는 마음들이 흐르는 물줄기 따라, 닫아도 다시 열리는 삶의 좁은 틈 사이로 깊게 파고든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절박함이 그의 그림 안에서는 오히려 여유로 빛나며 명랑하다.

10년만의 전시회였던 2008년 작품과는 또 다르게 순한 조형으로 나타난다. 파스텔 톤으로 부드럽다. 모서리지고 유난히 각 지던 네모들도 조금은 더 허물어지며 어눌해졌다. 이미 순화된 어떤 것들이 작가의 마음 안으로 걸어 들어 와 싹을 내렸다.

▲부르스 리의 욕조
지나간 역사 속, 사람들뿐 아니라 자연물을 등장시켜 그림의 소도구로 삼은 독특함이 더 눈에 확연하다. 붓다, 예수, 체 게바라, 아톰, 고양이, 코끼리, 마릴린 몬로, 이소룡, 프라다 칼로, 그리고 인연처럼 얽히고 얽힌 헝클어진 뇌 구조를 지닌 혹성. 작가만의 응축된 자아가 낳은 다문화는 오히려 단순해지며 아이콘들이 그림 밖으로 걸어 나와 관객들을 심오하게 만든다.

“각자의 아이콘에 특별한 개별적인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서로 어울려 조합되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길 바랄 뿐이다. 공존이 맞겠다. 개별적인 아이콘들이 모여 서로 공존 하는 것. 내가 그리고자 하는 작업 안에서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이다.”

Fortress로 더 견고해진 작가의 세계관

작업의 결과는 제목에서 보여주다시피 견고한 요새다. 사랑도 절망도, 욕망, 상처까지도 작가는 망설임 없이 토해내고 껴안는다. 그림 속 작업들은 모서리지고 유난히 각진 부분들이 서서히 둥글어지면서 불현듯 연꽃을 피워낸다. 일반적인 백련이나, 홍련이 아닌 날개가 달린 초록의 연꽃이다. 색깔도 너무나 푸르른 초록 그 자체다. 아직은 견딜만한 세상인 것을 작가는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지 날아갈 준비를 한다. 연꽃의 대 아래 작은 날개가 서서히 형상을 갖추어가며 어디든 지 날아갈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Love>는 작가의 상상력과 심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서로 밀착되어 있는 두 사람이 배를 타고 꽃송이로 항해 하고 있지만, 공중에 떠 있는 네모들로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았다. 일단 몸을 실었으나 배는 아주 작고, 꽃은 피워졌으나 화려한 꽃이 아닌 슬픔의 흰 장미이다.

▲요새; 러브

게다가 같이 ‘사랑’을 나누어야 할 대상인 한 사람은 형체조차도 아직 미확실이다. 굳이 여자 남자를 구별하지 않더라도 검은 색으로 표현 되어 있는 남자는 한 팔을 뻗어 독수리를 잡고 있지만 결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독수리는 날개를 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여자는 매우 슬픈 표정이다.

젖무덤을 온통 드러낸 여자는 메두사처럼 머리를 흩날리며 온 힘을 다해 남자를 움켜 안고 있지만 남자는 금방이라도 국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듯하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리본으로 묶어져 있는 색실을 따라 우주로 나가는 일일 뿐이다. 아니면 즐거우면서도 절망적인 상상으로 현실을 벗어나는 일이 전부이다.

다시 세계를 향하며

“예술가는 총알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자신이다. 표현의 영혼이다.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또 다른 나와, 뇌와 가슴을 구분하고 지켜보는 자아와 조합되어 소통할 수 있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소피의 휴일2

작가는 다시 퍼포먼스와 평면 작업으로 길을 나선다. 작가에게 있어 작업 안에서 표현되는 직선은 단순하도록 물질일 뿐이다. 머릿속 상상처럼 초현실주의 바탕 안에서 작가는 꿈을 꾼다. 모든 자연물과의 수직적 구도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를 모색한다. 대화를 통한 스스로의 공존과 상생이다.

2009년은 작가에게 새로운 획을 그어준 해다. 북경 오픈 페스티발에서의 퍼포먼스는 참가자와 관람객 모두로부터 경외감을 가질 정도의 찬사를 받았으며 다시 평면작업의 전시로 주목을 받는다. 작가는 평면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작업들을 더 늦기 전에 해낼 예정이며 개인전 형식의 퍼포먼스로 월드투어도 계획 중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든 작품성이 있다면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다. 난, 예술가다”

일시 : 10월14일(수)~10월25일(일)
장소 : 광주롯데화랑
문의 : 010-9432-8867

프롤로그

강의 물을 따라가며 안개가 일었다 / 안개를 따라가며 강의 물이 사라졌다 / 강의 물 밖으로 오래 전에 나온 / 돌들까지 안개를 따라 사라졌다 / 돌밭을 지나 초지를 지나 둑에 까지 / 올라온 안개가 망초를 지우더니 / 곧 나의 하체를 지웠다 / 하체 없는 나의 상체가 / 허공에 떠 있었다 / 나는 이미 지워진 두 손으로 / 지워진 하체를 툭툭 쳤다 /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 강변에서 툭툭 소리를 냈다 - 詩 오규원. 안개

내 몸이 그믐이다. 가득 찬 슬픔으로 캄캄하다. 모여 살았으나 언제나 혼자였다. 한 번 갔던 기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뒤돌아보는 법도 없었다. 식지 않은 탄식이 그믐달을 만들어 냈다.

뒤로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다. 너무 딱딱한 길을 걸어 왔거나, 혹은 너무 중량이 가벼워서이다. 저기 먼 곳. 그대. 그 먼 곳에 있으므로 캄캄한 밤에도 혼자 찬밥을 먹는다. 숨긴 물을 몸 밖으로 토해놓은 흙 위에 나는 조용히 엎드려 있다. 너덜거리고 찢겨진 마음의 끝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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