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과 탈출기
난쏘공과 탈출기
  • 리명한
  • 승인 2009.10.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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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명 한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이유 때문에 탈출을 시도한다. 외부적 강요로 자유를 잃은 처지이거나 삶 자체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을 때 하루 속히 현재의 입지를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되기를 희구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모험이 따르고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어서 성공보다는 비극적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탈출                      

엑서더스로 표현된 출애굽기는 파라오의 지배 아래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일파가 모세의 인도로 어렵게나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들의 탈출은 다행히 하나님의 비호를 받아 성공하였다고 하지만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남쪽으로 밀려 내려온 백제의 유민들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에 정착하여 문화의 씨를 뿌려주고도 그 땅의 풍토와 핏줄 속에 동화되어 자취조차 없게 되어버렸으니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탈출이었다.

5.16 정권의 급격한 산업화 정책에 밀려 이 땅의 농민들이 수천 년 동안 지켜온 삶의 터전을 버리고 아수라장 같은 도시로 흘러들어간 것은 육칠십 년대의 일이었다. 그들이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여 정착하기까지 겪은 고통과 설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데 마침 한 현장을 지나다가 그것을 목격하고 쓴 작품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이다.     

이 <난쏘공>이 발표된 것은 박정희정권의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1976년의 일이었는데, 이른바 새마을운동이라는 것을 일으켜 농촌마을을 감싸고 있는 아름드리 당산나무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베어내거나 전통적 구조물까지 허물어 회칠하면서 농촌에서 탈출한 빈민들이 의지하고 있는 판자촌을 대책도 없이 헐어낸 사건은 너무나 참담하였기에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요 아픔이었다.     

끝나지 않는 비극

그런 사건들은 일회성으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올봄에 일어난 용산 철거민 사건이야말로 그 시절의 반복적 복사판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런데 이것을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는 당국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8개월이 지난 후에야 신임 총리가 나타나 정부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 얼마나 민생과는 동떨어진 위치에서 사태를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오랜 우리의 역사는 인간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에서 벗어나 공존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의 과정이다. 여기에 필요한 사회적 룰이 바로 양심과 규범이었는데 권력을 잡은 추장이나 왕, 또는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집권자들은 끊임없이 규범과 양심을 짓밟아 뭉개면서 정글의 법칙을 적용해 왔었다. 인간에 대한 차별과 부익부빈익빈은 그런 결과물이었으니 만일 현존하는 권력이 유혹을 못 이겨 그것을 본받으려 한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반역행위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서해의 <탈출기>는 1세기 가까이 흐른 오늘의 우리에게 소중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던 신천지를 찾아 만주로 이민을 나오게 되는데 벌어먹을만한 땅이 없자 구들을 고치고 품팔이를 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다가 하루는 이틀을 굶은 임신한 아내가 길거리에서 귤껍질을 주워 먹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다시금 분발해 보지만 끝내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불행의 원인이 개인 아닌 사회제도의 결함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갓난아이를 포함한 세 식구를 버리고 개혁운동의 일선으로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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