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 먹으라는 것이 농업선진화냐”
“쌀국수 먹으라는 것이 농업선진화냐”
  • 정영대·이경선기자
  • 승인 2009.10.09 23: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포]일손 놓고 RPC 앞 농성장에 모인 속타는 농심

지난 7일 오전 10시 나주시 다시면 문동리 소재 다시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 앞. 나주농민회 회원 10여명이 천막농성장을 만드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주시 농민회는 이날부터 ▲올 추곡가 5만원 이상 선지급금 지급 ▲농협 저가미 판매 중지 ▲대북 쌀 지원 재개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협 RPC 봉쇄투쟁에 들어갔다.

▲ 나주시 농민회원들이 지난 7일 다도농협RPC 입구를 천막과 트랙터로 봉쇄하고 있다.

임종률 다시면 농민회 지회장은 “쌀 대란이 현실로 나타났다”며 “봄부터 수차례 쌀값 대책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쌀국수와 쌀라면만 먹으면 된다고 고무다리 긁는 대책을 내놓았다”고 핀잔을 늘어놓았다.

쌀값 폭락으로 시름에 잠긴 농민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정부가 뉴질랜드 등 외국의 성공사례를 포장해 야심차게 내놓은 ‘농업 선진화’ 메뉴가 고작 쌀국수와 쌀라면이냐는 것이다.

풍년밥상 차려놓고 끄니 걱정하는 것이 지금 농촌의 현실

농민들은 “정부의 안이하고 무성의한 농업정책으로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농가부채만 쌓여가는 이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당장 ‘풍년밥상’을 차려놓고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때리는 시어미는 그렇다 치더라도 말려야 할 시누이의 행태도 분노를 자아내게 만들고 있다. 농협이 지난해 사들인 재고미를 대기업 유통마트에 저가로 공급해 쌀값 폭락에 일조를 하고 있어서다.

“올 4월 농협 RPC가 자기들끼리 저가미를 넣지 말자고 약속까지 해놓고도 지키지 않고 있다. 다 강제수단이 없어서 그런 거다. 그래서 농민회가 강제하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더라. 그런데 저가기준을 제시해달라고 하니까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임 지회장은 “농협이 농민고통에 대해서는 나몰라하고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며 “재고미 저가판매로 쌀값 폭락을 부추기는 농협이 농민조합원을 위한 조직인지 의심스럽다”고 기가 막혀했다.

또 “수확기 홍수출하를 조절하고 저가미 방출 등 공동대책을 요구했지만 농협이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며 “쌀값 안정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천막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천막 앞 옹기종기 모여든 농민들의 표정 속엔 한숨과 회한, 분노로 뒤범벅 된 이상열기마저 감지됐다. 봄·여름내 논밭에서 그을린 얼굴은 수확기를 앞두고도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자식처럼 키운 나락 500kg을 길 위에 쏟아 붓는 대목에선 숫제 자괴감마저 느껴졌다.

▲ 김동철씨
어느새 담배연기와 한숨으로 가득 찬 천막 농성장을 찾아 현재 농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들어봤다.

김동철(41·남)씨는 “나락 값은 떨어지고 농민들의 형편은 갈수록 안 좋아지는데 정부는 미봉책만 내놓고 있다”며 “대부분 중·고교생 자녀들이 있는 농민회원들은 수입이 점점 줄어 학비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설상가상,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농어업 선진화 위원회가 지난 5월 농업보조금 개편방안을 내놓으면서 “내년부터 농가에 화학비료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혀 겹 시름에 잠겼다. 

2만평 이상 대농도 농자재 가격 빼면 연 1천5백만원 벌이

▲ 안성구씨
안성구(38·남)씨는 “일반적으로 농지 2만평 이상을 경작하는 사람을 대농이라 하는데 한해 수확량은 5천만 원가량 밖에 안 된다”며 “여기에서 농약 값, 비료 값, 농기계비 등을 제하고 나면 손에 떨어지는 것은 고작 1천5백만 원 정도 밖에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나락 시세는 7년 전 시세 그대로인데 물가는 계속 올라 농약·비료 값이 2년 전보다 250%나 올랐다”며 “나락 값이 농가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당장 농가에서 끼니를 걱정해야 할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고 정부의 정책을 성토했다.

대학생 자녀 두 명을 학자금 대출로 근근이 공부시킨다는 한종안(51·남)씨는 “나락 값이 날로 떨어지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다”며 “나락 값 7만원을 기준으로 5년 주기임대차 계약을 했는데 시세가 4만 원대까지 떨어져 나머지 차액을 갚으려니 빚만 늘고 있다”고 한탄했다.
▲ 한종안씨

지난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적대정책으로 연간 40만t에 달하는 대북 쌀 지원이 중단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대북 쌀 지원 중단으로 재고미가 쌓이자 농협이 이를 시중에 저가미로 공급해 쌀값 폭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용기(51·남)씨는 “정부가 재고미 150만t 중 40만t를 북한에 조속히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지금 농협마저 정부의 편에 서서 농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씨는 또 “취재만 해가면 뭐하냐”며 “언론사들이 농촌지방의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식량주권에 대한 호소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농민들에게 쌀은 생존권이지만 국민들에게는 주식의 문제라는 것.

김동철(41·남)씨는 “농업 선진국들이 식량을 자원화하고 무기화하고 있다”며 “미구에 닥쳐올 식량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국민들이 우리 먹을거리를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호소했다.

수확기를 앞둔 농촌들녘. 풍년가로 해사해야 할 농민들의 얼굴에 시름이 깊어지고 농가엔 한숨만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위기의 농촌, 임시미봉의 땜질처방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