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 정부 주연·농협 조연”
“쌀값 폭락 정부 주연·농협 조연”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10.09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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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쌀값 물가상승 집중관리 품목 선정 하락 유도
농협, 재고미 저가 공급…올 추곡은 저가매입 담합

콤바인 소리로 신바람이 나야할 농촌들녘에 트랙터 소리만 무성하다.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들만큼 바빠야 할 가을걷이지만 농민들은 일손을 놓고 농협 RPC 창고 앞에 몰려가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강진군 농민회는 9일 오후 영랑로에서 농민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농민대회를 개최하고 즉각적인 대북쌀 지원 재개와 법제화, 공공비축물량 확대, 쌀 목표가격 21만원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 사진제공 강진군민신문

본격적인 벼 수확기를 앞두고 농민들이 ‘쌀값 폭락’에 항의해 집단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된 일차적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쌀값 대책에 있다. 여기에 농협의 보신주의가 한몫 거들고 나서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대북 쌀 지원 재개…쌀 목표가격 21만원 인상 필요”

■ MB정부 쌀값정책

정부는 지난달 11일 “2008년 기록적인 대풍작으로 시장에 잉여물량이 넘쳐 산지 쌀값이 올 1월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달 5일에는 전년 수확기 대비 6.0%까지 하락했다”며 “시장 수급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2008년산 과잉물량 중 10만t을 매입해 격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올해 쌀값 폭락원인이 지난해 대풍작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정부가 물가상승 집중관리 52개 품목 중 쌀값을 첫 번째 관리대상으로 선정하고 지속적인 시장개입을 통해 쌀값 하락을 유도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추석물가 안정대책’에 따라 9월3일부터 정부미 85만4천석을 공매해 쌀값을 하락세로 반전시켰다고 자화자찬했었다. 쌀 가격을 떨어뜨려 물가상승 요인을 잠재운 것이다. 대풍작 때문에 쌀값이 하락했다는 정부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정부가 대북 쌀 지원을 중단한 것도 쌀값 폭락에 일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적대 정책으로 매년 30~40만t씩 소비되던 대북 쌀 지원이 막힌 것. 이 때문에 2007년 59만6000t이던 정부비축미가 2009년 6월 현재 91만4000t까지 늘었다. 결국 대북 쌀 지원 중단이 쌀 수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유원상 전농 광주전남연맹 정책위원장은 “대북 쌀 지원은 2년 동안 유예되고 WTO 의무 수입물량 30만7000t이 누적되면서 공급과잉이 발생했다”며 “정부가 조속히 대북 쌀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농과 민주노동당은 대북 쌀 지원 조속 재개와 이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농협을 통한 정부의 10만t 매입방안도 전형적인 ‘생색내기’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시중 쌀 재고량이 지난해에 비해 34만t이나 늘어난 조건에서 10만t 매입으로는 쌀값 지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그 때문에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쌀 시장 개입에 나서 공공비축물량을 2배 이상 늘려 58t까지 매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식량기구(FAO)는 식량위기를 대비해 연간 소비량의 17% 수준(72만t)을 공공미로 비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 전농 광주시 농민회가 지난 8일 광산구 본량동 풍숙마을 앞 통일쌀 경작지에서 나락을 갈아엎고 있다.

정부가 2012년까지 쌀 목표가격을 17만83원으로 책정한 것과 관련해서는 현실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해마다 물가와 기름·농약·비료 값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생산비가 오르고 있는데 쌀값은 떨어지고 있어 변동직불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원상 위원장은 “정부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쌀 목표가격을 17만83원으로 책정해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농민들의 최저생산비 수준을 반영해 쌀 목표가격을 적어도 21만원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고미 20㎏ 정곡 4만원…올 추곡 40㎏ 조곡 5만원 돼야”

■ 농협의 보신주의

“현재 농협 RPC는 농민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농민들이 농협 RPC 전면봉쇄라는 ‘초강수’를 둔 이면에는 농협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 자리  하고 있다. 농협 RPC가 2008년산 재고미를 저가에 공급해 쌀값 하락을 부채질하고 올 추곡에 대해서는 가격담합을 통해 4만원의 선지급금만 지급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농협 RPC가 전국 쌀 생산량의 5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봉쇄투쟁이 가지는 의미와 무게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현재 20㎏들이 정곡 한포대의 시중가격은 3만6천원선. 농협 RPC 출고가가 3만3천원선일 때나 가능한 가격대다. 실제로 나주 다시농협 RPC는 3만5천원에 공급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정만식 나주농민회장은 “농협 RPC가 2008년산 재고미를 대기업 유통업체에 저가로 공급해 지난해에 비해 쌀값이 1만원이나 폭락했다”며 “쌀값 폭락을 부추기는 농협이 진정 농민조합원을 위한 조직인지 정말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 정우태 민주노동당 전남도의원이 국회 정론관 앞 계단에서 쌀값폭락 대책촉구 기자회견을 가진 뒤 항의표시로 삭발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민주노동당
올 4월 농협 RPC 협의회는 20㎏들이 정곡을 3만8500원 이하로 출고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를 강제할 뚜렷한 수단이 없어서다. 광주전남연맹과 농협은 지난 5일 간담회를 갖고 저가미 공급반대와 농민회 강제에 대해 합의했다. 하지만 저가미 기준에 대해 농협측이 금액을 제시하지 않자 광주전남연맹은 4만원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반출 저지에 나섰다.

정 회장은 “재고미가 4만원대에만 판매돼도 농민들의 생산비 보존이 가능하다”며 “농협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출혈경쟁으로 3만원, 심지어는 2만8천원까지 저가미를 판매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민단체는 또 농협이 올 추곡 선지급금을 5만원 이상으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올 추곡의 40㎏들이 조곡 한 포대의 시중가격은 4만5천원 남짓. 농민단체는 농협 RPC 들이 4만원으로 선지급금을 담합해서 현재의 시장가격이 형성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올 추곡가는 선지급금으로 5만원 이상을 지급하고 내년 3월에 일괄 정산해야 한다”며 “농협이 선지급금을 높게 책정해야 시중가격이 높게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도 “나락이 홍수출하 되는 시기에 가격을 안정시켜야 할 농협이 이명박 정부와 쌀값 폭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쌀값의 최저생산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올 추곡 선지급금을 5만원 이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향후 전망

올 쌀 생산량은 예년보다 2.6% 늘어난 4백68만t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은 지난해 쌀 재고량이 예년의 두 배인 14만t에 이른다며 올 추곡 수매를 위해 재고미를 저가에라도 판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는 나락 갈아엎기에서 농협 RPC 봉쇄, 나락 야적투쟁으로 점차 투쟁의 수위와 강도를 높여가고 있어 정면충돌로 치닫는 양상이다.

“쌀은 농민에게 생존권이고 국민에게는 주식이다.”
‘생존권’과 ‘주식’은 결코 포기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다.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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