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출 ‘어울림’ 기대 밖 성과
화려한 외출 ‘어울림’ 기대 밖 성과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10.05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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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가옥 주 무대…디자인 비엔날레 주제전 압축
창호지 문틈사이로 들여다본 ‘달빛’ 어울림전 백미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떠들썩한 축제의 난장이 섰다.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프로젝트의 하나인 ‘어울림’전이 그것. 광주시 지정민속자료 1호인 이장우 고택을 주 무대로 갈피갈피에 열 두 개의 프로젝트가 살뜰하게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이장우 가옥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사는 이번 디자인 비엔날레 ‘주제전’의 집약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의(衣), 식(食), 주(住), 학(學), 악(樂)을 하나의 공간에서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시연하고 있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어울림’전은 단순히 보여주는 전시에 머물지 않고 같이 즐기고 체험하는 전시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기획자의 의도가 ‘화려한 외출’로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 마치 달이 뜬 어느 봄날 밤 매화나무 한 그루 피어난 호숫가 정자에 앉아 있는 환시를 경험하게 하는 '윤회매'(예명 다음 작)

이장우 고택에서 진행되고 있는 ‘어울림’전은 마치 러시아 인형 ‘마뜨로시까’를 연상시킨다. 마치 액자소설처럼 작품 속에 작품이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작품이 있다. 현미경을 들이대고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당초 ‘어울림’이 표방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자연과 기술, 일상과 예술, 과거와 미래의 어울림을 찾아 110년 고택을 찾아가 보자.

고택에 막 들어서면 복어를 형상화 한 ‘복댕이’가 환한 미소로 관람객을 환대한다. ‘10인10색’전 참여 작가인 도예가 송팔영씨가 공간연출을 위해 제작했다. 애초 연못 위에 뜨도록 내부공간을 비웠는데 최근 내린 비로 반쯤은 물에 잠긴 모습이 애잔하다.  

연못 주위로는 항아리 세 개가 운치를 자아내게 만든다. 작품은 아니고 최근까지 주인이 쓰던 것을 자리만 옮겼다. 관람객에게 포토 존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복사진관은 우리옷의 멋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작가 최옥수씨가 마련한 프로젝트다. 한복을 입고 한옥을 배경삼아 작품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가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상주한다는 것. 행사참여는 유료이며 사전 예약해야 한다. 작품사진은 개인소장이 가능하다.

▲ 차상의 받침대로 빈병을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최석현씨의 자개작품은 빛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채마법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와 뉴질랜드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채집한 자개를 이용, 회화작품에서나 가능한 원근감까지 세밀하게 표현했다. 30년 이상 나전공예의 외길을 고집해온 작가의 장인정신에서 노련미와 완숙미가 물씬 풍겨난다.

한때 칠공예와 나전공예로 명성을 떨쳤던 양림동의 옛 영화를 재현하고 현대문명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야심찬 기획이다.

최씨는 또 나무와 흙, 한지를 활용한 식기공예도 선보였다. 공예품에는 옻칠과 금박을 입혀 실용성과 미감을 높였다. 특이한 것은 작품의 오브제로 쌀을 활용한 점이다. 식기와 가장 밀접한 것이 쌀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일상 속에서 무엇이든 디자인 요소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전시가 끝난 후 쌀은 버리지 않고 밥을 해먹을 작정이다. 친환경 디자인이라는 설명이 ‘말의 성찬’만은 아니었나보다.

김화영의 ‘노래하는 벤치’는 사람이 벤치에 앉으면 양 옆에 부착된 센서가 이를 감지해 노래를 부른다.

최운태는 ‘해마’에서 현대식 수도꼭지를 펌프시설로 새롭게 구성하면서 손잡이를 해마로 디자인했다. 물을 매개로 샘물과 해마를 연결시키면서 한옥과의 자연스러운 어울림도 추구했다. 소화경보기에는 코스모스 꽃이 만발했다. 동을 두드리고 구부려 작품을 배치한 것.

최운태는 이처럼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디자인 작품을 만들었다. 멋들어진 우리소리와 가락을 뽐내는 ‘소리하는 부엉이’도 마찬가지.
▲ 차상의 받침대로 빈병을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디지털 연못’은 석재로 만든 우물 바닥에 2D 테크놀러지 기계를 배치한 뒤 정지된 화면에 물고기의 움직임을 시연해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이남, 채민숙, 문진영, 박태후의 작품.

이규성과 다음, 황인옥의 작품 ‘달빛’은 이번 전시의 백미로 꼽고 싶다. 흡사 작품은 창호지 문틈이라는 상징 기제를 통해 은밀히 방안을 엿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틈 사이로 들여다 본 방안은 황홀경이 따로 없다.

마치 달이 뜬 어느 봄날 밤 매화나무 한 그루 피어난 호숫가 정자에 앉아있는 환시를 경험하게 한다. 호수 위에는 고무신 두 개가 나란하다. 수면에 이는 잔잔한 파문까지 디자인 했다.

매화송이가 딱 80송이 인데 80년 광주를 상징한다고 한다. 조선시대 북학파 실학자였던 이덕무가 천연밀랍으로 만들었던 윤회매(輪回梅)를 100년만에 처음으로 재현했다.

도록표지도 훌륭한 디자인 작품으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천연염색으로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기존 도록의 획일성을 극복해 차별화를 꾀했다.

이이남의 3D 병풍은 기존의 작품성에 테크놀로지를 구현한 작품이다. 작품의 실용화와 상품화를 염두에 둔 것이다.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기술적 요소를 산수를 배경으로 한 풍경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고 있다.

또 병풍 회화의 정적인 이미지 대신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이 시선을 끈다. 게다가 컴퓨터 조작만으로 산수화뿐 아니라 여러 명화감상도 가능하다고 하니 만화경이 따로 없다. 고전한옥과 테크놀러지가 만나 완벽한 찰떡궁합을 구현한 것이다.

▲ 다기를 활용한 남태원의 '가습기'
‘10인10색’전에 출품된 다기세트는 투박함에서부터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까지 각양각색이다. 찻상 아래 다리받침으로 빈병을 활용한 것이 눈에 띈다. 자연친화적인 소재와 요소를 반영한 것이다.

박정애의 ‘어머니의 방’은 여염집 아낙의 신혼 방을 보는 듯해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요강과 화로, 경대, 화초장, 배게, 저고리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요강은 신부가 시집에 들어갈 때 가마에 넣던 필수품. 먼 길을 가는 동안 생리적 현상을 가마 안에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강 안에는 짚을 넣어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남태원의 다기를 활용한 가습기는 발랄한 재치가 번뜩이는 작품이다. 김문호의 ‘기와집’은 이장우 가옥의 가치를 살리기 위한 공간 활용이 탁월한 작품이다. 주변의 향나무와 조화를 이루고 가옥과도 제법 잘 어울린다.

이밖에도 제 혼자 튀지 않고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은 군자의 미덕이 집안 곳곳에 작품으로 은일(隱逸)하고 있다. 한국민화를 차용해 금속재질로 소화전을 마감한 ‘까치와 호랑이’도 익살스런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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