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비처럼]수애의 고군분투, 나머진 별 볼 일 없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수애의 고군분투, 나머진 별 볼 일 없다.
  • 김영주
  • 승인 2009.09.29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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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

▲ 영화<불꽃처럼 나비처럼> 스틸 컷.

조선 왕실의 권력다툼에서 우리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여인은, 장녹수 장희빈 정난정 민비이다. TV드라마에서 민비로 내 기억에 선연하게 남아 있는 사람은, 80시절 김영애 · 90시절 김희애 · 00시절 이미연과 최명길이다.

[명성황후]에서 최명길이 일본 자객에게 호통을 치며 장렬하게 죽어가는 모습은 처절하고 강렬했다. 조수미의 ‘나 가거든’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이미연의 죽음은 애절하고 침통했다. 이 처절하고 애절함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이번 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질까 궁금하기도 했고, 좋아하는 배우 수애와 조승우의 모습도 보고 싶었다.

감독을 그리 신뢰하지 못하던 터에, 이 영화에 평판까지 별로 좋지 않아서 이 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였지만, 그 장면에 궁금증과 두 배우에 갈증이 받쳐 올라서 실망감을 무릅쓰고 보기로 했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1469&videoId=25249
 
조승우가 민비를 가로막으며 일본 자객 앞에 죽어가고 마침내 민비까지 고아하게 하얀 비단옷에 핏빛 낭자하게 죽어가는 장면이 장렬해 보이기는 하였지만, 최명길과 이미연의 장면에 비하면 좀 어색하게 작위적으로 보여서, 그 처절함과 애절함이 많이 약했다.

그런데 그게 단지 이 장면의 어색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 전반적으로 어색하고 작위적이다. 팩트와 픽션을 뒤섞어서 스토리로 엮어가는 흐름도 매끄럽지 못하고, 조승우와 수애의 만남부터 사랑을 이루어 가는 과정도 억지스럽고, 액션 장면을 비롯한 갖가지 컴퓨터그래픽 기법에 인공적인 꾸밈새가 생경하도록 힘이 잔뜩 들어가서 싸구려 색감과 질감으로 가득하다.

초장부터 이미 난, 영화 안으로 빨려들지 못하고, 영화 밖으로 빠져 나갔다. 황진이가 없었던 영화[황진이]가 단박에 떠올랐다.

영화 밖에서, 난 영화를 관찰하고 있었다. “조승우, 무던히도 꾀죄죄하게 나오네! 바다를 향해 간다며,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타고 가는 게 아니라 개울물이 고여든 연방죽이나 늪지대에서 오리유람선으로 시간 죽이는 분위기다. 조선시대에 왕비간택을 코앞에 둔 여자가, 바닷가 백사장의 사춘기 청춘남녀 물장난이라니, 쩝쩝. 역량이 딸리니, 상상력도 제자리만 뱅뱅 돌고 있다.

의상의 색감과 맵시에 신경을 많이 쓰긴 썼지만, 서민 옷은 잘 잡았는데, 궁실 옷은 괜한 뻥을 쳐서 눈이 불편했다. 왕비상궁의 눈빛이 너무 음산하지 않나? 일본 총독, 아예 나쁜 놈이라고 작심한 듯이 무지하게 고약스럽다.

대원군과 고종은 왜 저 모양이야? 액션을 멋있게 만들어보려고 나름대론 무지 애를 많이 썼구나! 사랑과 액션에 시간을 지나치게 몰아주다가 나머지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끌고 갈 여유를 잃어버렸다. 꾀죄죄하면서도 멋진 척하던 조승우가 뒷부분에선 그나마 그의 연기력을 발휘해 내는구나!” 이렇게 콩이야 팥이야 주절주절대며 영화를 찍고 발랐다.

조승우마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 채, 수애의 고군분투가 단연 도드라진다. 마치 이소룡 영화에서 나머진 다 후진데, 이소룡 혼자서 빼어나게 발군하는 것처럼.( 이소룡만큼 세계적으로 독보적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 화장이 지나쳐서 그녀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해치는 장면이 없진 않았지만, 그녀의 연기도 좋았고 그 단아한 모습이 민비에게 잘 스며들어서 지금까지 만난 민비들 중에서 가장 민비다워 보이는 감흥이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다양하게 만나는 맛에, 영화가 지겹지는 않았다. 그녀가 이 영화에 아깝다기보다는, 추락하는 이 영화를 그녀가 혼자서 끝까지 붙잡아 이끌어가고 있었다.

▲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스틸 컷.

수애에게 너무 눈이 멀어버린 걸까? [가족]이라는 영화에서, 그녀가 아빠에게 반항하며 집밖으로 나가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찐하게 빨아들이는 모습이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그 장면이, 그녀를 향한 ‘지나친 보호심리’가 내 가슴에 응어리져 박힌 것 같다. 그녀에겐 관음증이 돋지 않아서 편안하다. 그냥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 전지현도 관음증이 돋지 않는데, 전지현보다 더 편안하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눈망울에 눈물이 고이면 바라보기가 참 힘들다.

대중재미 C+ · 영화기술 C+ · 삶의 숙성 D0. 대원군과 민비 그리고 일본의 침략을 이야기할 맘이 조금 있었으나, 이 영화를 보고나선 그럴 맘이 식어 버렸다. 영화를 까다롭게 보는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이고, 일반 관객에게도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이다.

다만 수애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녀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재미로 볼만 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엔 좋은 작품 잘 만나서, 그녀의 역량과 아름다움이 제대로 활짝 피어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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