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에서 공존으로, DMZ
대립에서 공존으로, DMZ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9.09.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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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자연생태공원’과 이야기가 빚어낸 생성의 장

 

▲ 해발 1천m 이상의 고지로 둘러싸인 강원도 양구군의 ‘펀치볼’. 전후 강원·충청·전라·경상도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공존과 평화를 택했다. 그 결과 그 경치만큼이나 아름다운 ‘해안분지식 문화’를 창조했다. 사람들은 화채그릇(punch bowl) 속에서 하나의 과일이 되는 것을 기꺼워했다. ⓒ 노해경
한반도 비무장지대는 남북대결의 역사를 상징하면서도 평화의 상징도 담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의 자연의 보고로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시민의소리>는 ①DMZ의 자연 ②DMZ의 건물 ③DMZ의 사람 등 세 차례에 걸쳐 비무장지대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다시 DMZ에 서서.

지난여름 일단의 지역신문 기자들이 DMZ 안으로 발을 들였다. 분단으로 봉인됐던 땅을 30년간 ‘꺼리’가 가득한 곳으로 탈바꿈시켜온 함광복 (사)한국DMZ연구소 소장이 길잡이가 됐고, 한국언론재단이 뒷받침했다.

20년 전 군 훈련소 시절 잠시 스쳐 지났다가 다시 밟은 DMZ. 긴장감은 여전해 보였다.  자연은 변화된 환경에서 ‘스스로 그러한’ 본연에 충실했고, 사람은 그 자연을 조작하거나 때론 기대며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과거의 흔적들만 지난날의 영화와 비애를 증명할 뿐.

함 소장의 손가락 끝을 쫓으며 보낸 3박 4일. 사람들과 그것을 아우르는 자연은 아우성을 쳤다. ‘아직도 대립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가’라고. 그들이 몸소 보여준 무궁한 생산력은 대립보다는 공존을 통한 생성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웅변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야기’라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가 번뜩였다. DMZ 곳곳에 배어있던 세월의 속살들은 지난 30년 간 이야기로 무르익어, 이제 확대재생산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단의 철책보다도 더 견고하게 자연과 사람을 이으며 DMZ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는 중이었다.

누가 세월이 무심(無心)하다 했던가. DMZ의 지난 50년 남짓 세월은 유심(有心)하게 시공의 틈을 빽빽이 아우르고 있었다.

분단의 팽팽함만 가득할 것 같던 그곳은 넉넉한 충만함으로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대립을 넘어 공존을 통한 생성의 역사를 써가고 있는 DMZ. 자연·건물·사람을 두루 아우르며 그 유심한 세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비단 역사적 현장에 대한 관조만은 아닐 것이다.

▲ DMZ는 자연의 보고라기보다 ‘냉전자연생태박물관’이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에 개입했고, 자연은 그 개입을 주어진 것으로 삼아 스스로 진화했다. DMZ라는 거대한 밸트는 그 결과물이다. ⓒ 노해경

 

#  DMZ는 자연의 보고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 2km씩 총 4km 폭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선. 동·서간 길이 155마일(248km), 면적 992㎡. ‘휴전이후 50년 세월 동안 인간의 출입이 통제되어 자연이 잘 보존되어왔다’는 DMZ 박물관(강원도 고성군 소재)의 안내문이 생경하다.

대립의 여파로 사람들은 그곳의 자연에 끊임없이 개입했는데 잘 보존됐다니. ‘전략상 요충지’는 비무장지대를 ‘무장지대’화 했고, 무수한 지뢰는 생태계를 유린했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DMZ의 실체는 어쩌면 인간의 개입과 그 개입을 주어진 것으로 삼으며 질긴 생산력을 발휘해온 자연의 위대한 창조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함 소장이 DMZ를 ‘냉전자연생태계공원’이라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립은 공공연했지만 자연은 말없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생성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 대립은 공공연했다. 하지만 DMZ의 자연과 사람들은 소리 없이 공존과 평화를 웅변하고 있었다. ⓒ 노해경

 

#  화채 과일이 된 사람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 분지 펀치볼(punch bowl).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UN군에 의해 ‘화채그릇’, 즉 펀치볼처럼 생겼다고 해서 명명된 이름이다. 주위가 모두 해발 1천m를 넘는 고지들로 이뤄져있고, 전쟁 당시 처절했던 격전지였다.

하지만 새삼 펀치볼이 유명해진 것은 전쟁 이후 그곳에 들어온 개척민들 때문이다. 강원·충청·경기·경상·전라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정작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적었다. 말투도 다르고, 생활양식도 제각각이었던 사람들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화채그릇 속에서 스스로 다양한 과일이 됐다.

그 결과 새로운 ‘해안분지식 문화’가 빚어졌다.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구촌 최고의 대립과 반복의 장소와 공존과 평화의 장소가 교차했다. 여러 과일이 어울려 독특한 맛을 내는 화채에 비견되듯 지난 50년간 공존을 택한 사람들은 동서남북으로 갈린 우리의 실상에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또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언덕에 선 방문객들은 그 훈풍이 하루빨리 분지를 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길 기원하는 듯했다.

▲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잘 알려진 강원도 철원군 월정역. 용도를 상실한 인공의 철로에도 자연은 그 무한한 생명력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 노해경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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