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기에 만나는 여명
계절의 순환기에 만나는 여명
  • 전고필
  • 승인 2009.09.2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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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과 섬진강에서

어느 덧 아버지가 게으른 중학생 나를 깨우던 나이가 되었다.

나도 변했는지 아침잠이 싹 달아나 버렸다. 잠은 달아났지만 몸은 일어나기 하냥 싫은 것을 억지로 부축여 일어나길 여러번 하다 보니 이제 익숙해졌다.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들고 창가로 나간다. 아침 5시30분, 오늘의 날씨를 이미 하늘에 그리고 있는 시간이다.

▲ 88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갈리는 담양군 고서면 보촌리에서 여명을 맞이하는 풍경이다.

붉게 물든 하늘은 노을이라고 믿는 나에게 아침도 그 모습 그대로이며 더욱 해 맑다는 것을 가르쳐 준지 1년. 그럼에도 먼저 신문에 한눈을 팔았다. 한번 저 맑은 하늘의 햇귀를 잡으러 떠나야지 하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올 여름 정말 해를 따라 나서보았다.

무등산의 사위를 붉게 적시며 떠오르는 시내에서의 일출은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이제 여름도 뒷걸음질칠 시간 며칠 전 또 아름다운 여명을 보았다.

이번에는 멀리 가는 가보자 작정하고 조용히 차 열쇠를 들었다. 하늘이 가장 아름다워 질 때까지 하늘을 보지 말자라고 생각하면서 차를 몰았지만 방향이 해가 뜨는 동쪽이라 눈을 하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자꾸 뒷좌석의 카메라로 손이 간다.

하지만 참을 만큼 버티어 냈다. 차 안에서 그 아름다운 정경을 사진을 찍다 섬진강에서 전복사고를 당했다는 어떤 사진가를 얘기하던 형이 생각나서이다. 그렇게 참는다고 참아지지는 않았는지 차량이 드문 고속도로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차를 붙인다.

▲ 곡성 석곡에서 주암으로 가는 길에 보성강을 따라 운해들이 가득차 있는 모습과 산의 실루엣이다.

참았던 카메라를 드디어 손에 쥐고 포커스를 이리 저리 맞춰본다. 아날로그에 슬라이드 카메라를 쓸때에는 셔터를 누르는 것이 뜸했지만 디지털이 되고나서는 호사를 다 부려본다. 차안에 들어가 약간의 검은 코팅이 된 상황에서 마치 편광필터를 쓴 것 처럼 찍어 보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내 눈이 확인한 저 아름다움이 카메라에 저장되지는 않는다.

몇컷 찍다가 심드렁해지고 다시 나로 돌아온다. 나는 저 매일 찬연하게 빛나는 태양의 싱그러움을 보면서 왜 이리 더 초라하고 누추해지는지. 괜한 심통이 나에게 더해진다. 그러다가 더 좋은 풍광을 찾아 나선다.

이슬을 털며 아침을 만들다 며칠전에는 심각하게 아파왔다. 한쪽의 체온은 36.5도인데 다른 한쪽은 37.1도에 달한다고 한다.

심한 우측의 열 때문에 일주일을 꼼짝하지 못했지만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버릇은 여전했고 아픈 가운데 창문을 열고 아침 여명을 보는 것을 중단하지 못했다.

나는 늘 내 삶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떠나고 있는 것이다.

▲ 포커스를 신록에 두니 어둡던 하늘이 다 사라져 버리고 산하가 얼굴을 드러낸다.

푸쎌은 관광은 여행이나 탐험과 구별된다고 했다. 탐험가는 발견되지 않은 것을 찾아 나서고, 여행가는 역사속에서 마음으로 발견한 것을 찾아 나서고, 관광객은 기업가들이 발견하고 대중화의 기술에 의해 준비된 것을 찾아 나선다고.

나는 이 가을 어느 쪽에 설 것이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또 어느 쪽에 설 것인지 몸이 아파오니 더욱 궁금해진다.

모든 길은 본디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길의 경전을 뒤적거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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