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싶은 종이비행기
날고 싶은 종이비행기
  • 범현이
  • 승인 2009.09.18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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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를 타고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싶어 하는 작가 김병일(41)

▲ 김병일 작가.
전화너머로 인터뷰를 거절하는 작가에게 그림만 보겠다고 무작정 찾아갔다. 깊게 진 쌍꺼풀이 선한 얼굴이었다. 지난주에도 갔던 길이다. 밤이어서 못 보았던 동네의 풍경들이 익숙하게 눈 안으로 들어온다. 담장을 허물은 집. 키가 큰 나무 밑으로 아직은 자잘한 묘목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벌리고 있다.

작가의 작업실 안. 통 유리로 된 창 너머로, 창 크기만 한 바깥 풍경이 보인다. 온통 푸른 하늘에 초록 나무 사이로 돌돌돌 돌아가는 바람도 보인다. 작업실 안, 평상처럼 놓여 있는 네모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창밖을 내다본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순간, 까무룩 정신을 놓는다.

천장 바로 아래, 높이 세워진 지지대 위로 작은 그림 하나 눈에 보인다. 너무 열심히 작업하던 시절. “늦은 밤, 작업하다 말고 밖에 나가 작업실을 보았더니 통유리 밖으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너무 아름다워 그렸다”고 웃으며 말한다.

작가는 교사다. 이 땅의 척박한 교육현장에서 붓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입시로 내몰리는 말라가는 아이들의 영혼을 보며 붓을 잡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리 없는 작업이 이미 의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린 것이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라는 작가 앞에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앉을 수 없는 세모 뾰족 의자 - 누가 앉을까

작가의 작업은 2004년까지에 머물러 있다. 단체전이나 그룹전에는 참가는 다수 했었지만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것은 그때까지이다 말한다.

▲ 자리.
<자리>에서는 다리를 네 개 가진 의자가 그려져 있다 빛바랜 붉은 바탕의 자리는 다시 보면 의자가 맞다. 하지만 앉을 수 없는 의자이다. 안락함, 쉬어감의 의미가 붉은 바탕만큼이나 퇴색되어 있다. 앉을 수 없는 의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이다.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앉을 수 없는 의자를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견고해보이지도 않는 네 개의 다리도 마찬가지의 의미이다. 앉을 수 있는 면적에 비례해 만들어지는 의의 다리를 제작하는데 작가는 처음부터 그 의도를 과감히 버렸다. 게다가 피라미드를 연상하게 하는 뾰족한 삼각형의 의자는 모든 사람들의 엉덩이를 거부하고 있다. 안락함마저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이 앉을 수 없는 의자. 작가는 이 시대에는 모든 이들이 아무도 정확한 의미의 쉼을 얻을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눈물>은 또, 어떤가. 분명 물방울 모양의 눈물이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눈물이 아니다. 인공적이다. 눈물을 한 방울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것은 그것이 나무든 철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인공적인 무엇인가의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를 조각하고 부시고 다시 땜질을 해야 비로소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완성된다. 아무도 흘릴 수 없는 눈물, 누구든지 흘릴 수 없는 눈물이다.

▲ 눈물.
만들어지기 위해, 만든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이 시대 눈물의 표상이다. 그저 힘들어서, 혹은 기쁘거나 슬퍼서 흘릴 수 있는 눈물이 결코 아니다. 필요로 만들어지고 충분조건에 의해 만들어지는 눈물이다. 그래서 작가의 눈물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고통의 눈물이다.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으나 모두가 공감하는 눈물.

안목은 경험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안목> - 사물을 보아서 분별할 수 있는 식견. 또한 사물의 가치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 면안(面眼)’이라고 국어사전에는 명기되어 있다. 작가가 말하는 안목은 단지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은 애써 거부한다. 안경은 투명해야 한다. 투명해야 불특정 다수의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가려진 것들을 넘어 볼 수 있다. 뛰어넘을 수 있다. 단지 경험에 의한 안목은 이미 결정 지워진 편견에 대해 형평성을 잃을 수 있다.

작가는 <안목>에서 투명성이 제고되는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가장 어긋나 있는 비행동성을 고발한다. 쓸 수 없는 안경. 보이지 않아 안경을 쓰면 세상이 더 어두워지는 세상에서 이제는 그만! 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무거운 꿈Ⅱ>은 더 힘든 현실이다. 가로 접고 세로로 접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싶지만 작가의 비행기는 날 수 없다. 말 그대로 무거운 꿈이다. 무거운 중량으로 날아갈 수 없는 종이비행기는 역시, <눈물>처럼 조각조각으로 이어져 있다. 가벼워 날아갈 수 있는 분량의 종이비행기가 아니다. 사람이 꾸는 꿈마저도 눈물처럼 조각 나, 이어지고 땜질해 조각을 붙여서 단지 꿈이라는 형상. 오브제인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낼 뿐이다.

▲ 무거운 꿈Ⅱ.

종이배도 마찬가지이다. 얼음느낌의 빙산에 둘러싸인 종이배는 물 위에 뜰 수 없다. 흐를 수 없다. 나아갈 수 없다. 종이배는 작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가자신 일게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작업은 바쁘다는 핑계로 붓을 놓게 만들었고 더 이상은 날을 수도 없는 종이비행기를 만들어냈다.

▲ 무거운 꿈Ⅰ.
작가가 오랜만에 청소했다는 작업실이 부지런히 드나들어서 윤기가 나길 바란다. 천장 아래 놓여 있던 너무나 열심히 작업했던 풍경 그림처럼 다시 그의 작업실에 노란 불빛이 박으로 새어 나오길 바란다. 다시 그릴 수 있는 때가 오리라 작가는 말하지만 때는 오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 이제는 작가가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스스로 깨치고 나아가야 할 때다. 문의 : 011-601-4608

에필로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 강(江)이 하늘로 흐를 때 / 명절 떡살에 햇살이 부서질 때 /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 흐르는 안개가 아마포처럼 몸에 감길 때 / 짐 실은 말 뒷다리가 사람 다리보다 아름다울 때 / 삶이 가엾다면 우린 거기 / 묶일 수밖에 없다 - 이성복 詩. 세월의 습곡이여, 기억의 단층이여 中.

이른 아침. 시트를 털어낸다. 덮었던 시트에는 밤새 숨죽였던 작은 신음소리들이 핏물로 배어나온다. 얼어있다. 살과 살 속에 투명하게 비치던 신경들이 죽어있다.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무늬하나 남긴다. 섬세하게 덮여진 지워지지 않는 흉터다. 물이 되어 오랫동안 몸속에서 출렁인다. 운명을 어쩔 수 없다면 가끔 멈추어 서서 꽃향기라도 맡아야 한다는 것을.

저것이었을까. 이승에 떨구는 발자국마다 투명한 눈물아래 서로를 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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