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마음, 하늘공원
하늘마음, 하늘공원
  • 범현이
  • 승인 2009.09.04 14: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수공예가 ‘수향 송현경(64)’
바늘 한 땀으로 전국최고의 자수명장이 되다.

 

▲자수공예가 수향 송현경씨.
자주 가는 원각사 근처 작은 골목에 작업실이 있다. 주차를 하면서, 바로 앞집에서 매번 밥을 먹으면서도 들어앉아 있는 수향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한 때는 북구에 있었고 집에서 작업을 한 적도 있었다. 이곳으로 다시 터를 닦고 자리한지는 3년째다.

시내 한 복판. 이곳은 빌딩 숲에 가려 있을 뿐 옛 한옥들의 풍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골목이다. 대들보도 보이고 반짝 윤기 나는 마루를 가진 한옥이다.

몇 년 전 얼굴과 똑같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자수처럼 맑다. 세월이 우리의 자수를 위해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느껴진다. 벽면을 빼곡히 채운 자수들이 작가의 한숨어린 노고를 대변한다. 빨갛고 노란, 혹은 다홍의 울긋불긋한 색깔이 너무 화려해 차라리 슬프다.

자수공예는 옛 여인들이 규방(閨房)에 앉아 일일이 손으로 한 바늘 한 바늘씩 꿰매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면서 발달되었다. 한 땀 한 땀으로 이루어진 자수는 말 그대로 인내와 더불어 높은 부덕(婦德)을 상징하는 공예이기도 하다.

 


수많은 날들을 바늘과 함께

수많은 날들을 바늘과 함께책장에는 책이 아닌 작고 앙증맞은 골 베개가 자리하고 있다. 호남지방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다 너무 힘든 작업 분량으로 인해 지금은 거의 사라져간 전통 자수이다. “70년대는 병풍 작업을 주로 했으나 지금은 ‘골 베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주거 문화가 한옥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병풍 수요가 많이 줄었거든요.”


네모난 작은 골 베개 하나를 완성하는데 13일 정도가 소요 된다. 작은 무늬 하나마다 색색의 실을 넣고 볼륨까지 넣어 완성하다보면 밤을 꼬박 새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자수를 들여다보면 시간이 보인다. 아니, 시간이 거기 멈추어 있다.


벽에 걸려있는 옛 관복에 들어가는 무늬는 가로×세로 30㎝ 크기인데 작품 한 점 만드는 데  꼬박 한 달을 매달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유물을 바탕으로 복원한 관복무늬는 무관은 호랑이, 문관은 학을 그려 넣으며, 일일이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야 하기에 가격으로 환산은 무리예요. 옛 여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바람을 엿볼 수 있지요.”

방 안 가득 진열되어 있는 것은 골 베개만이 아니다. 사주단자함, 경대, 심지어는 가죽을 배경으로 삼은 커다란 원통까지, 자수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거의 없다. 바늘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어머니의 손을 기억하며 40년 넘은 긴 시간을 바늘과 함께

16살 때부터 자수공예를 시작한 작가의 어머니 역시 40여 년간 바느질삯 하나로 5남매를 가르치며 생활하셨다. 밤을 새던 어머니의 모습을 작가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진학이 힘 들자 어머니는 내게 양재기술을 권하셨지요. 기계자수와 양재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닌 것이 바늘과 만남이었지만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어머니 무릎에 놓여있는 옷감색깔에 가슴 뛰던 걸 생각하면 운명인 것 같아요.”

어머니를 이야기 하는 작가는 얼굴이 숙연해진다. 어머니의 권유였지만 결국은 이미 어린 날부터 예정되어 있던 자수와의 만남이다. 단지 운명이라는 것을 좀 더 빨리 깨닫지 못한 차이일 뿐이다.

“늦은 나이에 고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당시 YWCA 총무로 계시던 조아라 선생님이 자수과목을 신설해 학생들에게 기계자수와 수자수를 가르치게 해 주셨지요. 좀 더 수 자수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 해야겠다는 생각에 작업을 계속해 오던 것이 벌써 40년이 흘렀네요.”

7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수공예를 해 오던 여성들이 공단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일부는 일본 기모노 자수 하청으로 들어간 것이 현재 자수공예 인력 부족으로 이어졌다고 작가는 탄식처럼 말한다.

“자수는 크게 색 배색과 디자인, 원단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빨강, 노랑, 초록 등 원색을 사용했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현대적 감각에 맞는 파스텔 톤을 주로 쓰지요. 그러나 디자인만큼은 여전히 전통적 십장생이나 화조류 문양을 사용해 전통의 멋을 한층 더하려 해요. 원단은 내구성이 뛰어난 화학섬유를 사용해 수명이 긴 자수 제품을 만들어요.”


마지막 작품은 불화 복원

자수공예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수양할 수 있는 작업이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속상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수틀을 잡고 바늘에 실을 달고 앉으면 차분해져 세상 시름이 안개 속처럼 미려해 진다. “바늘이 있어 이 힘든 시간의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 물빛 눈물이 언뜻 비친다.

자수공예의 세월만큼 수없이 찔린 바늘상처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의 손바닥을 보고 만지며 우리네 어머니 모습을 그 안에서 본다. 바늘을 손에 잡은 후 줄곧 해오던 병풍에서 최근 골 베개 작업으로 바꾼 것은 수요도 문제지만 예순을 넘어가면서 그의 어머니가 했던 골 베개를 만들며 한층 더 어머니 생각을 하고 싶어서다.

2006년 전국관광기념품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광주공예조합이사로 활발한 활동 중인 2009년 공예인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인 <대한민국 자수 명장>의 칭호를 받았다. 각 분야에 걸쳐 단 12명만을 선정하는 일에 당당히 명장으로 선정된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해야 할 작품이 있다고 말한다. 할 일을 하려고 요즘은 탱화를 공부하는 중이다. 작가가 하려하는 일은 탱화 자수를 완성하는 일이다.

“불교가 국교였던 시대는 불교자수 또한 화려하고 세련됐습니다. 사장된 사찰문화 복원을 우선으로 방목한 소장품 재현에도 열심히 노력하려 합니다.”

소리가 없어 남이 눈 여겨 일부러 봐주지도 않는다. 조그만 체구, 작은 목소리의 작가는 오늘도 묵묵히 수틀에서 한 점 한 점 바늘에 실을 달고 삶을 그려간다.

명장 시상식을 앞두고 있다.
문의 : 062-222-0367

 

에필로그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멈출 수 없는 시간들이다. 멀리 움직이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동안 바늘은 제 자리에서 색 실을 따라 움직인다. 산도 만들고 그 산 안에 활짝 핀 색색의 꽃도, 강물도 바람과 함께 흐른다. 바늘은 바람을 머금고 물을 만나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하루 내내 귀에 빗소리가 들렸다. 자리에 누워도, 얼핏 든 잠 속에서도 빗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눈을 떴다가 다시 감으며 혼미한 미열에 젖는다. 머릿속으로 가방을 쌓다가 다시 풀어놓다가 미명을 맞는다. 살아있는 것이니. 아님, 이미 죽어버린 것이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