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에서 착 감기는 쫄깃함…수입산은 못 당해”
“입 안에서 착 감기는 쫄깃함…수입산은 못 당해”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9.09.03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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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나 음식 그 이상, 전라도 사람들 향수 서려
어족 자원 보호와 함께 대중화 위한 노력도 필요

▲ 젊었을 적 직접 나룻배를 타고 홍어를 잡으러 다녔다는 이양원씨는 "몇 척의 배가 모여 영산포로 홍어를 싣고가는 동안 벌레가 나고 썩고 해도 시장 아주머니들이 천식에 좋다며 곱(진액)을 손으로 그러모아 마시곤 했었다"고 옛 일을 떠올렸다. 현재는 홍어도매상을 하는 이씨가 흑산홍어를 들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흑산도나 백령도라는 섬 지방에서 잡힌다는 그 이상하게 생긴 고기는 넓적한 네모꼴 몸체에 가시가 돋쳤지만 비늘이 없어 유별나게 생긴데다가, 허연 진액이 묻어있는 흑갈색의 등허리를 비롯해서 이목구비는 시늉만 했다 할 정도로 오종종하게 박혀 있어 언제나 보기에 혐오감을 자아냈다.”

작가 김주영의 소설 「홍어」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유별나게 생기다 못해 혐오감까지 자아내는’ 홍어의 톡 쏘는 맛에 열광하는 것일까.

내친 김에 작가 황석영이 말하는 홍어 맛에 대한 품평을 들어보자.  “한입 씹자마자 그야말로 오래된 뒷간에서 풍겨 올라오는 듯한 가스가 입안에서 폭발할 것처럼 가득 찼다가 코로 역류하며 푹 터져 나온다. 눈물이 찔끔 나고 숨이 멎을 것 같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작가의 표현력에 동의하고 안하고는 차치하더라도 홍어만큼 독특한 미감을 지닌 먹거리가 또 있을까 싶다.

특히 전라도에서 홍어라면 할 얘기가 더 많아진다. 행여 잔칫집에 홍어가 빠지기라도 했다면 하객들에게 ‘축하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라는 핀잔을 받기가 십상이다. 분명 홍어에게는 단순한 물고기 혹은 음식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고향의 향수(鄕愁)랄까, 돌아가고 싶은 근원(根源)을 떠오르게 하는….

 흑산 홍어, 맛도 가격도 으뜸

연골어류 홍어목 가오리과에 속하는 홍어(洪漁.학명 Raja Kenojei))는 한국, 일본, 대만 등 북서태평양과 멀리 칠레 연안에서 많이 잡히며 「본초강목」에는 태양어(邰陽漁)라 했고, 모양이 연잎을 닮았다 하여 하어(荷漁)라고도 불렸다.

여기서 잠깐 수입산 홍어와 흑산 홍어의 구별법부터 먼저 알아보자. 수입산은 크게 알라스카와 러시아산, 칠레 남미산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껍질이 가죽처럼 두껍고 배 쪽은 유백색을 띤다. 후자는 배 쪽에 수염모양의 검은 반점이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뼈가 억세고 찰기가 덜하다.

반면에 흑산 홍어는 수입산과 비교해 물코(마름모꼴의 앞부분)와 날개부분이 물감을 들인 것처럼 빨갛다 하여 넓을 洪 대신 붉을 紅을 쓸 만큼 색깔부터가 확연히 다르다.

“흑산 홍어는 썰어놓으면 반원형의 굴곡이 일정해 마치 꽃무늬를 보는 것 같습니다. 큰 놈일수록 굴곡이 뚜렷하고 잔 놈은 살이 깊은데서 몇 점 나오죠. 지금은 살이 야울 때고 제철인 겨울이 되면 통통하니 살이 오릅니다. 무엇보다 다른 홍어는 썰어놓으면 질컹 하니 물이 배어나오는데 흑산 홍어는 전혀 물기가 없이 쫄깃한 맛을 유지하죠.”  

전남 신안군 흑산도 죽항리에서 홍어 도매상을 하는 이양원(72)씨의 말이다.

흑산 홍어는 게 중에서 흑산도와 홍도 서북쪽 인근 연안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중국 저인망 쌍끌이 어선들이 홍어잡이 구역을 침범해 어구를 훼손하고 홍어 치어들까지 싹쓸이하는 바람에 멸종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보통 한척의 배가 1년에 1천개 정도의 ‘걸낙’을 바다에 뿌려놓으면 중국 어선들이 싹 쓸어가 버리거나 쌍끌이로 훼손해 버려 피해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80년 말까지만 해도 30여척 가까이 성업하던 홍어잡이 배들은 이 때문에 하나 둘씩 떠나고 한 두 척의 배만이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해경이 중국 어선들을 집중 단속하고 어민들도 산란기인 5~7월 세 달 동안을 금어기로 정해 홍어자원 회복에 힘쓰면서 흑산 앞바다에 다시 홍어가 돌아왔다. 현재 흑산도에는 7척의 배가 홍어 잡이 어선으로 등록돼 있다.

금어기가 끝나고 처음으로 홍어 위판이 열렸던 지난 15일, 흑산도 예리항 수협 위판장에는 대광호(선장 최한동, 70)가 잡은 홍어 200여 마리가 첫 선을 보였다. 홍어의 크기에 따라 8kg 이상은 1번, 7kg 이상은 2번, 6kg 이상은 3번, 5kg 이상 4번, 5kg 이하는 5번으로 부르는 데 이 날 1번 흑산 홍어는 40만원에 낙찰됐다. 비교적 많은 양이었지만 올 들어 첫 위판이었던 까닭에 제철인 겨울 시세만큼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보통 홍어잡이 배들의 조업이 7~10일 정도 걸리는 걸 감안하면 월 3회 정도 홍어 위판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홍어잡이 배 한 척이 년에 6~7억원 정도의 판매고를 올린다고 하니 흑산도에서 홍어가 차지하는 위상은 적지 않다.

예리항 관광안내소의 김수정(48,여)씨는 “흑산도에서는 우럭, 미역, 멸치, 전복 등도 나지만 흑산도의 주 수입원은 역시 홍어”라면서 “섬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흑산 홍어를 맛보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섬 주민들도 홍어를 마치 신주 모시듯 한다”고 말했다.   

목포 삼합과 영산포 홍어의 거리

홍어는 다른 횟감과 달리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흑산도에서 홍어를 주메뉴로 파는 한 상인은 “성인 3~4명이 3~4kg정도는 너끈히 먹는다”고 말했다. 간혹 흑산도 주민들 중에 부모님 상에 흑산 홍어를 내놓은 경우도 있는데 워낙 귀한 음식이라 홍어값 만으로 5천만 원이 들었다는 얘기도 전설처럼 떠돈다. 

흑산 홍어의 명성은 그 독특한 미감(味感) 때문에 칠레산 등 수입 홍어가 들어온 뒤에 오히려 더 높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입 홍어는 대부분 냉동 상태로 들여오기 때문에 숙성이 불가피하지만 갓 잡은 흑산 홍어는 쫄깃한 맛이 일품이라 숙성을 시키지 않고 먹기도 한다.

이제는 전통 음식의 대명사가 된 홍어는 ‘홍어 삼합’과 ‘보리애국’과 같은 음식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전라도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홍어 대중화에 단연 일등공신이라면 ‘홍어삼합’을 빼놓을 수 없다. 삼합은 잘 익은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 홍어회를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한 음식으로 목포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한다. 아직도 목포를 찾는 외지인들은 홍어삼합을 꼭 찾아서 먹는데 목포항 인근 종합수산시장에서 하루에 유통되는 양이 전국 유통량의 절반인 5톤에 달할 정도.  

▲ 잘 익은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 홍어회를 한 입에 먹을 수 있도록 만든 홍어삼합(좌)과 오돌토돌한 굴곡이 마치 꽃무늬를 보는 것 같은 흑산홍어 회(우).

홍어를 말할 때 나주시 영산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곳. 영산포는 고려 말 왜구의 침략을 피해 흑산도와 주변 섬을 떠난 이들이 영산강을 타고 내륙으로 들어와 정착한 곳이다.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는 뱃길로 4, 5일이 걸리는데 이주민들이 배에 싣고 온 생선 중 홍어만이 썩지 않고 삭은 맛이 나 별미로 먹기 시작한 것이 벌써 600여년이 흘렀다고 한다. 

영산포는 홍어의 집산지답게 20여 곳의 홍어식당과 홍어가게가 성업 중이다. 나주시는 영산포 ‘홍어의 거리’를 2012년까지 30억 원을 들여 나주의 대표 육성산업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간혹 가다 수입산 홍어를 흑산 홍어로 둔갑시켜 관광객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사례들이 적발되면서 토종 홍어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흑산도에서만 잡힌다는 국내산 홍어를 오래도록 보호하고 보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홍어 가공식품  개발, 유통 시스템의 투명한 관리, 홍보 마케팅 노력을 강화하는 것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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