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성으로 함몰되지 않는 개인성
전체성으로 함몰되지 않는 개인성
  • 박정복 시민기자
  • 승인 2009.08.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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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지은이 보후밀 흐라발)

▲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표지 사진.
동부유럽의 소설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데 우연한 계기로 체코가 배경인 이 책을 잡았다. 소설은 역동적인 인간 인생을 거친 세계 속에 도전시키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이 소설이 분명 사실주의의 자장 안에서 쓰여졌다고 하지만, 나는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서 모던한 느낌과 아주 소박한 개인들을 발견했다.

그것은 세련됨으로 읽히기도 했고, 촌스러움으로 읽히기도 했다. 곱씹어볼수록 생각할 여지가 많은 건 소설 속 이야기가 우리들의 일상과 아주 다르지 않아서다. 흘러가는 일상이란 항상 같은 것 같으면서도 매일이 다르다. 그런 와중에 올해 이 나라는 두 전 대통령을 잃었지 않은가.

누군가는 이제 정말 무덤으로 가야할 전 대통령들만 남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일상은 늘 비슷한 질감으로 아무런 감흥 없이 맴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한 인간의 사적인 부분들은 남에게 내보였을 때, 그렇게 아름답거나 거창할 수 없다. 그것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의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먹고 입고 싸야하는 동물적 존재에게 애당초 구질구질한 일상에 존재하는 하찮은 일들을 완전히 제거한 순수하게 맑고 투명한 세계는 없으며 한없이 위대하기만한 전체로서의 세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칼날 아래에서도 대중을 확보하면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대중들은 그것을 알아보았기에 여기 이방의 나라에까지 날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 하려는 것은 한 개인의 위대성을 들추어 새삼 각인시키자는 것이 아니었다. 일상이라는 차원에서 하루하루 성숙해가고, 어제와 다르지 않는 오늘을 사는 한 개인이 자기 밖의 세상을 보게 될 때, 세상은 마치 주인공이 역에 서서 거침없이 달렸다 멈추는 기차를 바라보는 것처럼 낯설고 어색하고 전혀 이쪽으로 넘어와 지지 않는 저편의 것, 자신과 다른 흐름으로 흘러가는 어떤 것이 된다.

그러다 문득 그런 거침없는 흐름에 의해 간섭을 받게 되는데, 상대에게 폭력적인 성향이 있게 되었을 때, 일상이란 평범성도 폭력의 무자비함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나치 친위대의 총구에 끌려 기차를 탈 수 밖에 없었던 밀로시의 모습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장면에서 밀로시는 독백한다. 그들에 의해서는 죽고 싶지 않노라고 자살하면서 느꼈던 죽음에 대한 절박함은 저 멀리 있었노라고…. 거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죽음과 타인에 의해 선택된 죽음에 대한 화두가 던져진다.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없었던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던 체코의 밖인 독일을 필두로 한 나치치하. 수많은 죽음들을 양산했던 나치 친위대와 무수한 죽음들이 있었던 독일의 밖인 체코. 이편의 밖인 저편에도 일상은 있고, 저편의 밖인 이편에도 일상은 있다. 죽음이 타인의 손에 맡겨져 있던 있지 않던, 그 삶이 짧든 길든 간에 개인들의 삶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 개인의 엄연함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는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재미라는 이름으로 단정내리기 전에 존재하는 나 자신,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정체성에 실려 가는 나 자신. 전체로서의 세계에 절대로 겹쳐지지 않는 나만의 세계.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한 개인의 세계. 그 개인의 신성함이 바로 이 소설의 값어치를 높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 개인이 전체로써의 세계와 전혀 겹쳐지지 않고 구경꾼으로만 끝날 줄 알았다. 아직 솜털이 남아 있는 청소년기를 넘기지 못하고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하는 성에 휘둘리는 사내가 되어가려는 미성숙한 존재는 결국 죽음이라는 통과의례를 통해 자신의 성숙을 완성한다.

철저하게 개인성에 갇히는 미성숙이라는 것이 성숙을 향해 가는 도정에 필연적으로 전체인 세계와 겹치고, 그를 이해하는 노력이 있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듯이 보인다. 그것이 어른됨이다. 그 어른됨의 끝이 죽음이다. 그럼에도 밑도 끝도 없이 서글프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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