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남편 볼 면목이 없다”
“죽어서 남편 볼 면목이 없다”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9.08.1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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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주 할머니가 박태준 회장에게 보내는 유서

▲ “피해자들의 희생으로 설립된 포스코가 조금이나마 징용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을 보고 눈을 감고 싶다”는 이금주 할머니.
“죽어서 도저히 남편 볼 면목이 없다”며 눈물을 훔치는 태평양전쟁 유족들의 애달픈 사연은 가슴을 적신다. 불운한 시대를 타고 난 죄 밖에 없는 일제징용 피해자들이 짊어진 역사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일 뿐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이 지리한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책임지는 이 하나 없는 ‘불운한’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다.

일제 징용 피해자들이 대일 청구권자금 최대 수혜기업인 포스코를 상대로 제기한 위자료 청구소송에 대해 사법부는 “사회적 책임은 있지만 배상책임은 없다”는 말로 포스코에 ‘면죄부’를 줬다.

징용 피해자들은 “포스코는 일제 피해자들의 눈물과 피값으로 설립된 회사다”며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향의 부모형제를 애타게 그리며 숨져 간 조상들의 피값이다“고 성토했다.

민족 기업임을 자부하는 포스코가 80대 고령의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씁쓸한 현실. 태평양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이금주 할머니는 “포스코가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채 내가 눈을 감는다면 죽어서도 죽지 못할 것이다”며 포스코의 전향적인 태도를 촉구하는 유서를 남겼다.

이금주 할머니는 “생후 8개월 된 아들과 함께 단락했던 우리 가족에게 ‘징용’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날벼락이었다”며 “징용에 걸리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무서운 때였기에 심장이 더그럭 더그럭 몹시 뛰고 전신이 한없이 떨렸다”고 회상했다.

출전 후 30일이 걸려야 한 번씩 받아보던 군사우편은 유일한 위로였지만 이 소식마저 9개월 만에 끊겼다. 늦어도 3년 안에는 꼭 살아 돌아오겠다던 남편은 꼭 3년 만에 전사통지서 한 장으로 돌아왔다.

이금주 할머니는 “내 나이 이제 꼭 90살이다”며 “지금도 남편의 구둣발자국 소리와 남편을 싣고 떠났던 기차의 요란했던 기적소리는 90살이 돼 청력도 다 떨어진 내 귓속에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결같은 애정을 드러냈다.

남편이 먼저 간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 할머니는 67년을 남편이 준 사랑에 의지해 살아왔다.

이금주 할머니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서 우리 피해자들의 오랜 고통과 한숨에 포스코가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는 것을 보고 조용히 두 눈 감고 싶다”며 “그렇게 해야 저승에서 남편과 태평양 전쟁에서 불귀객이 된 모든 피해자들을 만나 볼 면목이 생길 것 같다”고 절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피해자들의 희생으로 설립된 포스코가 지금이라도 재판부의 권고에 따라 사회적 책임을 다해주길 바란다”며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시작했으니 박 회장이 그 끝을 맺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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