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에서 자취 감춰가는 섬진강의 진객
생태계에서 자취 감춰가는 섬진강의 진객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9.08.10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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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라도 토종 먹을거리를 찾아서③섬진강 참게

담백한 맛·독특한 향 탁월, 밥도둑 명성 그대로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던’ 안도현 시인은 참게에게서 강·바다·땅 냄새가 모두 난다고 했다. 같은 회귀성 어종인 연어에서는 강의 냄새만을 식별해냈던 시인의 후각을 자극한 참게의 독특함은 무엇일까.

▲ 더 이상 참게를 섬진강의 진객으로 부를 수 있을까. 대량포획, 강 인공구조물 등으로 생태계를 교란 받으며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참게의 유일한 보존방법은 방류뿐. 조율환 세지농수산 영농조합법인 대표 등이 대량 부화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정부가 계속 경제논리로 대응한다면 그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시인의 속내를 정확히 짚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찍부터 강·바다·땅을 두루 거치며 일생을 살아가는 참게의 특성이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일까. 그렇더라도 자신의 이력을 고스란히 몸에 쌓아두지 못한다면 다 부질없는 것.

어쩌면 산에서, 들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살았던 섬진강 인근 사람들 삶의 자취를 지천으로 널려있던 참게의 향에 빗댄 것은 아닐까. 섬진강을 중심으로 강마을 주변 자연이 주는 혜택을 고루누리는 사람들과 섬진강에 기댄 참게의 삶의 여정은 어쩌면 매 한가지일지도 모르겠다.

구례·곡성 주민들은 예부터 그 부드러움에 반해 때론 탕을 풍부하게 하는 조미료로, 또 때론 입맛 돋우는 게장으로 참게의 속살을 탐해왔다. 특히 늦가을 참게를 재료로 만든 게장은 명실상부 ‘게 눈 감추듯’ 밥그릇을 뚝딱 비우게 했고, 탕의 담백함은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밤샘 친구가 돼줬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전국의 강과 논둑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자산어보』에는 맛·특성·잡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기록돼있어 참게는 우리 땅에서 오랜 세월동안 함께해온 토종임을 증명하고 있다.

수만 마리 이동하는 장관 다시 볼 날은 언제쯤

또 본능에 따른 참게의 이동은 장관을 연출하며 섬진강의 풍경을 꽉 채워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봄 손마디의 크기인 놈들이 섬진강 줄기 따라 지리산을 향해 이동하는 장면, 가을 손바닥을 채우고도 남는 몸집을 이끌고 산란을 위해 하동포구로 향하는 참게 수만 마리가 빚어내는 과거의 장관은 사람들의 시각을 붙들며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군침을 흘리며 그 가을 섬진강에서 참게 잡이에 열을 올렸다.

전남도 내수면시험장(장성군, 읍 소재)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참게의 종은 크게 금강·동남·애기 참게로 세 가지. 금강·동남이 주류지만 육안으로 구별하기가 쉽진 않다. 금강참게는 찬 곳, 동남참게는 얕고 따뜻한 곳에서 주로 서식하는 습성이 있어 우리지역에서 볼 수 있는 종은 동남참게가 대부분이다.

▲ 참게장ⓒ세지농수산영농법인.

또 “참게는 하천에서 탈피하면서 성장한 뒤 가을에 산란을 위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 기수지역으로 내려가며, 산란 시기는 8~11월. 주 산란기는 9월 초~10월 초다”고 돼있다.

하지만 이제 섬진강엔 참게가 없다. 참게가 바다로 나아가며 이뤄낸 넉넉한 풍경도 어언 15~20년 전의 이야기다. 박준택 내수면시험장장은 “방류하지 않으면 없어진다”는 말로 그 심각성을 전했다. 

야행성에 숨기를 좋아하는 습성을 이용 횃불을 들고 개울가 돌무더기를 찾는 원시적 방법, 알이 찬 옥수수를 새끼줄에 꽂은 다음 참게가 이동하는 물속통로에 길게 늘어놔 잡는 방법, 갈치 살이나 오징어 등 미끼를 넣은 통발을 설치해서 잡는 방법 등이 그물을 이용한 무분별한 대량 포획으로 바뀐 것이 원인이었다.

또 회귀성 갑각류의 이동과 산란을 방해하는 섬진강의 각종 인공구조물들은 참게의 씨가 마르게 했다. 결국 자취를 감춘 참게는 현재 인공종묘를 생산해 방류하는 것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 장장은 이마저도 부족한 예산 등으로 여의치 않고, 점점 개체가 줄어간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현재 참게를 양식하는 방식은 두 가지. 하나는 바다와 인접한 강 하구에 둑을 쌓고 못을 만들어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간만 조차식’, 다른 하나는 일반 벼를 기르는 논에 방류해 양성하는 ‘논방류 재포식’이다. 하지만 참게는 소득 창출이 어려운 품목이어서 대부분 농가들은 이미 양식을 포기한지 오래다. 이와 함께 사라져가는 참게와 함께했던 풍경과 맛도 점차 빛이 바래가며 낯설어지고 있다.

남다른 애착으로 참게 보존에 애쓰고 있는 조율환 세지농수산 영농조합법인(나주시 세지면 소재) 대표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논방류 재포식’을 선택한 그는 벼농사에 참게를 적극 이용하고자 ‘참게먹고 쌀먹고’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대량 부화기술 보유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방치

그리고 친환경 쌀과 참게장 판매를 위해 지난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절치부심해 왔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도 반복한 그는 우리나라보다 선진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에서 방류기술을 배워오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만큼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그 결과 참게 대량 부화 기술을 체득하게 됐다. 그리고 몇 해 전까지 대량 방류를 통해 참게의 보존과 활용에 대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경제적 타산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또 참게들이 방류된 논 가장자리는 제초작용이 활발했지만, 용존산소량이 부족한 논 중앙에서는 활성도가 떨어진다는 문제점도 발견됐다.

참게장도 만들고, 친환경 쌀도 재배하기 위해 흘린 땀이 보상을 받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소비자들에게 그의 노력이 오롯이 전해지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 참게탕.

현재 우렁이를 통한 농법에 주력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조 대표는 우렁이와 참게를 동시에 방류하는 친환경농법을 두고 그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또 1~2년 중단했던 참게 방류사업도 내수면시험장의 도움을 받아 내년엔 재개할 계획이다. 조 대표의 참게에 대한 애정은 경제적인 논리로는 감히 설명 불가능한 집념의 소산이었다. 

“갑각류를 대량 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생물들이 먹이로 삼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는 “단순하게 단백질 사료를 먹이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생물이 살 수 있는 먹이사슬을 만들어주고, 탈피하는 동물의 특성상 인과 칼슘 성분이 들어있는 생존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핵심이라는 뜻.

영농조합법인에서 몇 해 전까지 대량방류를 했을 당시 마을에 낚싯대만 드리워도 참게가 잡혔다는 조 대표는 점점 개체가 줄어가지만 참게의 부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아울러 “참게가 꽃게보다 훨씬 담백하고, 맛있어서 한번 맛본 사람들은 참게만 찾게 돼있다”는 말로 그 당위성을 설득하고 나선다.

그 옛날 궁중 진상품으로까지 올려 졌던 참게. 대량 양식 기술도 확보하고 있지만 점점 개체 수는 줄어만 간다. 돈이 안돼서 매력이 없다는 것이 모든 이유를 삼기며 방치를 부추기고 있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멸종의 날도 머지않았기에 관계당국의 관심과 예산 투입이 절실하다.

뿌리 깊은 우리의 입맛까지도 바꿔가고 있는 세계화. 우리의 자화상은 우리의 맛도 지켜내지 못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다. 하물며 토종 참게와 어울리며 창출해냈던 그 많던 삶의 방식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년 가을 나주 세지면과 섬진강에서 참게가 산란을 위해 연출할 장관이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한 종이 명멸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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