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사죄로 악마의 포식 진혼”
“반성과 사죄로 악마의 포식 진혼”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8.07 1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31부대 기물파괴적 살인…전쟁이 인간성 파괴”
모리무라 세이치 ‘악마의 포식’ 원작자

▲ ‘악마의 포식’ 원작자 모이무라 세이치씨.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그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죽음이 헛되이 된다.”

모리무라 세이치(76)씨는 일본의 저명 소설가이자 대표적인 양심이다. 특히 731부대의 전쟁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 작품 ‘악마의 포식’ 원작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간에서 이시이 부대라고도 불렸던 731부대는 중국 하얼빈에 주둔한 세균전 부대로 수많은 생체실험을 해 악명을 떨쳤다.

“일본에서는 기물손상 혹은 기물파괴적인 살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는 731부대의 잔혹사를 ‘기물파괴적인 살인’으로 규정했다. 마치 밥그릇이나 공기를 깨드리듯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인간을 살해한다는 의미다. 무려 3천여 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이 일명 ‘마루타’라는 이름으로 731부대의 생체실험 도구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평상심으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을 살해했다. 기물을 파괴하듯 사람을 죽인 병사들 그 스스로가 인간성을 파괴당한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학살자도, 학살당한 사람도 모두 피해자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그들 모두가 평범한 민간인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란 가혹한 상황이 인간성을 무참하게 파괴한다는 것.

“전쟁이란 상대나라의 국토와 문화, 역사를 파괴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악마와도 같다. 우리는 과거 일본이 한국에서 자행했던 여러 피해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 때문에 과거를 반성하고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피해자와 피해의 역사를 방치하면 역사는 반복·되풀이되기 때문이다.

“731부대와 노근리, 베트남, 홀로코스트 등의 희생양이 됐던 사람들을 위로하고 진혼을 보내는 것이 현재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다.”

그가 ‘악마의 포식’ 합창단과 함께 한국을 찾은 이유다. 희생자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죽음의 의미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합창단이 일본의 양심을 빚어 음악으로 담아왔다. 희생자들에게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담아 악마의 포식을 진혼한다.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받아줬으면 한다.”

‘악마의 포식’은 과거 일본이 저지른 비참하고 참혹한 역사를 담았다. 예술을 통해 이런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비참한 역사를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랄까.

“악마의 포식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 죽은 이들에 대한 최고의 진혼이 될 것이다. 악마의 포식을 듣고 여러분 한분 한분이 한 알의 밀알이 돼 인류의 천적인 전쟁이 없어지도록 한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

더 이상 ‘악마의 포식’을 부르지 않기 위해 지금 노래를 불러야 하는 역설의 상황이 고통스럽다. 다만 과거 일을 얼버무려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또다시 무대로 불러냈다.

그는 지난달 27일 165명 ‘악마의 포식’ 합창단과 함께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열린 59주기 합동위령제에 참여했다.

“노근리 희생자의 대부분이 노인과 어린이, 여성 등 민간인이었다. 미군이 처음에는 항공기로 폭격한 뒤 쌍굴다리 아래로 피한 피난민들을 기관총으로 쏴 죽였다. 노근리 학살 현지에는 그때의 탄환자국이 동그라미로 표시돼 있다. 그 표시를 볼 때마다 살아남은 자가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라는 논거로 받아들였다.”

그는 “노근리의 탄환자국이 기억에 남는다”며 “노근리가 지구상에서 전쟁범죄를 막는 최후의 방파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리무리 세이치씨는
1933년 사이마타현 구마가야시에서 출생해 1958년 아오야마 학원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샐러리맨의 악덕 세미나’를 시작으로 ‘환상의 무덤’, ‘분수령’ 등 다수 작품을 발표한 뒤 1969년 ‘고층의 사각’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다. 1972년에는 ‘부식의 구조’로 일본추리작가회상을, 1976년에는 ‘인간의 증명’으로 가도카와 소설상을 받았다.

1981년 731부대의 실태를 고발한 논픽션 ‘악마의 포식’은 발간되자 국내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330만권 이상 판매되는 등 폭발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이밖에도 ‘신칸센 살인사건’, ‘사형대의 무대’, ‘주신구라’, ‘엔드리스 피크’, ‘대나무의 묘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영화화, TV작품화 된 작품도 많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