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또 다른 영혼
나의 또 다른 영혼
  • 범현이
  • 승인 2009.08.07 17:3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살아있음을 알게 해 주는 가죽공예가 최명순(50)

▲ 가죽 공예가 최명순.
어젯밤 숙취가 아직 남아 있는 채로 작가를 만난다. 오전 이른 시간이다. 여전히 작은 공간 꼭대기 층 가죽냄새가 풀풀 나는 바닥에 주저앉는다. 작가는 몇 년 전과 같이 여전하다. 더 늘어난 작품들. 자신도 무엇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푸념을 들으며 나도 그 안에 작은 가죽이 되어 비집고 들어앉는다.

작은 창문 너머 예전 내가 살았던 아파트가 보인다.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던 아파트다. 작가를 찾아가면 나는 몰래몰래 작은 창문 너머 그 집을 들여다본다. 내가 해 둔 커튼이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보인다. 모든 것을 두고 나왔던 곳이다. 아마 그곳을 떠나면서부터 내게는 한 조각의 마음도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붉은 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테라코타. 작가의 작업실 창문을 빙 둘러 크고 작은 테라코타가 자리하고 있다. 더 힘들고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는 테라코타로 자신을 혹사 시킨다. 유난히 확대 해석된 여자의 몸들이 작가 자신을 보는 듯해 깊이 먹먹해진다. 무엇이 작가를 저리 막막하게 하는지, 무엇이 이 힘든 작업을 손끝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지.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나는 가죽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

작업하는 동안 작가는 순식간에 자유로워진다. 그 낯선 자유를 위해 스스로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 깨어있는 시간 모두를 가죽과 함께한다. 아니, 자면서도 가죽을 놓을 수는 없다. 그에게 있어 가죽은 단순한 가죽이 아니다.

생명을 가진 영혼이다. 작은 꽃들이 되고, 그 작은 꽃들이 모여 부케가 된다. 작은 상자도 만들어져 마음이 담아지고 색색의 공간들로 다시 태어나 영혼의 유전자들이 모아지기도 한다.


어느 곳 하나 허술한 곳이 없다. 구석구석 작은 상처받은 영혼들이 자리하고 앉아 생명을 넣어준 작가와 하루를 같이 한다. 손톱만한 가죽 꽃, 손바닥만 한 차받침, 우리의 민화가 그려진 보석함, 지통, 초가집을 연상하게 하는 가죽함, 황토와 적당히 섞여 토속적인 맛을 우려내는 액자 등등 모두가 작가의 손길과 맞닿아있다.

"함부로 팔고 싶지도 않다. 정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곳, 사람이 아니면 돈을 준다고 해도 보내지 않는다"고 작가는 단언하다. 그만큼 작업실 안에는 가죽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은 생명체들이 살아 숨 쉬는 영혼의 집합소다.

처음 가죽은 유치원 다니던 딸을 통해 만났지만 그 이후는 온전히 가죽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가죽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엔가 몰입하고 집착하는 내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어서다. 내가 딸을 낳았지만 딸은 내게 가죽을 알게 해 줌으로 내게 다시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고 말한다.


가죽으로 표현되는 가죽으로 만나는 세상


못 만들어지는 것이 없다. 꽃, 상자, 가방, 핸드백, 사물함, 보석함, 등, 옷, 부채까지 세상에 널려있는 모든 것을 가죽으로 만들어낸다. 작업대로 여기는 나무 책상 아래 돌돌 말려진 살색 가죽들. 난 묻는다. 처음부터 가죽은 저 색인가? 내가 본 가죽들은 통념상 고동색이던데.. 가죽색이라고 할 만큼. 작가가 말한다. 에이. 모두 염색을 한 것이지. 두께만 다를 뿐 모두가 염색을 한 다음에 상품으로 나오는거야.

책상 위, 아래, 말려진 원판의 가죽들 사이고 아무런 쓸모없을 것 같은 조각조각의 가죽들이 보인다.


"우리 엄마가 손재주가 많으셨다. 색색이 모아 놓은 헝겊들을 모아 조각보를 만들거나 조각이불들을 만들어 냈다. 아마도 내 손재주는 어머니를 닮은 듯하다" 작가는 어머니의, 손톱보다 약간 큰 크기의 조각보를 보여준다. 아마도 작가는 모아져 있는 저 작은 가죽들을 가지고 조각보를 만들고 싶은 것이리라.

한 때는 가죽에 옻칠을 하기도 했고 우리의 전통 민화와 문양을 열심히 중독처럼 그려 넣을 때도 있었다. 싫증이 나 스스로 제어가 가능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들어 엎는 것이다.

가죽에 집중을 하면 할수록 세상은 그를 위해 손을 들어 주었다. 2008년 광주광역시 공예대전 최우수상, 한국 현대 미술전 공예 특선, 국제 문화와 세계평화대전공예부분-미국, 전국 연 관광 기념품 공모전 금상 등의 수상이 바로 그것이다.


설치로 만들어진 가죽의 집


작은 소망들이 다시 모이고, 서로 이어져 가죽으로 집을 만들어 간다. 작가가 들어가 영원히 살 집이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씨줄과 날줄은 혹독함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집이다. 빨갛고 파란, 온갖 천연의 색이 가미된 작가만의 집. 가죽의 집에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그는 하고 있다. 영혼이 와서 머무를 집이다.

"설치를 하기 시작하면서 더 행복하다. 정말 가죽으로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각만 하던 가죽 설치, 가죽 인테리어 등을 하면서 생각은 더 크고 깊어졌다. 지금껏 나만을 행복하게 하는 작업을 했다면 앞으로는 주변도 행복해지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작가는 말하지 않아도 선연하게 안다. 다만 스스로의 다짐일 뿐, 가죽에 불어넣은 영혼이 작가의 손길을 빌어 스스로 건너가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녹아들어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을.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다. 가죽과 함께한 이십여 년의 시간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들이었기에 이제는 스스로 영혼과 함께한다. 머리 위를 날고 눈앞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자유로운 영혼이 바로 나 자신임을 본다. 전율처럼 느끼며 스스로의 몸에 도장으로 각인 된다. 영혼과 작가는 한 몸이다. 자유롭다.


에필로그

한 이틀 비 내리더니 세상의 먼지 다 씻기고 투명한 바람, 햇살뿐이다. 짧은 시간 바다를 보았다. 내 몸이 바다에 던져졌다. 장난기어린 웃음소리 햇살과 부서졌다.

신경이 올올히 곤두선다. 이국의 나무 냄새 같은 것, 낯선 것. 가장 젊은 날일 오늘이 다시 지나간다. 지나간 시간은 화석이다. 어쩌다 한 번 물기어린 눈으로 들여다 볼 뿐 화석과 현재를 같이 할 수는 없다. 풀 수 없는 주술일 뿐이다.

왈칵 눈물이 솟구쳐 흐를 것 같다. 서투르고 싶다.

내게 목을 죄는 쇠사슬을 준다면 / 나는 순순히 응하진 않을 거야. 물어 볼 거야 / 내게 사랑을 원하고자 한다면 / 나는 쉽게 그것을 말하진 않을 거야. 침묵할 거야 // 왜 내가 인정해야 하는 지 / 왜 내가 상처를 받아야 하는 지 / 그 대답을 들어야만 할까 봐 / 그것이 내가 줄 최선의 것인지 / 나는 어떤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지 / 창문을 열어 새벽바람을 맡을까봐 // 꽃이 피는 이유를 꽃이 지는 이유를 / 함께 사는 이유를 / 시기하는 이유를 / 기뻐하는 이유를 / 미움 받은 이유를 / 죽어가는 이유를 / 기도하는 이유를 // 난 물어보고 싶어 / 살아가는 이유를 / 난 물어보고 싶어 함께 살아가는 이유를 - 박창근 작사 곡. <이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은정 2009-08-13 11:43:28
길에서 흔히 만나는 가죽이 아니어서 너무 새롭네요. 연락처를 알려줘서 너무 고마워요.가죽이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할 수 있다니... 감동이에요. 작가탐방은 좋은 정보까지 알려주어서 자주 들여다봐요. 그림 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것도 감사한데 ... 더운 여름 맛있는 것 드시고 더 좋은 기사 소개해주세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