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세상 밖으로”
  • 범현이
  • 승인 2009.07.24 18: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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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찾아 떠나는 작가 이조흠(27)

▲ 이조흠 작가.
눅눅한 기분이 들 때는 일단 일어서야 한다. 흥건히 땀 흘리고 일하는 사람들의 군상을 만나야 한다. 작가를 만나러 가는 날은 비가 많이 오시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대인시장. 대안공간에서 작가의 그림을 처음 보고 묘한 마력에 흔들린다. 무표정한 다양한 얼굴의 군상들이 목적도 알 수 없이 어디론가 하염없이 향하고 있는 그림이다. 무겁게 가라앉은 일반적인 느낌만이 아닌, 무엇인가를 알리는 메시지가 작고 조용한 울림으로 가슴 안으로 도드라져온다.

작가는 대안공간인 ‘미테’의 선정 작가이다. 대인시장 안, 작은 골목길에 접해 있는 ‘미테’는 살아있다. 촉수를 움직이며 역량 있는 작가들을 찾아 본능으로 움직인다. 조승기 작가가 뜻한 바 있어 홀로 만들어 낸 대인 공간인 ‘미테’다. 지하실에 위치하고 있어 ‘미테’. 아래로 내려가 제도권 밖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찾아 발굴해 낸다는 의미의 ‘미테’다.

100호 이상의 작업이 매우 익숙해 보이는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이제 길에 막 들어섰다. 조승기 씨는 “역량이 있는 친구다.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던지 기대가 된다”고 소개했다.작가는 조선대학교 백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시안 갤러리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어 - 그들 속으로 걸어가


작가의 그림은 단순하고 강렬하다. 단순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단순 명료하게 메시지 전달에 성공한다. 미숙해 보이는 어설픔이 오히려 짙은 호소를 한다.

수많은 군상 속으로 작가는 걸어 들어간다. 마주 오는 그들을 향해 당당히 맞선다. 다가오는 사람들에게서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무표정하고 단순하지만 갖가지의 사연과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다. 그림 안 작가는 뒷모습으로 형상된다.

 
▲ 이조흠 作 「connection NO1」

“나를 그린 얼굴이지만 내가 아닐 수도 있다. 얼굴을 그렸지만 얼굴이 아닐 수도 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뒷모습을 그린 것은 내 스스로 아직 나만의 정체성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앞모습은 개인이지만 뒷모습은 집단이다. 작가가 그림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대상들만을 바꾸어가며 움직여가는 집단과 개인들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표정을 알 수 없어 현대의 군상들을 표현하기에 익숙하다.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지 않은 현대인들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들을 앵글에 담는다. 그가 작업하는 모든 형상들은 거의 카메라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인화한 사진 속 군상들 속에 현대인들이 담겨있다. 작가가 있다. 현대인들 속에 바로 작가의 모습을 찾아낸다.

▲ 이조흠 作 「social no1」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어

그의 작업 안에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모든 직업의 사람들을 모두 들여다  본다. 우울하고 경지되어 있는 가자의 모습들. 눈을 뜨거나 무표정한 모습으로 눈을 아예 감아버린 표정까지 모두 그림 안에 담겨있다. 그리고 그림 가장 가까이 작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하늘은 맑고 쾌청하지만 어쩌면 아마도 작가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에 대한 '맑음'일지 모른다.

작가의 그림은 점점 움직이며 진화한다. <Connection No 1>인 처음의 그림이 우울한 군상의 모습이었다면 <Connection No 8>과 <Connection No 9>는 다른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Connection No 8>에서의 작업은 흥미롭다. 이지러진 형태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니, 물에 씻겨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작가가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문제였을 것이고 그 안에서 만나는 것은 현재의 자신을 더 진실하게 들여다보는 것이었을 게다.

이지러진 모습으로 만나는 현대인들은 그림에서는 무표정 했던 얼굴 자체가 이제는 형태조차 사라져버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버림으로 비로소 찾아가게 되는 것, 바로 작가가 원하는 자아(自我)다.

또 다른 표정으로 만나는 <Connection No 9>에서는 우리 모두가 결국은 아바타로 규정된다. 아바타 역시 또 다른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온라인상에서 만나는 아바타는 현실에서 각각의 사람 하나다. 내가 온라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이미 없어지고 아바타가 나를 대신한다. 사람들은 아바타를 보고 나를 기억해낸다. 작가의 그림 안의 아바타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자아를 찾아 길을 나서다

결국 작가의 그림은 형태만 다를 뿐 모두가 같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제목 역시 모두 숫자만 다르게 시리즈로 표현된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지, 어떤 작업을 할지는 나 역시도 알 수 없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장르를 구분하지 않은 채 해보고 싶은 모든 작업을 할 생각이다”

▲ 이조흠 作 「connection NO8」

맞다. 작가의 작업 안에는 영상이나 설치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지금껏 해오던 군상들에 대한 작업 그대로이다. 모양과 형식의 문제일 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은 모두 재현되고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결국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모두는 같은 이야기이다.

작가의 작업 특징은 단지 한 작품에 국한한 이야기 보다는 지금까지 작업의 전부를 시리즈로 읽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약힌 것 같지만 약하고 강한 것 같지만 무엇보다도 약한 작가의 작업이다. 강하게 무표정한 얼굴로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스스로가 너무 섬세하고 약해서 단단하게 무장했을 뿐이다.

대학재학 시절 작가가 작업한 오목과 볼록 거울의 이지러진 사물의 형태를 그려낸 것이나 현제의 군상들에 대한 작업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늘 고민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내 모습에 비추어 사회적인 문제를 얘기하려 고민한다. 작가의 소명인 현대를 이야기 하는 것에서 돌아서지 않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바람이다”

일상과 자아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해야 현재 살아가고 있는 현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지 작가는 오늘도 고민 중이다. 젊은 날 한 때의 치기가 아닌 작업을 하면서 평생을 안고 가야 할 그만의 화두다.

문의 : 011-9441-0602

▲ 이조흠 作 「connection NO9」

에필로그


우물이 깊다 / 손바닥 두레박에 퍼 올려진 물 / 어떤 생이 하염없이 고여 있는 걸까 / 바닥에 닿지 않는 몸이 물속에 빠져 있다 //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 낙타 옆구리에 얼굴을 파묻고 / 짐승의 살점이라도 파먹고 싶을 만큼 / 목이 탔다 // 모래바람이 몸을 덮어 / 구릉을 만든다 / 모래에 밀리면서 / 끝없이 바닥에 가라앉은 몸뚱아리 / 물처럼 모래를 심키면서 / 차마 꿈이기를 바랐을까 //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내 몸이 깊은 우물이 되어 있었다 / 목마른 것들이. 그리워한 죄가 - 김영주 作. 몸에서 물을 긷다.

마무리까지 된 원고를 순식간에 잃었다. 노트북이 늙어서 일어난 순간의 일이다. 저장된 파일이 아닌 현재창이 열려있던 원고를 모두 잃었다. 토요일 영업 종료시간, 헐레벌떡 뛰어간 AS에서는 노트북에 산소 호흡기를 꽂고 심폐소생술을 해주었다. 이미 원고를 잃고 난 후였다. 불현듯 한 모서리가 어긋나는 불편함.

결국 노트북을 구입했다. 24시간 함께한 지난 5년의 시간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 책상 위, 그동안 사용했던 노트북을 그대로 둔다. 언제까지 저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나를 보는 것 같아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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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날 2009-07-30 15:13:14
이름이 특이해서 보게 되었어요. 덕택에 인터넷에 미테를 쳐서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알게 되었구요.. 부단한 노력이 밑바탕으로 되어 대성하시길 바랍니다. 전체적으로 그림이 어두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십대에 어두우면 사오십대가 되어 밝음으로 표현될 수 있나요? 이글을 쓰신 기자님도 여름 휴가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