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속의 섬 가파도를 찾아서
섬 속의 섬 가파도를 찾아서
  • 전고필
  • 승인 2009.07.2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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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얼마 전 사주를 보자는 청을 거절하지 못해 생년월일과 시를 알려 주었다. 사주결과가 메일로 도착했다. “홀로 돌아다니는 방황기가 있으며” 라는 구절이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진실 앞에 도리가 없었다.

그런 방랑기를 저어하지 못하는 나는 곧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스스로 유폐를 택해 제주에 깃든 한 선배를 위로하는 하룻밤과 가파도 하룻밤, 그리고 아무 구애 없는 하룻밤 그렇게 밤낮을 약속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선배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연고도 없는 제주행을 택해 언덕 바른 곳에 집을 임대하여 살고 있었다. 구차하게 연연하지 않으며, 세상에 촉수를 들이대지 않는 삶이 괜찮다고 했다.

다만 아직 건강한 육체를 부려 쓸 곳을 탐색중인데 이번에는 달팽이처럼 느릿하게 온 몸으로 제주에 살 거라고 했다. 선배의 그런 결심을 듣는 첫날밤은 즐거운 대화의 연속이었다.

다음날 가파도 행은 출발하기 전부터 삐걱 거렸다. 가파도에는 마트가 없기 때문에 먹을 것을 미리 사가지고 가자, 굳이 그곳에서 1박을 해야 되겠냐, 숙소가 여의치 않다, 게다가 별로 할 것도 볼 것도 없다 등등 그런 소리들이었다. 그럴 것을 예견한 나는 미리 몇 명에게 편을 들어달라고 했다.

사전에 정보를 탐색해 보니 가게가 있고 민박집도 다섯 곳이나 있었다. 그리고 해안선의 길이가 4.2km에 달하니 두서너 시간을 해안선을 산책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여 하루 세 편 있는 배 중 마지막 배를 택했다. 가자마자 다시 돌아가는 배, 다음날 아침에야 오는 배는 이견의 퇴로를 차단한 수법이었다.

우기의 가파도는 무척 고온다습해서 숙소로 택한 곳은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땅과 입 맞추는 듯 가파도의 가옥 구조에서 도리 없었다. 해가 저물어질 무렵 해안선을 돌았다.

▲ 바다를 개라고 부른다. 바다에 접한 담이어서 개경담이라고 한다. 가파도의 울이다.

해안선은 제주 본섬이 그렇듯이 석축으로 성곽처럼 이어져 있었다. 바다와 인접한 곳에 쌓은 것이라 해서 개경담(바닷담)이라 부른다. 한데 기묘했다. 먼저 본섬과 다른 것은 육지의 자갈돌과 같은 돌이 여기에서 담의 재료로 쓰였다. 현무암이라면 까칠한 면이 닿으니 쉽게 넘어지지 않을 터인데 맨들 거리는 자갈돌을 다른 재료 하나 쓰지 않고 쌓은 것이다.

저런 신묘한 기술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난해해 눈길을 떼지 못하고 돌담 주위를 돌았다. 어느 쪽은 접담(두줄)으로 쌓아졌고 어느 곳은 외도리(한줄)로 쌓아져 있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대처법을 읽었던 가파도 인들의 섬세함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쌓아진 돌담은 사람과 마소의 간섭이 없는 한 무너지는 경우는 결코 없다고 하니 더 더욱 찬사가 보내졌다.

그러다 다리에 무언가 엉킨다. 보랏빛의 순정한 모습을 한 순비기가 거친 바닷바람과 모래와 소금 절인 물을 받고도 이렇듯 예쁘게 피었다. 자연과 맞서지 않고 나지막하게 엎어져서 피고 있는 순비기가 바로 가파도 사람 아닌가 싶어 울컥해 진다.

▲ 넝쿨로 집단을 이루며 갯가에 자란다. 순비기라는 이름에서 벌써 순정하면서도 질긴 삶을 생각한다.

상동에서 출발한 우리의 산보는 하동마을로 이어진다. 중간에 풍어의 기원처인 포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하동 마을의 콘크리트 벽은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파도의 일상, 그들이 그리워하는 육지의 산수풍경 등이 삭막해질 법한 시멘트를 그림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신도 함께 주거한다는 믿음이 만든 18,000신들의 고향 제주가 더욱 실감난다.

다시 길을 이어보니 제주 180여 고인돌중 135기가 밀집한 고인돌이 드러나고, 하동에서 상동을 잇는 한질을 따라오니 우리가 도착했던 포구 곁에 매부리당이라 불리는 상동 할망당이 나온다.

비록 가파도 사람 한명 제대로 만나지 못했지만 거두어 보니 필름이 5통이 소요되었다. 민박집에서 식사를 주문하니 “준비를 안 해 왔냐”고 묻는다. 하여 여행길에서 처음으로 건방진 대답을 드렸다. “저흰 여기에 있는 것들을 먹고 마시고 쓸려고 왔어요”라고.

꽤 많은 식음료들이 위에서 소화될 무렵 음식을 나르던 아가씨가 말한다. “어머니는 고향이 부산이고 저는 포항이예요.” 애써 가파도 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공정여행이라던 첫날밤의 주장은 그 말 한마디에 무너졌고 이틀 동안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 하동 할망당: 제주를 절오백, 당오백이라고 했다. 해발 20.5미터 속수무책의 자연 앞에서 할망당은 이들의 갑옷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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