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섬에서 신앙이 된 마을숲
낙원의 섬에서 신앙이 된 마을숲
  • 시민의소리
  • 승인 2009.07.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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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마을숲을 복원하자
⑪전남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상록수림

15세기 조선의 유학자 윤선도가 낙원으로 꼽았던 보길도는 예전에 비해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지난해 1월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연륙교가 개통되면서 두 섬을 왕래하는 배는 하루에도 스무 차례 가까이 뜬다. 

하지만 보길도를 찾은 지난 12일, 강풍주의보가 내린 바다는 한껏 성이 나 있었다. 옆바람을 맞는 해남 땅끝보다 앞바람이 부는 완도 화흥포 쪽이 사정이 더 나을 거라는 지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땅끝에서는 아예 배가 뜨지 않았고 노화를 거쳐 소안까지 닿는 마지막 철선 한 대에 간신히 올라타 노화도 동천항에 닿았다. 바다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쉬 열어주지 않았다. 
    
앞에는 유리처럼 맑고 잔잔한 넓은 바다/ 뒤에는 천 겹이나 둘러싸인 백옥 같은 산/ 아아 여기는 신선이 사는 선경인가/ 인간세상은 아니로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中

동천항에서 차를 달려 붉은 색으로 치장한 보길대교를 지나자 거친 파도는 간 데 없고 잔잔한 바다가 펼쳐졌다. 널따란 바다에 바둑판처럼 줄지어선 미역, 다시마, 전복 양식장이 그득한 걸 보면 인간세상이 맞는 듯싶었으나 먼 바다에서 피어오른 해무(海霧)는 섬을 찾은 길손을 묘한 감상에 빠지게 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보길도의 청정바다에서 자란 해초류와 전복은 전국에서도 그 인기가 아주 높다. 그 중 보길도 전복은 전국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주민들의 주 소득원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섬 내에는 아열대성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난대림 식생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섬 동남쪽에 위치한 예송리(禮松里) 상록수림은 보존가치가 뛰어나 천연기념물 제40호로 지정돼 있다.

▲ 샛바우재에서 바라본 예송리 상록수림. 1.4km에 이르는 몽돌 해변을 둘러싼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40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소나무도 예를 갖춘 마을

예송리는 조선조 현종 때 장흥마씨가 처음 정착한 후 해남윤씨, 김해김씨, 밀양박씨, 창녕조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예송’이라는 마을이름은 예부터 문장가들이 많이 나와 마을에 있는 소나무도 예를 갖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청별항, 동천석실처럼 보길도의 지명 대부분이 윤선도에 의해 지어진 것처럼 ‘예송’이라는 이름도 고산에게서 얻었다는 것이 마을 촌로들의 설명. 현재 이 마을에는 100여 가구에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마을 앞 바다에서 다시마, 미역, 톳, 청각, 전복 등을 양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송리 상록수림은 마을과 바다 사이의 경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숲 앞으로는 거무스레한 갯돌해변이 펼쳐져 있고 숲 뒤로는 마을길과 주거지, 농경지가 이어져 있다. 숲은 약 350년 전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길이 740m, 폭 30m쯤 되는 반달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 숲에는 15종 내외의 상록수와 8종 내외의 낙엽수가 함께 자라고 있으며, 수종은 후박나무, 모밀잣밤나무, 구실잣밤나무, 참가시나무, 붉가시나무, 생달나무, 동백나무, 까마귀쪽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 종가시나무, 섬회양목, 송악, 팽나무, 작살나무, 구지뽕나무, 찔레꽃, 누리장나무, 졸참나무, 상동나무, 곰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송 마을은 오목하게 들어간 내만에 대단위로 전복을 키우는 인근의 정자리나 선창리와 달리 예부터 동쪽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을숲 조성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입촌조들이 숲을 개간해 밭을 일구고 뒷산과의 경사면에 마을이 들어서면서부터 인공적으로 상록수림을 조성했을 것이라는 것. 이처럼 심한 동풍 때문에 예송 마을은 보길도의 타 마을보다는 양식농사를 적게 짓는다. 여름 태풍에 양식장이 유실될 우려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 먼 바다에는 짙은 해무가 끼었다. 마을 주민들이 해변가에서 해조류을 채취하고 있는 모습.
방풍림·어부림 기능…생물학적 가치 뛰어나

이 숲은 방풍림 기능을 하고 있는데, 주민들은 “이 나무들이 없으면 우리도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각별하게 보호해 오면서 숲을 가꿔왔다.

예송리 상록수림은 마을 이름에서도 유래하듯 수고 15~20m에 이르는 곰솔나무가 주 상층목을 이루고 있다. 낙엽이 지는 활엽수림보다는 사시사철 푸르른 상록수가 해풍을 막는 해안림으로 맞춤 하리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겠냐는 것이 주민들의 말이다.

상록수림이 조성된 예송리 해변은 여름철이면 온통 다시마 건포장으로 변한다.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소리와 대구를 이루며 차르륵 차르륵 구르는 몽돌밭의 하모니가 환상적인 해변은 외지인들보다는 섬 주민들의 ‘삶의 현장’으로 이용돼 왔다.

지금은 크레인으로 물에 젖은 다시마를 배에서 끌어내려 마을 안 밭에다 옮겨 말릴 수 있게 됐지만 과거에는 해변에다 길게 펼쳐 말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마을 주민 조종수(66)씨는 “다시마를 말리자믄 그늘이 져서 숲이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태풍을 몇 번 겪어놓고 보니까 마을을 보호해주는 숲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조상 대대로 같이 살아온 정도 있고 이제 우리가 지켜서 또 물려 줘야제”라고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섣달 그믐, 1박2일로 당제 모셔  

육지에서 배로 한 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섬이다보니 섬 주민들만의 고유한 풍속이 현재에도 여전히 잘 지켜지고 있는 곳이 보길도다. 예송 마을 주민들 역시 매월 음력 섣달 그믐날 마을 당제를 모신다. 용왕제를 겸한 마을 당제를 지내면서 마을 주민들은 “바다에 나가면 발끝 하나 상처 없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시고, 모든 해초가 잘 되게 해주시고, 객지 생활하는 자식들 건강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원한다.

마을에서는 부정한 일을 당하지 않은 깨끗한 사람으로 당주(제물을 장만하고 제사를 모시는 사람)를 선정하여 소머리, 시루떡(시루째), 명태(3마리), 조기(3마리), 나물(버무린 그릇째), 메(밥솥째) 등의 제물을 마련하고, 섣달 그믐날 밤에 마을 뒤 산신제당에 모셔진 당할머니 (당할아버지는 인근 마을인 부용리에 모셔져 있다)에게 당제를 거행한다.

마을 주민들은 당제를 유교식이 아닌 농악으로 지내는 데 1월 1일 해변가 건포장에 유고가 없는 집을 제외하고는 수십 개의 헌식밥상을 차린다. 이후 꽹과리와 장구를 치고 마을 곳곳을 돌며 귀신을 쫓고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 하루 종일 계속된다.   

▲ 당제를 모시는 마을 뒤 산신당.

용왕제 겸한 당제로 마을 안녕과 화합 기원


근래에 들어서는 이 숲의 중심부에 있는 수고 20m에 달하는 곰솔에게도 젯밥을 차려주고 있다. 이 곰솔은 다른 나무와 달리 바람이 불어오는 바닷가 쪽으로 가지를 뻗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기울어져 지금은 받침대에 의지하고 있다. 이곳에는 곰솔 노거수가 무리를 지어 울창하게 자라고 있으며, 길가에 있는 커다란 바위 아래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음력 4월 12일에는 이 숲의 서쪽 끝에 있는 제단에서 미역농사 잘 되라고 ‘미역고사’라는 제사를 따로 모시기도 했는데 미역 양식이 줄어들면서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풍습이 됐다. 

한편 지관에 의해 간택된 당주는 제를 모시기 3일 전부터 화장실에 다녀오면 목욕을 한 후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담배와 술을 삼가야 하고, 부부관계를 금해야 하는 등의 엄격한 금기를 지켜야 했다. 하지만 제사를 모시고 나면 마음이 든든해져 생기만 맞으면 서로 당주를 맡으려고 했다.

마을 주민 문순배(74)씨는 “당주를 맡아 공을 들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3년 동안이나 당주를 맡아 당제와 용왕제를 모시기도 했다”면서 “비록 아들을 낳지는 못했지만 당주를 맡고 나면 항상 마음이 든든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가지 말라는 데 안가고 정성을 차리면 삼신할머니께서 아들을 점지해 주지 않겠느냐는 기복의 의미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 마을에서는 당주를 맡아 제를 모신 후 아들을 낳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예송리 상록수림은 방풍림으로 조성된 후로 줄곧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물고기가 서식하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여 어부림의 기능도 하고 있다. 또한 50~200년 된 20종이 넘는 상록활엽수와 낙엽활엽수가 노거수 군락을 형성하고 있어 생물학적 가치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상록수림은 주변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현지 주민들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어 전국에서 많은 휴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김경대 기자·정명철 전남대 문학재학 박사과정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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