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찾기는 우리의 과거·현재·미래를 조명하는 작업
토종 찾기는 우리의 과거·현재·미래를 조명하는 작업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9.07.21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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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라도 ‘토종 먹을거리’를 찾아서 ①프롤로그

우리 땅, 우리 삶의 일부분 혹은 언저리에서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해온 우리 것, 토종. 지금껏 많은 우리의 토종들이 사라져갔다.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라는 잣대에 토종은 보잘 것 없어 보였고, 급속한 경제성장과 세계화의 걸림돌로 취급받았다. 개량의 대상으로, 시대에 뒤쳐진 존재로 여겨진 결과 토종은 이제 그 명맥조차 가물거린다. 

토종은 곧 우리 것이다. 사람들은 토종이란 단어에 고향 버금가는 애정을 쏟는다. 토종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비단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토종을 찾는 움직임 속에는 끊어진 역사를 잇는 작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신토불이’, ‘로컬 푸드’(Local Food)가 아니더라도 선진국들은 이미 ‘종자’를 앞세우고 새로운 식민지 확보에 나선지 오래다. 이른바 ‘종자전쟁’으로 불리는 사태다.

토종은 식량난·종자전쟁에 대비하는 밑거름

최근 국제 곡물가 폭등에서 알 수 있듯 식량 안보는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토종이 이 땅에 다시 번성해야 할 당위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개량한 밀 품종을 육성해 인도·파키스탄·멕시코 등지에서 보급, 많은 인류를 기아로부터 해방시킨 공로로 노먼 E 볼로그 박사는 197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가 개발한 ‘키 작은 밀’의 유전자가 우리 토종인 ‘앉은뱅이 밀’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종자전쟁’ 시대, 토종을 잃어가는 현실에서 농업유전자원기술센터의 존재는 그나마 안도감을 갖게 한다. 세계 최신 시설을 갖추고 농업유전자원주권을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현재·미래를 밝히는 밑거름이다.

또 세계적인 정원수로,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을 받고 있는 구상나무도 고향이 제주도 한라산이다. 고려인삼·영지버섯·은행잎 등의 약효는 세계의 어느 것보다도 뛰어나고, 진돗개·풍산개의 우수성, 황칠·옻칠의 빼어남은 세계의 최고라고 자부할 만하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우수한 토종들이 많다. 언제 보물이 될지 모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수출위주의 산업정책은 우리 토종들이 숨 쉴 공간을 하루가 다르게 빼앗아 갔다.

또 잘못된 이기주의적 취미생활과 돈벌이의 대상이 돼 사라져 갔고, 황소개구리 등 외래종에 의한 생태계 파괴도 이를 토종의 숨통을 조였다. 80년대에서 90년대를 넘어가던 10년 사이 한국작물재래종이 불과 26%만 남았다는 농업과학기술원의 보고는 토종이 받고 있는 위험을 수치적으로 보여준다.

농업유전자원기술센터 종자주권확보 안간힘

토종이란 바탕 없이 우리풍토에 맞는 농업·생명공학·의학 등이 이뤄질 수 있을까. 아니다. 토종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죽음을 의미하고, 더불어 우리자신도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것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도 이제부터라도 토종을 지키고 보존하는 잰걸음을 걸어야 한다. 이는 식량대란으로 대변되는 현재에 대응하는 밑거름이고 우리 후손에게 미래를 열어주는 길이다.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농촌진흥청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는 위기 속의 한줄기 빛이다. 동북아 자원허브를 꿈꾸며 세계 5대 종자강국을 목표로 한 센터는 세계 최신 시설로 현재 약 15만점의 동·식물·미생물 등의 종자가 보관돼 있다.

그중 우리 토종도 3만점 이상이 있다. 유전자원의 탐색·분류·수집·보존에서부터 전산화·증식·분양까지 종자 등이 실질적인 농업자원으로 쓰일 수 있도록 모든 관리와 지원을 하는 곳이다.

▲ 유입된 종자에 대해 바코드를 부여하는 등 보관·전산화 작업을 하고 있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 직원들.

박기훈 농업유전자원센터 소장은 “보관한 종자들은 80년대부터 20년간 전국을 뒤져서 확보한 것들이다”며 “진도 7의 지진에도 끄떡없이 자원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곳이다”고 센터를 소개했다.

아울러 기탁자의 이름을 명시하는 것은 물론 기탁자의 허락 없이 자의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좋은 자원을 안전한 센터에 맡길 것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야흐로 자원시대임을 강조한 박 소장은 “이제는 신의약품·신소재·기능성 식품·바이오 에너지·신재생 에너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도 우리가 보관하고 있는 종자 자원들의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다”며 농업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또 센터 내부에 자리한 (사)한국토종연구회는 300여명의 전국 회원이 부족한 시간을 내 토종을 찾고, 보존하는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어서 고무적이었다.

이번호부터 15회에 걸쳐 본격적으로 전라도 ‘토종 먹을거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농업유전자원기술센터와 (사)한국토종연구회의 경험에 많이 기댈 것이다.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전라도 토종 먹을거리의 역사와 흔적을 추적해 그것들이 우리 땅에서 다시 뿌리 내리고, 산업의 기반이 되는 길을 모색할 것이다.

이는 곧 토종과 함께 한 우리문화를 찾는 일이고, 우리가 처한 현재에 대처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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