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 넋 기리는 삼우교
세 친구 넋 기리는 삼우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9.07.0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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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둔교에 얽힌 다리 이야기

둔동마을로 들어가려면 하천에 가로놓인 두 개의 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남쪽에 난 다리는 자동차가 오갈 수 있지만 북쪽 다리는 오래 돼서 차가 다닐 수 없다. 두 다리의 이름은 모두 연둔교다. 연동마을과 둔동마을을 건네는 다리라는 뜻이다.

지금은 유량이 줄어 강폭이 50m 남짓하지만 예전에는 둔동보를 건너는 일이 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마을사람들은 하천을 건너기 위해 지금의 북쪽 연둔교 자리에 나무와 황토, 솔가지로 엮은 섶다리를 놓았다.

▲ 차들이 다닐 수 없는 북쪽 연둔교에는 가슴 아픈 세 친구의 얘기가 서려있다. 옛 연둔교 위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겹다.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김점칠 옹에게 둔동보에 얽힌 다리 이야기를 들어봤다.

“둔동보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4m가 넘었제. 열대여섯 칸짜리 나무 기둥을 세우기 위해 헤엄을 잘 치는 이가 괭이를 들고 물에 들어가 기둥 세울 자리를 파헤쳤지. 사람 수가 더 많은 둔동마을에서 2/3, 안 동네(연동마을) 사람들이 1/3을 맡았어. 온 마을사람들이 4~5일씩 매달리는 울력이었는데 장마철에 큰 비라도 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리가 떠내려가나 보려고 강가에 구경나오고 그랬어.”

하지만 노력도 무참하게 섶다리는 제방 위까지 물이 차오르면 둥둥 떠올라 휩쓸려 내려가곤 했다. 숲정이 수양버들에 밧줄을 걸어놓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섶다리를 대신해 한때 고흥 사람 윤씨가 나룻배를 부리기도 했다. 주민들이 매월 나락 한말, 보리 한말을 걷어서 주는 조건이었다.

처음엔 평탄한 듯 했으나 급기야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큰물이 졌을 때 지금은 폐교가 된 동복남초등학교 학생들을 건네주다 배가 뒤집히고 만 것. 이 사고로 학생 3명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를 안타까워한 주민들은 화순에서 가장 잘 나가던 광업소장을 졸라 와이어로프로 만든 다리를 놓았고 세 친구의 넋을 기리기는 뜻에서 다리 이름을 ‘삼우교(三友橋)’라 지었다. 

이후 새마을사업이 시작되면서 와이어다리는 지금의 시멘트다리로 바뀌었지만 다리 초입에는 당시 광업소장의 공덕을 기리는 공덕비가 아직도 남아있다. /김경대 기자·정명철 전남대 문화재학 박사과정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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