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야 사는 운명의 가혹함이여!
먹어야 사는 운명의 가혹함이여!
  • 박정복 시민기자
  • 승인 2009.07.09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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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의 <껌> 창비

세상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시가 있다. 언어 자체를 흔들어 언어놀음의 차원을 높이는 시가 있고, 누군가 흔들어 놓은 언어들을 차분히 정돈하는 온전히 삶의 치열성과 비극성으로만 버무려진 시가 있다. 자신의 삶을 끙끙 앓아 나오는 시가 있고, 일상을 세밀한 눈으로 들여다보고 귀로 들어보면서 몸의 언어로 바꾸는 시도 있다.

아무렇게나 써내는 오염된 시가 있는가 하면, 고도의 정제를 미덕으로 하는 시도 있다. 시를 삼키고 삼키면서 마냥 부풀어 오르는 시가 있는가 하면, 탁탁 저속하게 시어를 뱉어내면 시가 되는 시도 있다.
 
김기택의 시는 죽어 있는 것 같고 의미 없을 것 같은 일상을 세밀한 눈, 마음, 귀 온몸의 감각으로 살려낸다.

‘ 내 몸에서 고기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불이 익은 피, 연기가 된 살이/ 내 땀구멍마다 주름과 지문마다 가득 차 있다. …중략… 도살 직전의 독한 노린내만 남아/ 배부른 니 콧구멍을 솜뭉치처럼 틀어막고 있다. …생략… 아직도 비명과 발악이 남아 있는 비린내가/ 제 시신이 묻혀 있는 내 몸속으로/ 끈질기게 스며들고 있다.’

‘삼겹살’을 씹으면서 김기택의 시를 떠올리면 위장이 뒤집힐 것이다. 인간의 동물성이 보는 매개물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어들 앞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것의 치열함과 집요함과 끈질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평범한 감각으로는 잡히지 않을 시선, 그것이 시인의 시선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있어야 할 만찬 앞에서 도살과 고문과 학살에 대해 떠올려야 하는 것은 인간의 잡식성이 내포하고 있는 잔인함이고, 먹어야 한다는 것, 산다는 것의 폭력성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솔직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표정 없이 한 땀 한 땀 살갗을 수놓는 문신사처럼 김기택은 읽는 이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멍울을 새긴다.

‘ 잇몸처럼 부드러운 타이어라는 걸 알 리 없는 어린 고양이였다/ 승차감 좋은 승용차 완충장치는/ 물컹거리는 뭉개짐을 표 나지 않게 삼켜버린 것이다.’
 
걷기만 할 때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시어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러다 멈추면 수첩 위에 무언가를 적곤 했다. 시 쓰는 습관은 걷기와 밀접한 연관을 갖기라도 한 듯 내 삶에 내재해 있곤 했다.

그것이 좋은 시든 별 것 아닌 시든, 시를 쓰는 행위만으로 삶이 차오를 수 있음을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뿌듯함을. 차를 몰고 다니는 순간 모든 느린 습관은 사라졌고, 발산하지 못하는 몸은 불만스러운 비계덩이만 쌓을 뿐이다.

수습하지 못한 속도가 뒤에서 한없이 늘어지고 있는 것 같아 문득 소름끼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걸을 때는 시간의 결을 감각하듯 온몸의 감각이 살아 저 알아서 움직이곤 했고, 뻥 뚫리는 공허감이나 수습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덜 무서웠다. 적어도 나의 행위가 다른 존재의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차를 몰고 다니는 순간 속도는 내 사유의 한계를 쉽게 넘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가슴 한편에 물컹한 살덩이가 쇳덩이에 와 부딪히는 공포를 품고 다닌다.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 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 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중략…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먼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지구의 일생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 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는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김기택의 시에서는 작은 물체들이 붉은 혈관을 움직이며 살아난다. 인간을 노려보는 핏발선 눈자위. ‘트랜스포머’에서 광선만 쐬고 살아나는 무수한 기계덩이들처럼 인간에 의해 씹히고, 찢기고, 버려지고, 뭉개진 것들이 오래전 인간이 버린 사냥의 습성을 드러내면서 살아나는 것이다.

김기택의 시를 통해 싸움을 통하지 않고는 먹이를 얻을 수 없었던 야생의 습성이, 인간이 발명한 모든 물질들 속으로 이식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박정복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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