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 다시 보게 된 울진
사람을 만나 다시 보게 된 울진
  • 전고필
  • 승인 2009.07.0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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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죽변항

“계절 탓일까? 겨우내 무식하게 잠만 자던 선풍기 먼지 탈탈 털고 잠에서 깨었다. 한 여름 대낮은 시냇물도 귀찮은 듯 게거품 물고 있는 이 땅 책상 위 공작초는 한숨 푹푹 쉬고 산허리 깊게 패인 얼굴에서 군인임을 느껴본다.”

벌써 20년이 지나버린 군대시절 비망록에 후임병이 써 준 글이다. 철원에서 1년 반 정도의 생활을 함께 하며, 비망록과 내 기억 속에 울진군 온정면 조금리라는 마을이 잠재해 왔다.

▲ ‘폭풍 속으로’ 세트장. 그 드라마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폭풍이 몰아치지 않아도 곧 폭풍이 몰아칠 듯한 정경이다.

그리고 얼마 전 울진에서 경북지역 문화원 포럼이 있어 발제자로 참여하며 말 머리에 내 기억에 남아있는 그 친구의 주소와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한분이 “어 그 양반 울진군청에 있는데”라고 하면서 만날 의향을 물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수염이 거뭇거뭇하였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백골”하면서 거수경례를 했다.

별 볼 일 없는 사병이었고 무엇보다 그 어색함을 싫어했는데, 마주하는 경례는 달리는 세월의 수레바퀴를 그 시절로 돌이켰다. 나와 함께 간 식구가 족히 8명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울진에 오면 꼭 술을 사겠다”는 그 옛날의 약속을 지키고자 죽변항의 한 횟집에 마주 앉아 10년 동안 끊었다는 술을 호탕하게 대작해 주었다. 대게의 철은 지난지라 러시아에서 건너온 게들이 그날 우리의 안주가 되었지만 더 큰 안주는 둘만이 간직한 한 그 시절의 소소한 일상이었다.

밤 사이 술과 오래된 기억 사이를 항행하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무언가 기억에 남을 증표를 남기고 싶었다. 하여 2년여 동안 내 가방을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이문재 시인이 엮은 “꽃이 져도 너를 잊을 수 없다”라는 시집을 건넸다.

그 책에는 이병률 시인이 쓴 “스미다”라는 시도 함께 있었다. 꺼내어 읽었다.

새벽이 되어 지도를 들추다가/ 울진이라는 지명에 울컥하여 차를 몬다/ 울진에 도착하니 밥냄새와 나란히 해가 뜨고/ 나무가 울창하여 울진이 됐다는 어부의 말에/ 참 이름도 잘 지었구나 싶어 또 울컥/ 해변 식당에서 아침밥을 시켜 먹으며/ 찌개냄비에서 생선뼈를 건져내다 또다시/ 왈칵 눈물이 치솟는 것은 무슨 설움 때문일까/ 탕이 매워서 그래요? 식당주인이 묻지만/ 눈가에 휴지를 대고 후룩후룩 국물을 떠먹다/ 대답 대신 소주 한 병을 시킨 건 다 설움이 매워서다/ 바닷가 여관에서 몇 시간을 자고/ 얼굴에 내려앉는 붉은 기운에 창을 여니/ 해 지는 여관 뒤편 누군가 끌어다 놓은 배 위에 올라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한 사내/ 해바라기 숲을 등지고 서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사내/ 내 설움을 저만도 못해서/ 내 눈알은 저만한 솜씨도 못 되어서 늘 찔끔하고 마는데/ 그가 올라앉은 뱃전을 적시던 물기가/ 내가 올라와와 있는 이층 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한 몇 달쯤 흠뻑 앉아 있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돌아가는 사내의 집채만한 그림자가/ 찬물처럼 내 가슴에 스미고 있다.

▲ ‘폭풍 속으로’세트장 곁 시누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다. 군인들이 해안 초소로 가는 매복로가 이제는 산책로가 되었다. 해안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군인들이 독차지 하던 시대가 다시 돌아오지 말란 법 없는 하루하루가 불편하다.

가슴이 먹먹해 졌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지명 속에 내 벗이 함께 있었는데 그 사이 다섯 번도 더 왔는데 이제야 찾았으니.

그러고 보니 내가 기억하는 울진은 울릉도로 가는 후포항의 카타마란과 백암온천과 노천탕이 있는 덕구온천, 불영사와 불영계곡, 소광리 소나무숲이었는데, 여기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고 다시 귀향하여 농림직 공무원을 하면서 블루베리를 2만여평 정도를 재배하는 그대를 빼 놓았구나.

어디에서 잠을 청할까 하니 ‘고궁’이라는 여관을 가르쳐 준다. 동해의 푸른 물결을 침대 삼고 멀리 울릉도를 베게 삼는 곳이란다. 그리고 아침에는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촬영장을 다녀오란다. 짜여진 시간 때문에 그가 권장하는 것만 따라 했지만 나는 가장 큰 감동의 여행을 경험하였다.

울진이 대게의 주산지이지만 원자력 싸움 와중에 영덕에 주도권을 내어 준 것, 등이 가려워 손을 얹으면 닿지 않는 곳이 울진이라는 것, 저 시에 등장하는 누군가 끌어 올린 배는 큰 파도가 치면 방파제가 따로 없고 수심이 깊어 이 지역에서는 수시로 그런 노동을 감수했던 과거가 있었음을. 그리고 지금은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하여 농가수입을 향상하고 있고 올 여름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까지.

짧은 하룻밤이었지만 이제 울진도 손대면 곧 잡힐 듯한 실감을 하며 대구를 거쳐 돌아왔다. 사무실에는 블루베리 10kg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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