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 날개를 달다
신화에 날개를 달다
  • 범현이
  • 승인 2009.07.03 18:3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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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박지로 세상과 소통하는 조각가 김강석(31)

▲ 작가 김강석.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해 다 기울어져 가는 밤에 유난히 반짝이는 한 쪽 눈을 바라보며 ‘어, 눈빛이 한쪽만 빛나요’ 했던 말을 기억한다.

차 마시러 자주 들리던 한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가 김강석을 처음 보았다. 작업실을 같이 쓰기로 했다고 들었다. 수인사를 나누며 만난 작가의 작업은 기존의 보아 온 다른 이들의 작업과는 재료 상으로 확연이 다른 무엇인가가 있어 발목을 잡았다. 차 마시러 혹은 맛있는 차를 얻으러 작업실에 갈 때마다 늘 무엇인가를 형상화하고 있던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다시 찾은 작업실. 이번에는 차를 마시러 가는 것이 아닌 온전하게 그를 만나기 위해서다. 무르익은 그의 작업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작업실은 여전했다. 온갖 것들의 재료들이 비비고 한 자리씩 앉아 앞으로의 진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전시가 끝나고 잠깐 쉬었다. 이제는 다시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청소부터 하려다 작업을 시작하면 금방 다시 어질어 질 것 같아 그냥 이대로 두기로 했다”며 사람 좋은 웃음이다. 에어컨을 켜고 먼지를 적당히 털어내고 잠깐의 비워 둔 시간의 흔적인 거미줄만 걷어내고 그대로 앉았다.

은박지는 내 오랜 친구 - 모든 것을 이해하고 다독여

▲ 김강석 作 「구애」
호일작업은 대학교 졸업작품전에서 처음 선보였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손으로 무엇인가를 주물럭거렸고 그때도 역시 주요 놀이 감은 호일이었다. 아버지가 사진으로 남겨둔 사진 한 장 안에는 기다란 공룡이 한 마리 곧 기어갈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엄지손톱이 뒤로 밀렸다. 호일을 만지며 구기고 누르는 동안 압력이 손톱으로 가해져 손톱이 밀려나가 살이 보인다. 구김이 잘 가는 은박지의 성질을 작가는 이용한다고 말한다. 은박지를 이해하고 어떻게 구겨주길 기다리는 지 너무나 잘 안다.

때로는 달래듯 눌러주고 때로는 서로 알맞게 부딪히게 접착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도 맞붙인다. 그만이 아는 손놀림으로 주무르고 구겨 만들어 낸 작품은 작가만의 호일에 대한 방법의 이해가 들어가 완성도가 높다.

구애(求愛). 커다란 사슴 한 마리의 작품이름이다. “마음을 주고받은 좋은 사람들에게 나만의 것을 선물하고 싶을 때면 사슴 한 마리를 만들어 선물했다. 역시 호일로 만들었고 주변의 사람들은 사슴을 선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고 설전을 벌인다는 농담도 들었다.”고 귀띔한다.

사슴은 일단 고귀하게 순수한 동물로 인식한다. 작가가 착안한 사슴에 대한 이미지이고 선물에 대한 마음의 표현이다. 작품의 모든 것을 손으로 직접 만들었으니 정성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김강석 作 「동화」

서로 한 몸으로 이해하고 지배해

은박지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 반짝이는 마음도, 구겨지는 마음도, 혹은 서로 잘 융합되어 어우러지는 마음까지도 그대로 온전하게 표현된다. 구기고 붙이며 호일과 작가는 한 몸이 되어간다. 동질화(同質化) 되어가는 것이다.

“인사동 전시회에서 길에 세워 둔 호일로 만들어진 사슴은 오가는 사람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았다. 일단 반짝이는 재질이 호일인 것을 알고 사람들은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냈고 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호일이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것 같다”고 전한다.

▲ 김강석 作 「분화」

크기를 보면 사람들은 거의가 아! 하고 탄성을 자아낸다. 호일로 만들어진 것을 아는 순간 다시 탄성과 의문을 보낸다. 작가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호일에 대한 일반적인 사고 속에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호일은 다시 말하면 은박지이다. 종이다. 빛이 나는 알루미늄이 가미된 종이이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인 은박지는 우리가 흔히 집에서 사용하는 은박지보다는 약간 더 두꺼운 소재이긴 하지만 종인인 것은 틀림없다. 그는 종이로 작업하는 몇 안 돼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어렸을 때 사촌 형이 장난처럼 건네 준 도시락 속 조그만 호일 하나가 나와 한 몸이 될 줄은 몰랐다”는 그는 예감이나 했을까. 골목길을 돌다 우연히 만난 운명은 그것이 불행이든, 행복이든 이미 예견되어 있는,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된다는 것. 단지 빠르거나 늦거나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 김강석 作 「매개자」

신화 속에 날개를 달고 날아가


▲ 김강석 作 「우남서녀」
“앞으로의 작업은 신화를 오브제로 사용하려 한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날개를 좋아하는데 신화에는 여러 종류의 날개들이 많이 나온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늘 환상만을 지니게 하는 날개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날개는 인간의 환상이다. 아니, 소망이다. 날개를 가지고 더 높이 더 멀리 날아보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다. 신화 속, 신들은 날개를 가지고 인간들을 내려다본다. 그가 생각하는 날개는 ‘최상의 무엇’이다.

감출 수 있는 날개,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덮어버릴 수 있는 날개, 하늘 높은 곳 까지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 그리운 것들을 향해 한없이 전진할 수 있는 날개, 그리움을 삭힐 수 있는 날개이다.

어쩌면 그가 이미 만들어 버린 케르베로스(Cerberos)는 시작에 불과하다. 형형하게 빛나는 눈이 그가 작업할 신화 속 동물들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 시키다. 설사 이카루스의 날개가 되어 태양의 열기에 날개가 녹아내리는 한이 있어도.

문의 : 010-3484-4022

에필로그

호주머니 안 두 개의 노란 동전이 자꾸 손을 떨게 한다. 한 때, 길을 걷다가 동전 두 개만 있으면 주황색 공중전화를 찾았던 것을 기억한다. 누군가에게 동전을 넣고 뚜뚜.. 신호음을 기다리는,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 불안함, 기대감까지.

이제는 안 된다고 이미 그럴 시간은 지났다고 호주머니 안, 손에게 말을 걸어 보지만 기억 속의 손은 꼼짝도 않고 동전만을 만지작거린다. 행여 나올세라 무명실로 꼭꼭 묶여져 있던 기억들이 비어진 틈새로 사이사이 뚫고 나온다. 수시로 허둥거리는 손에게 이제는 잊어버리라며 목이 탄다.

사람이 없다. 목마름도 없다. 그리움도 없다. 기억 가득 다시 무명실을 묶어대다 깜짝 놀란다. 처연하다.

▲ 김강석 作 「분화」

▲ 김강석 作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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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이 2009-07-07 14:11:00
그대가 내게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알아. 다시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어. 그래서 늘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내 목소리를 언제 가지고 있었는지마저도 흔적이 아른거려.. 아주 오랫동안 나를 지켜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메시지야. 고마워요.

신 사 2009-07-06 19:08:34
그사이 뭐하누 했더니 예서 작가 찾아 유랑을... 그래, 그럴수록 자신은 더욱 주렸을걸. 자신의 오래된 무명실타래 풀어내지 못하고 넘 얘기 하고 있을때 목마름은 더욱, 그리움은 더욱 깊어졌을걸. 뭘 놀라긴. 뭐 그렇다고 또 처연하기까지. 동전, 전화해요. 그거 언제껀데 그냥 언제까지?전화해요. 당신의 목소리로 얘기하세요. 이제 슬슬 당신의 얘기에 날개를 달아. 아마 꽤 괜찮은 운율을 가지리라 기다린지 꽤 오래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