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에 선 경남·뒤쫓는 전남
선두에 선 경남·뒤쫓는 전남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9.07.01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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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불붙은 캐릭터 전쟁 ④위인사례
끝나지 않는 이순신 신드롬 下

▲ 해전 영웅 이순신의 위엄이 느껴지는 이순신 동상.
전국을 강타한 이순신 신드롬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로 귀결되고 있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와 남해안 프로젝트가 한창인 가운데 이순신 사업이 각광받고 있는 것.

남해안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이순신에 대한 지자체들의 관심이 뜨겁다.

지자체들은 해전 영웅인 이순신을 어떻게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에 휩싸였다. 머리를 싸 멘 지자체들은 ‘축제’ 수준에 머물렀던 이순신 가치 활용을 한껏 업그레이드 했다. 지자체들의 동네 축제라는 비난 속에 주춤했던 이순신 사업을 광역 자치단체가 진두지휘하며 새 판을 짜고 있다.

▲1천억 원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 

일찌감치 ‘될 성 싶은 이순신’에 눈독 들인 경남도와 전남도는 한산대첩제와 명량대첩제를 통해 사업 가능성을 점친 후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시작은 경남도가 빨랐다. 경남도는 크고 작은 30여개 행사들을 한데 묶어 관광 상품화 하는 것으로 깃발을 올렸다.  

경남도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이순신 프로젝트’는 2015년까지 총 28개 사업에 1천 59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경남도는 의지를 불태우며 이순신을 메카로 이순신장군 리더십 국제센터 건립(97억), 노량평화공원 조성사업(220억) 등 각종 세부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국비 지원액이 적어 예산 확보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곤 하지만 별 탈 없이 순항 중인 ‘이순신 프로젝트’의 핵심은 철저한 고증이다.

경남도는 사업에 앞서 지난 2006년 임진왜란과 이순신 역사를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 승화시키기 위해 범도민 역사 찾기 사업을 전개했다. 도민들의 역사적 공감대를 끄집어내기 위한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 이렇게 수집된 자료들은 역사학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역사고증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사업으로 거듭났다.

김종임 경남도 이순신 프로젝트 담당은 “프로젝트 출범 때부터 역사고증위원회를 통해 모든 사업을 철저히 고증 받고 있다”며 “이뿐 아니라 분야별 콘텐츠 전문가를 통해 역사 고증과 사업 가능성 등 다각도로 심의를 거치고 있다”고 밝혔다. 타 지역에선 빈번이 발생하는 고증 논란이 경남도에서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이유다.

▲제 살 깎아먹는 밥그릇 싸움

그렇다면 전남도는 어떤가. 이순신이 남긴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을 것이다)’ 말에서 알 수 있듯 전남은 승전의 땅이자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그러나 민초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승전의 기쁨을 깡그리 잊고 오로지 ‘이순신’에만 목메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용호 해남군 문화원 원장은 “12척에 불과한 아선 배로 133척을 물리칠 수 있던 근원은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전투력과 지휘력도 있었겠지만 민초들의 협동이 있기에 가능했다”며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숨어있는 민초들의 삶은 뒷전인 채 이순신 장군만 조명되는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콘텐츠 재생산과 전남지역 지자체 간 고증 논란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전남도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이순신 사업은 명량대첩제 현창(顯彰)사업, 여수 이순신광장 조성, 순천왜성 복원사업, 거북선 크루즈 사업 등 총 56개 사업으로 1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된다.

사업 규모나 예산으로 따져보면 경남도에 뒤지지 않지만 문제는 이순신 사업을 총괄하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데 있다.

박용학 전남도 관광정책과 담당은 “시행하고 있는 사업 수로 따지자면 전남이 월등히 앞서고 있다”며 “그러나 사업 주최가 각각 다르다 보니 사업이 안 묶어져 관련 업무 파악이나 연계사업에 어려움이 있어 올해부터 T/F팀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명량대첩 승전을 이끈 울둘목엔 진도대교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이순신 동상이 마주보고 있다.

전남도 내에서도 우수영(해남), 좌수영(여수)으로 나눠 사업이 진행되는 것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왔다. 지난해 전남도 축제로 승격된 명량대첩제 현창사업을 비롯 전남도가 해남지역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 부은 것이 발단이 됐다. 우수영을 중심으로 한 사업엔 1,023억원이 투입되는 반면 좌수영을 중심으로 한 사업엔 90억원이 고작이다.

여수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도지사와 여수 시장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데다 도지사 후보의 치적 쌓기 등 내부 진통이 상당하다”며 “지역의 중요한 현안이 정치적인 이유로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크루즈 사업은 해남, 여수 간 갈등의 불씨로 작용했다. 명량대첩 현창사업 일환으로 해남에서 거북선을 띄우자 거북선을 만들었던 여수시가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 거북선 건조 유적이 남아있는 여수시는 거북선 크루즈 사업은 여수 몫이라며 내년에 두 척의 거북선을 관광 상품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그 동안 전남을 동서로 나눈다는 비판을 받았던 거북선 논란은 고증의 필요성과 함께 사업을 총괄할 전담기구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잔치는 여수가, 실속은 경남도      

전남도가 추진하고 있는 이순신 사업의 상당수는 경남도의 ‘이순신 프로젝트’와 중복된다. 거북선 크루즈 사업, 이순신 광장, 이순신 밥상 등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다.

한창진 전남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전남과 이순신과의 관계를 특화시키지 못한 데다 졸속으로 추진되다 보니 사업이 이벤트성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뻔한 프로그램을 따라할 게 아니라 독특한 해전 문화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산 낭비와 콘텐츠 중복이라는 우려에도 불구 꿋꿋이 사업을 추진해 온 전남도는 최근 ‘이순신 밥상’으로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경남도와 통영시가 지난 2007년부터 2억5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특화하고 있는 ‘이순신 밥상’에 여수시가 내용을 그대로 베껴 먼저 사업화에 뛰어든 것. 여수시는 ‘이순신 밥상’을 브랜드화 하기 위해 일사천리로 고증과 연구용역을 진행시켜 지난 15일 중간보고회를 가졌다. 여수시는 “선점효과를 위해 발 빠르게 일을 진행시켰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지역에서는 ‘모방행정’이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 매년 '한산대첩제'가 열리는 경남 통영에 조성된 이순신 공원엔 한산도를 호령하는 듯한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있다. 통영 강구안에 정박돼 있는 거북선 모형은 거북선 체험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고있다.

심재수 여수시축제위원회 위원은 “경남에서 추진해 마무리단계에 있는 이순신 밥상을 여수가 이제 와서 추진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고 비판했다.

‘이순신 밥상’을 맨 처음 제안한 김종임 경남도 이순신 프로젝트 담당은 “국민 혈세로 하는 사업인데 지역이 다르다고 해서 내용이 똑같은 사업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이순신 밥상’은 경남에 국한되지 않고 본점은 경남에, 1호점은 여수에 내는 등 방법을 고심하던 찰나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여수엑스포에 대한 전남도의 고민도 깊다. 경남도와 중복된 컨텐츠 외에 여수엑스포에서 선보일 전남만의 컨텐츠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여수엑스포에 쏠리는 기대효과에 비해 핵심 관광 상품인 이순신에 대한 준비는 태부족이다.   

심 위원은 “경남은 일찌감치 여수엑스포에 대비해 광범위하게 이순신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전남은 도대체 뭘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지금 이대로라면 정작 여수의 역사상징인 거북선과 판옥선은 통영에서 빌려와 전시해야 할지도 모를 판이다”고 따끔하게 질책했다.

이상훈 여수 YMCA사무총장은 “여수 엑스포를 겨냥해 이순신을 중심으로 해양문화 등을 집중 발굴해야 한다”며 “조직위원회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안일한 자세로 엑스포 담당관만 정해놓고 일이 추진되지 못한 점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수엑스포에 대한 ‘위기감’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인프라 확충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콘텐츠 확보엔 소홀하고 있다는 것. “기껏 남 좋은 일 시킨다”는 우려가 높은 대목이다.

조급한 전남도와 달리 경남도는 자신감이 넘쳤다. “고증 받은 자료는 다 넘겨 줄 테니 콘텐츠나 예산 중복은 피해 달라”는 것. 경남도는 사실상 콘텐츠 개발과 확보를 마무리 짓고 인프라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전남도는 이제라도 자체적인 이순신 조명 사업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전남 곳곳에 남아있는 이순신 관련 일화와 사료들을 수집해 전남만의 독특한 컨텐츠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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