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가 달리는 까닭은?
<거북이>가 달리는 까닭은?
  • 김영주
  • 승인 2009.07.01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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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돈 땜에, 나중엔 쪽팔려서. 그래서 결과는? 동화 ‘토끼와 거북이’처럼 거북이가 이긴다. 결과를 미리 말해버린 푼수 짓을 했지만, 그래도 코흘리개 애들에게나 써 먹을 ‘범생이 동화’가 아니라, 탄탄한 시나리오에 소홀히 흘려 넘겨선 안 될 풍자로 범상치 않은 암시와 생각꺼리를 숨겨놓은 어른들의 실감나는 ‘생활이야기’이기에, 영화로 보든 비디오로 보든 매우 볼만하다.

잔혹공포를 싫어하는 내 개인 스타일로는, <추격자>보다 더 좋다. 대중재미 A0 · 영화기술 A0 · 삶의 숙성 A0.

500만 관객을 넘길 수도 있겠다. 다음 주에 개봉할 <트랜스 포머2>땜에 좀 염려스럽기도 하고, 젊은 관객들이 과연 이 영화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무명한 감독에게서 이런 능력을 보게 되어 깜짝 놀랐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 감독도 그랬고, <프란더즈 개>의 봉준호 감독과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과 <달콤 살벌한 연인>의 손재곤 감독도 그랬다. “유명과 무명에 씨가 따로 있다더냐?” 이연우 감독, 앞으로 많이 기대하겠다.

<추격자>처럼 ‘ㅈ’나게 추격하지만, 그토록 서슬퍼런 공포와는 달리 아련하고 애잔하다. <바르게 살자>처럼 쌉쌀하게 웃기지만, 새콤하게 시린 맛도 있다. <라디오 스타>처럼 시골동네의 촌놈들과 다방레지 사이에 얽혀드는 이야기가 자연스럽지만, 도회적 인공조미료로 들큰한 감상주의가 조금 스며있다.

경찰들을, <마더>에선 서민들에게 느물거리면서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느끼하게 그려가지만, <거북이>에선 동네 양아치들과 서로 물고 물리면서도 “결국엔 똑 같은 서민이다.”며 감싸준다.

더구나 조연들은 물론이고 자잘한 엑스트라들까지 모두 다 이토록 빛나는 영화는 처음이다. 모내기 끝난 뒤 어느 시골 읍내에서, 그 張三李四(장삼이사)들의 꼬랑내 찌린내 나는 그 사이 사이 틈새 틈새로 날아드는 똥파리들, 그들의 그렇고 그런 사연을 영락없이 그려내는 수많은 조연들이 사뭇 돋보인다.

읍내 꼴꼴한 아저씨와 양아치들·무도장 사범·파출소 순사들과 수사대 똘마니들·출장 마사지하는 겉절이 아줌마·다방레지와 마담·노랑머리 꼴통과 그 깔치 ···. 동네 양아치 대장 그리고 노랑머리 꼴통과 그 깔치의 소갈머리 없는 한 쌍의 표정과 몸짓에 감동 먹었다.

오랜만에 보는 견미리가 잘 하긴 했어도 괜찮은 정도였다. 탈주범이 연기력이 좋긴 했지만 너무 매끈한 얼굴과 맵시가 좀 거슬렸고, 그의 애인 다방레지가 아직 끼를 제대로 폭발해내지 못한 듯한 잠재력이 느껴졌다. 그들의 사랑에서 들큰한 인공조미료 맛이 났으나 그리 거슬리진 않았다. 그리고 ‘주진모’도 나오니 잘 찾아보세요. ^0^(힌트 : 까맣게 몰랐다.) 


시골 읍내의 분위기를 이토록 자연스럽게 잡아내고, 그 수많은 조연들을 이만큼 천연덕스럽게 그려낸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사도 참 맛깔 난다. 사소한 구석구석에서 어쩌면 저렇게 맛있게 잡아낼까 무릎을 칠 정도로 웃음이 절로 터지고 실감나는 대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주인공 딸아이가 쬐끔 어설프긴 해도, 어린 것이 그 정도믄 잘 한 거다. )

‘닳고 닳은 년놈들’의 금과옥조 같은 대사가 쏟아진다. 이런 대사는 머리로 만들 수 없다. 몸으로 체득하지 않고선 나올 수 없다. “요런 말 맛, 지대로 안 사람 얼매나 있을랑가 모르것어~!”

그러나 동네 양아치를 ‘순박한 인간미’로 곱게 단장해 준 영화란 건, 영화 보고나서 하루 뒤쯤엔 알아야 한다. 도시사람들의 위선적인 달콤함에 비하면 시골 동네 양아치들에게 뚝배기 맛이 없지 않지만, 그 개차반들과 실제로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거머리처럼 눌러 붙는 골칫덩어리다. 주인공도, 형사라는 탈바가지만 썼지, 마누라 쌈짓돈이나 뒤지는 일종에 그런 놈이다. 이런 인간 말종의 똘마니 같은 놈들을, 요로코롬 매콤달콤한 양념 발라서 ‘순박한 서민’으로 맛있게 요리해낸 영화이다.


“주인공은 미남미녀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걸 곰곰이 따져보면, 누구나 품고 있는 허세와 허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허세와 허영이 우리 인간들에게 유난히도 드세긴 하지만, 때론 그 미남미녀의 주인공이 따분하고 질리기도 한다. 요 10여년 사이에 미남미녀가 아니면서도 주인공 자리를 꿰어차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영화뿐만이 아니다. 그 만큼 다양한 개성들이 널리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는 증거이겠다. 좋은 일이다.

주인공 김윤석도 그러하다. <타짜>의 ‘아귀’로 처음 만났다. 상당한 끼가 다가왔다. <즐거운 인생>에선 맹맹해서 좀 실망했는데, <추격자>에선 딱 어울렸고 대단했다. 이번엔 <추격자>의 그 이미지에 촌놈 맛이 좀 더 강해지니, 더 잘 어울렸다. 그 시골읍내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조연들과 엑스트라들과 함께 더도 덜도 아니게 영락없이 어울렸다. 그가 이런 분위기와 다른 역할도 잘 해낼지 걱정될 정도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5171&videoId=21329 

모내기 끝난 뒤 어느 시골 읍내에서, 오뉴월 소불알 늘어지듯이 축 늘어져 마냥 무료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 나무그늘 아래 평상에서 낮잠이나 한 볼테기 때리고자픈 오후에, 왱왱거리는 똥파리들의 푸드덕 날개 터는 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하다. 거기서 한 10년 쯤 퍼질러 살다 온 것 같은 기분이 온 몸에 적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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