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완장
  • 오주섭
  • 승인 2009.06.2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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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섭 (광주경실련 자치분권위원장)

70년대 시골에서는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밥을 해먹던 시절이라 땔감이 아주 귀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동네 근처 야산에 자루 하나 달랑 들고 동네 형들을 따라 솔방울을 주우러 다녔었다.

어느 날 누군가 알아듣지 못할 큰 소리를 질러댔고 동네 형은 내 손을 잡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숨을 돌려보니 어느새 마을 어귀에 와 있었고, 형들은 눈이 동그래진 나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까 그 산은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이 있는데 ‘산감(山監)’이라고 하며 완장을 차고 있고, 솔방울을 따다 산감한테 걸리면 혼쭐이 난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완장을 찬 사람들은 참 무섭구나 라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그 무서운 완장을 학교 선도부가 차고 있었다.  

무소불위 권력의 상징

윤흥길 작가의 대표작인『완장』이라는 소설이 있다.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땅 투기로 돈푼깨나 만지게 된 졸부 최 사장이 널금 저수지의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게 되고, 저수지 감시를 이곡리의 한량 임종술에게 맡긴다.

감시원 완장을 두른 종술은 완장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날 부로 안하무인격으로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발버둥 친다. 타지로 떠돌며 밑바닥 거친 일로 신물 나는 인생을 살아왔던 종술에게 완장이 금배지 이상으로 다가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작가는 한국인의 가부장적인 권위의식과 권력의식을 ‘완장’이란 상징물로 표현해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완장은 권력의 상징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엔  ‘완장’찬 사람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축구국가대표팀 주장으로 ’노란완장‘을 찬 홍명보와 박지성을 보며 ’어 아직도 완장이 존재 하는구나’라고 느꼈을 정도다.

그러나 MB정부 들어 소위 4대 권력기관인 검찰, 국정원, 경찰, 국세청은 다시 ‘완장’을 차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한 것을 보상받으려는 듯 과거 권위주의 시절로 빠르게 되돌아가고 있다. 대통령과 평검사가 맞장 토론을 하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다.
 
최근 진압복 차림의 전경들이 인도 쪽으로 달아나는 시민을 쫓아가 방패 모서리로 내리찍는 장면을 뉴스를 통해 보았다. 한 남성은 등에 방패를 맞고 그 충격에 슬라이딩 하듯 나가떨어졌다.

군인과 경찰 등 계급사회에서 상부의 암묵적인 동의나 지시가 없이 말단에서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권력 상층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말단 전경에게까지 전달되어 방패를 흉기로 사용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권력을 가진 집단이 국민을 섬기는 대상에서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MB정부, 완장 벗고 소통 나서길
 
한나라당은 MB악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단독 국회 개원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특히 언론 장악·재벌방송법, 마스크 처벌법, 안기부 회귀법, 휴대폰감청법등은 MB정부가 확실하게 ‘완장’을 차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우리 국민들은 수십 년 동안 독재정권과 싸우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해왔고,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역사가 후퇴하는 것을 결코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법철학자인 액튼 경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의 의미는 법을 제정하는 입법부, 만들어진 법에 따라 심판하는 사법부, 나라의 일을 주관하는 행정부 등이 고유의 기능에 따라 견제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권력은 사유화되고 부패하기 쉽다는 말이다.

소통을 거부하고 일방통행 식으로 밀어붙이는 절대 권력에 국민들은 등을 돌릴 것이고 결국 임기가 끝나면 현 정권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최근 제1야당인 민주당의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앞서고 있고, 중도개혁, 진보 등으로 나뉘어 있던 제 민주세력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MB정부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절대 권력의 상징인 ‘완장’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국민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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