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불러 모으는 신비로운 숲
물고기를 불러 모으는 신비로운 숲
  • 시민의소리
  • 승인 2009.06.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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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방조어부림

▲ 1500여m에 달하는 물건리 마을숲과 몽돌 해변.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물건리 바닷가에 서면 이성복의 시 ‘남해 금산’이 절로 떠오른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차르륵 차르륵 몽돌이 뒤척이는 소리며 한가로이 떠있는 고기잡이배와 하얀 돛을 달고 바람을 받으며 달리는 요트들까지(이곳엔 올해 남해요트학교가 문을 열었다)….

여기에 긴 머리 풀어헤치고 해풍에 자지러지는 마을숲을 온 몸으로 맞닥뜨리면 누구라도 시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시적 비의(秘意)가 가득한 공간 물건리 숲은 마을숲 중에서도 그 정취가 단연 빼어난 곳이다.

이름도 다양, 방풍림·방조림·어부림           

▲ 마을 북쪽 경사면에서 바라본 물건리 숲과 마늘밭.
마을숲을 설명하기 전에 마을 이름인 ‘물건’의 유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물건’에서 말 물(勿)은 ㄱ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용두산과 기러기산을 그리고 마을을 거쳐 바다에 닿는 두 시내를 조합했으며 수건 건(巾)은 마을 숲이 태풍을 막고 선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물건’이라는 마을이름은 마을 숲이 생성된 후 그 모양을 본 따 지은 상형(象形) 조합이라는 것이다. 

물건 어부방조림은 보존가치가 뛰어나 1959년 1월 천연기념물 150호로 지정되었다. 이 숲은 300~350여 년 전에 지형적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전주 이씨 무림군(茂林君. 조선 시대 정종의 막내아들 이선생(李善生))의 후손들이 조성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물건리 마을 노인회장이면서 무림군의 17대 종손인 이호명(79)씨는 물건리 숲의 시원(始原)을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바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해 전(1591년)에 조성됐다고 들었다”고 증언해 다소 견해가 엇갈린다. 

해안을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조성된 마을숲은 그 길이가 1,500여m, 폭 30여m에 이르고 면적이 8ha에 달한다. 마을숲은 바람과 폭풍의 피해를 막는 울타리 형 해안 숲으로 수고 10~15m에 달하는 팽나무, 푸조나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참느릅나무, 이팝나무, 말채나무 등 상층목 2천여 그루와 보리수나무, 동백나무, 광대싸리, 윤노리나무 등 하층목 2천여그루까지 1만여 그루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유한킴벌리와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06년 물건리 숲을 ‘잘가꾼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하고 복원 및 보전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다소 복잡한 이름을 가진 물건 방조어부림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첫째 거칠고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준다고 하여 방풍림(防風林)이며, 둘째 쉴 새 없이 달려드는 파도에 의한 해일이나 염해·조수를 막아준다고 하여 방조림, 셋째 숲의 초록빛이 남해를 떠도는 물고기 떼를 불러들인다 하여 어부림(魚付林)이다. 또한 여름철에는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와 휴양림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고기 어(魚)에 청할 부(付)자를 써서 고기를 불러 모은다는 뜻의 어부림(魚付林)으로 불리는 마을숲은 마을 사람들의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해가 지면 물고기가 숲 그늘을 따라 몰려들어요. 밤에는 숲 그늘에서 잠을 자고 날이 새면 먼 바다로 나가고…. 지금은 방파제를 막아 놓아서 예전만 못하지만 천금만금을 벌어다준 황금어장입니다.” 팔십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아직까지 마을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는 이호명씨의 증언이다.

숲의 짙은 녹색그늘이 바다에 드리우면 고기들이 깊은 바다로 착각하고 모여든다는데 어업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옛날에 숲을 만들어 물고기를 바닷가로 불러들일 생각을 했던 선조들의 지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

▲ 마을숲의 정취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
멸치와 마늘을 주 소득원으로 하는 반농반어의 전형적인 해안가 마을인 물건마을은 230가구 56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서 산다. 마을주민들은 마을숲을 고마운 존재를 넘어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마을숲은 강한 바닷바람과 해일 등을 막아 농작물과 마을을 보호해 주었다.

19세기 말 숲의 일부를 벌채한 다음 큰 폭풍과 대화재가 나 마을이 큰 피해를 입게 되자 “이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고 해 숲을 훼손하는 사람은 쌀 다섯 말을 마을에 내놓기로 약속하고 온 마을이 힘을 합쳐 숲을 지켜왔다.

마을사람들은 아직도 이 숲을 신성시 여겨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도 함부로 주워가는 일이 없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총대를 만들기 위해 나무 일곱 그루를 베자 마을사람들이 일본군의 대검과 총에 맞서 싸웠다고 한다. 그 결과 1933년 남해안에 엄청나게 큰 폭풍이 몰아쳤을 때에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고, 2004년 태풍 ‘매미’가 이 숲을 통과했지만, 숲 안들의 벼는 쓰러지지 않았다. 물건리 숲은 콘크리트 방조제보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태풍을 끌어안아 바람과 파도를 잠재웠던 것이다.

▲ 10여년 전 고사해버린 마을 숲 안 할머니 당산나무.
마을주민들은 마을입구 버스정류장에 있는 때죽나무와 숲 속에 있는 이팝나무를 당산나무로 모시고 음력 10월 보름날 동제를 거행하고 있다.

두 그루의 당산나무는 10여 년 전 모두 고사했지만 여전히 섬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노인회장이 주관하고 전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는 제의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는 음력 10월 초하룻날부터 제주는 일체의 외부출입을 삼가하고 몸을 정결히 한다. 부부관계 역시 금한다. 보름날 제사를 모시고 나머지 보름 동안도 몸가짐을 바르게 한 채 지내야 한다. 마을의 안녕을 위해 꼬박 한 달을 희생해야 하는 셈. 

제주는 2년마다 새로 뽑게 돼 있으나 적임자가 나서지 않아 지금의 노인회장이 6년째 맡고 있다.

제사는 마을 입구의 할아버지 나무와 숲속 할머니 나무 두 곳에서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숲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밥무덤돌에 제물을 갖다 놓는다. 이렇듯 동서남북 마을 수호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화합과 질서를 유지해 올 수 있었다.

물건리 숲은 워낙 풍광이 수려한 곳이라 보니 일출·일몰을 보려는 이들, 땡볕더위에 그늘을 피해 찾아드는 이들로 연중 넘쳐난다. 마을숲을 찾더라도 숲에서 텐트를 치고 버너를 켤 생각이라면 얼씬도 마시라. 부녀회의 주도로 마을주민들 모두가 숲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 행여 나무를 해치기라도 한다면 불호령은 고사하고 무슨 횡액을 당할지 모른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10여년 전 마을주민들이 동제를 지내던 할머니 나무에 건어망 업자가 섣달 그믐날 풍어를 기원하며 촛불을 켜고 치성을 드리다가 불 간수를 않고 그대로 가버리는 바람에 나무에 불이 옮겨 붙어 죽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업자는 얼마 되지 않아 사업이 망하고 가족들이 몸을 상해 숲의 영험함을 다시 사람들 기억 속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해안림의 모범으로 새로운 조명

▲ 기후온난화로 한반도 또한 태풍과 해일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해안림 조성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건리 마을숲은 수십 종의 나무로 이루어진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상록 활엽숲이다. 염해와 태풍의 악조건 속에서도 물건리 마을을 지킨 마을숲은 최근에 와서는 어부림 뿐 아닌 해안림의 효용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해안림은 그저 아름다운 숲이 아니라 해안지역 인간의 삶과 터전을 지켜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몇 해 전 동남아를 휩쓸었던 쓰나미 피해에서도 맹그로브 숲이 우거진 해안은 피해가 적었다고 한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근래에는 일본 북해도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우리나라 동해안이 직접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해안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해안림의 방재 기능을 뒤늦게 인식하고 2005년부터 전국 해안선을 따라 2000ha규모의 해안림 조성 10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본의 해안림 조성 비율이 95%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15%에 불과하다고 하니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셈이다.

연구에 따르면 제트기 속도와 맞먹는 시속 780km의 쓰나미가 폭 60m의 해안림을 통과할 경우 속도는 30%, 에너지는 10%로 급격히 줄어든다고 한다. 100m폭의 해안림이 조성되어 있을 경우 쓰나미가 들이닥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

물건리 숲은 이미 지난 2002년 ‘루사’와 2004년 ‘매미’때 해안림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높은 수령과 염분의 피해로 일부 나무가 고사하고는 있으나 후계목이 새로 자라나면서 숲은 저 나름대로 푸르름을 지탱해가고 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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