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빼고 다 똑같다”
“이름 빼고 다 똑같다”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9.06.25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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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불붙은 캐릭터 전쟁 ④위인 사례
끝나지 않는 이순신 신드롬 上

유사 축제 난립 · 지자체 불꽃 튀는 공방전

▲ 경남 통영 망일봉 세워진 이순신장군 동상.
전국은 지금 이순신 신드롬에 휩싸였다.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지역대표축제가 9개에 달하는가 하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나 소설 <칼의 노래> 등을 통해서도 이미 대중에게 친숙한 ‘스타’가 됐다.

정의로움과 용맹함, 기개 등을 두루 갖춘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면모는 때때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 원수와 비교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국민들 마음속에 신(神)격화 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지자체들의 관심 역시 사뭇 뜨겁다.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순신 기념사업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해남·진도의 명량대첩제, 통영의 한산대첩제 등 승전을 기념하는 축제는 물론 크고 작은 행사까지 다 합하면 100여개를 훨씬 웃돈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순신 기념사업에 수백억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 지자체들의 한결같은 이순신 사랑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나친 영웅화로 치부하기엔 ‘이순신 신드롬’은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도 지역민들에게 외면당하는 처참한 현실은 행정력 낭비와 예산 중복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기념할 대상은 온데간데 없고 연예인 축하 공연 등 이벤트성 행사로 전락한 기념행사도 부지기수다. 

이순신 신드롬을 과열된 지자체 캐릭터 공방의 대표 사례라 여기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다. 몇 개 지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이순신 신드롬’의 실체를 2회에 걸쳐 점검해 봄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 정부 주도로 이뤄진 ‘이순신 영웅화’

이순신 신드롬의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순신 성역화의 시초는 박정희 정권이었다. 민족 주체적 전통을 만들어 내 국민을 계발(啓發)하려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이순신 영웅화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 하려했다.

은정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1966년부터 시작된 현충사 성역화 사업은 이순신의 반일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친일 이미지 희석화, 이순신의 구국 영웅적인 이미지를 통해 군인 출신 대통령 통치 합리화, 이순신과 자신을 동일시 해 권력을 정당화했다”고 평했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아산 현충사를 민족의 성역으로 꾸미는 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됐다. 정부는 공간의 성역화에 그치지 않았다. 박정희 시대서 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진 성역화 사업은 국민들의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각계각층 인사들은 물론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로 집어넣는 등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통해 국민 대다수가 현충사를 참배토록 했다.

단순한 위인에 지나지 않았던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가 대중들 뇌리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  이로써 이순신 영웅화 작업은 완결적 구조를 갖추기 시작했고,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기념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이순신 기념사업

행사명

지자체

최초 개최 년도

행사 기간

성웅 이순신 축제

충남 아산시

1961년

매년 4월 28일 전후 5일간

한산대첩 축제

경남 통영시

1962년

매년 8월 14일 전후 5일간

옥포대첩 기념제전

경남 거제시

1963년

매년 6월 중순 2-3일간

군항제

경남 진해시

1963년

매년 4월 말-4월초 10일간

진남제-거북선축제

전남 여수시

1967년

매년 5월 4일 전후 3일간

당항포대첩 축제

경남 고성군

2001년

매년 7월 중 2일간

이충무공노량해전 승첩제

경남 남해군

2001년

매년 11월 119일 전후 3일간

명량대첩제

전남 해남진도

2006년

매년 10월 10월 중 3일간

*이순신 관련 지자체 축제 현황

정부 주도 하에 이순신 성역화는 향후 지자체들의 ‘이순신 사업’의 기반이 됐다.
 
지자체들이 ‘이순신 잡기’에 혈안이 돼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순신 장군의 역사적 가치 재조명을 이유로 장군의 영웅적 이미지를 지역에 덧씌우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

물론 실존인물인 위인들이 설화나 고소설에 비해 비교적 역사적 고증이 쉽다는 것도 한 몫 단단히 작용한다. 역사적 기반이 탄탄한 위인의 경우 허구성 논란에 휩싸일 염려가 없다. 더구나 역사서를 통해 선행 학습된 그의 업적은 대중들의 친숙도가 높아진 상태다.

더욱이 전쟁 영웅이라는 특별함은 지자체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전쟁터를 휩쓸고 다닌 그에게 연고지는 전국이나 다름없는 것. 이를 놓칠 리 없는 지자체들은 전쟁 기간 동안 해당 기간을 거쳐 갔다는 이유를 내세워 너도나도 이순신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충무공 사당과 현충사가 있는 충남 아산시는 충무공 탄생일을 기념하는 아산이순신축제를,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으로서 이순신 본영이 있던 곳인 전남 여수시는 진남제와 거북선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워 추모제를 거행해 온 경남 진해는 군항제를, 한산대첩 승전을 축하하는 경남 통영은 한산대첩제를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경남 거제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함대의 첫 출전이 이뤄졌단 이유로 옥포대첩기념제전을 열고 있다. 뒤늦게 축제 대열에 합류한 해남진도의 명량대첩제와 남해 노량해전승첩제 등 전국은 일 년 내내 이순신 축제 중이다.

▲특별한 것 없는 유사 축제

   
▲ 이순신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했다. <칼의노래> 등 문학 작품은 물론 이순신을 소재로 한 지역축제가 전국적으로 9개에 이른다. 또한 전남도와 경남도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이순신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문제는 이같은 사업이 엇비슷한 프로그램과 내용으로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행정력 낭비와 예산 중복이라는 비난이 뒤따르는 이유다. /사진=해남군청 제공
문제는 이순신 축제가 ‘거기서 거기’ 라는 데 있다. 이순신을 얼굴로 내세우곤 있지만 “이름만 빼면 다 똑같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엇비슷한 것. 역사문화 복원작업이 선행되지 않은 채 기념사업에 뛰어들다 보니 ‘지역’이란 연결고리가 드러나지 않는 것.

학술대회나 세미나 등 역사 연구는 뒷전이고 축제에 열을 올리다 보니 기념사업이 ‘단일행사’로 그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행사치레로 학술대회가 치러지는 등 체계적인 준비 없이 뛰어들다 보니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안전 불감증을 드러내며 인명사고가 발생한 여수 진남제는 대폭 삭감된 예산으로 행사마저 위태로웠다는 후문이다. 또한 통영 한산대첩제와 성격과 프로그램이 거의 흡사한 고성 당항포 대첩제 등 유사 축제로 인한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순신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할 뿐 구체적으로 이순신의 ‘어떤’ 업적을 기릴 것인지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된 것은 지역의 한계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지자체들이 ‘동네 축제’로 체면을 구겼다면 ‘이순신 프로젝트’가 한창인 경상도와 전남도의 공방은 가히 불꽃 튀는 접전이다.

겉으론 ‘교류’로 한 목소리를 내는 듯 하지만 속내를 들춰보면 프로그램 중복이 심상치 않게 발견된다. 거북선 복원사업, 이순신 광장 조성, 이순신 밥상 등은 이름만 다를 뿐 성격은 유사하다. 연일 매스컴을 오르내리며 논란이 되고 있는 이순신 사업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선점효과를 누리려는 것. 

경상도가 추진하는 ‘이순신 프로젝트’는 2015년까지 연차적으로 경상남도에서 개최하는 이순신 행사들을 한데 묶어 관광상품화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총 28개 사업에 1천 596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초대형 사업.

전남도 역시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이순신 사업이 한창이다. 전남도 축제로 승격한 명량대첩제를 전남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명량대첩 현창사업을 비롯 여수 이순신 광장 조성, 이순신을 테마로 한 고하도 충무연수원 조성, 거북선 크루즈 사업 등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 전쟁 영웅인 이순신 장군은 특별한 연고지를 찾기 어렵다. 전국을 무대삼아 전쟁터를 누비고 다닌 그의 흔적은 전국 곳곳에 분포한 유적에서 발견된다. 이를 놓칠리 없는 지자체들은 전쟁 기간 동안 해당 지역을 거쳐갔다는 이유를 내세워 너도나도 이순신 사업에 혈안이 돼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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