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의 문턱 넘어 ‘시인’되다
일흔의 문턱 넘어 ‘시인’되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9.06.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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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환선 옹의 시사문단 6월 신인상

“자연을 벗삼아 자연속에서 평생을 이름 모를 새 소리와 더불어 소리없는 흙을 근본으로 삼고 살면서 노래도 부르고 허전한 마음을 한 편의 글로 적고 싶었다. 한참을 적어 내려가다 찢고 또 찢고... 그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일흔이 넘어 늦깎이 시인이 된 류환선 옹(72)의 당선소감이다. 혼자 낙서하듯 써내려가다 찢어버리고, 또 써내려가다 찢어버렸던 수많은 글을 다시 내놓기까지 류 옹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류 옹의 당선시는 <여행>, <겨울 잠>, <봄에 내리는 눈> 등 세 작품으로 시사문단 6월호에 실렸다. 류 씨의 시는 자연에 깃댄 서정성이 강하고, 만라천상 자연을 지켜보고 느끼는 시적 화자의 고운 시심을 그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류 씨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디, 복분자, 논농사 등 평생을 고단한 농삿일과 함께 했지만, 가슴속에는 늘 응어리진 내면의 무언가를 분출하고픈 욕구가 있었다.

그는 농사짓는 작물들과도 교감을 나눈다. 쑥쑥 커가는 벼이삭을 보며, 까맣게 익어가는 복분자 열매를 보며 그는 노래도 부르고, 시도 읊는다.

몇 년전 프랑스로 선진지 견학을 갔던 때에는 개선문 아래에서 즉석 시를 읊으며 함께 간 동료들의 놀라움을 샀다. 손자들에게는 교훈의 글을 직접 써서 액자에 넣어 전해주기도 했다. 참된 세상을 바라보며 바르고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담아서다.

이야기 도중에도 지난 날 지었던 수많은 시의 싯구를 그대로 줄줄 읊는다. 그렇게 쓰고 싶었던 시를 이제는 당당히 내놓을 수 있게 됐으니 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함께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다시금 용기를 갖고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선배 작가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이다. 여기 그의 당선시 <여행>을 소개한다.

   -여 행-

얽히고설킨 게 길이런가
보일 듯 다 오를 듯 속고 또 속고

넘어져 썩다 만 나무랑 괴암 절벽 돌고 돌아
붙들고 움켜잡고
어렵사리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어언간 넘어온 게 칠십 고개 넘고 말았네

다 오르면 되리라 믿었는데
되돌아갈 길 보이질 않는데
팔다리가 저려옴은
아서라!
채울 것 하나 없는 빈 배낭 걸머지고
글도 행여 잃어버릴세라
묶고 또 묶어 본들
빈 가슴 하얀 가슴속을
채우려 하지 말고
기약 없는
먼 여행길 떠날 준비 하라 예고하네. /장성군민신문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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