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의 소름 돋도록 스산한 절규
<마더>의 소름 돋도록 스산한 절규
  • 김영주
  • 승인 2009.06.17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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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그는 드높은 이상과 강퍅한 현실 사이를 고민하고 헤매다가, 그 깊이 파인 낭떠러지에 추락하여 돌아가셨다. 인간 노무현은 변함없이 좋아했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좋다가도 싫었고 싫다가도 좋았다. 이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은 현실과 타협했고, 현실과 타협해야 할 일은 이상으로 추진하였다.
‘고운 정(情)’만으론 정(情)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를 너무나 좋아해서 ‘고운 정’을 쏟아 부은 만큼이나, 그를 너무나 실망해서 ‘미운 정’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 ‘미운 정’이 막무가내 ‘미운 정’이 아니라 ‘고운 정’에 겨워서 넘쳐난 ‘미운 정’인지라, 그의 죽음으로 만감(萬感)이 저며 들어 소용돌이친다. “노무현님!!! 님의 죽음에 애통하고, 이 세상에 분노합니다.”

<마더>, 김혜자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정신박약한 아들을 향한 보호본능 때문에 히스테릭하게 극성스런 엄마, 아들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천의 얼굴로 변신하는 억척스런 아줌마, 그러다가 그 극성과 억척이 또 다른 회오리에 휘말려 마침내는….

김혜자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평범한 어머니를 상징하는 ‘국민 엄마’이다…. <사랑이 뭐길래>, <전원일기>, <엄마가 뿔났다>…. 그녀는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생활 속에 농익어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온다. 어찌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 항상 그렇고 그런 뻔한 연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엔 가히 경지에 오른 달인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 뻔한 역할에만 매어서 맴돌고 있다는 게 늘 안타까웠다. 그녀의 어느 한 쪽에 깊이 숨겨져 있을 법한 구석을, 봉준호 감독이 영악하게 감지하여 그녀를 시퍼런 스릴러 영화로 끌어 들였다. 그녀는 마침내 그를 만나 그 숨겨진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소름끼치도록 펼쳐 보인다. 봉준호와 김혜자, 둘 다 대단하다.

엄마, 차~암 가슴 먹먹하게 미어지는 낱말이다. 자식을 향한 엄마의 애정은 그야말로 원초적으로 한없이 쏟아 붓는다. 그 원초적 애정이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지만, 철이 들고 나이가 들면서 그게 얼마나 원시적인 생명의 원동력인가를 이해하면서 ‘그 원초적 애정’이 우리 가슴에 옹이가 되어 박혀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옹이박이에 맺힌 죄송함을 씻기 위해 ‘어머니’라는 낱말에 거룩한 찬양을 거듭거듭 바쳐 올린다.

그러나 그건 그 엄마의 그 자식에게 그러하다. 남의 일로 멀찌감치 바라보면, 엄마는 너무나 치열하게 극성스럽고 너무나 막무가내로 억척스러우며 때론 남을 수렁에 빠뜨리고 희생시키는 ‘극렬한 이기심의 화신’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은 이 ‘극렬한 이기심’의 가슴살을 파고들어 헤집어서 ‘그 낭자한 핏빛 심장’을 날 것으로 드러내어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극렬한 엄마가 스산한 독기를 뿜어 시퍼런 소름이 돋아 오르는 심리적 스릴러이다. 심장을 단단히 여미고 보아야 한다. “아무도 믿지마, 엄마가 구해줄께!”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5546&videoId=21281
 
우리나라 최고다운 이병우 음악이 독특하면서도 튀지 않게 잘 어울렸고, 무대·미술·조명·의상·분장이 세심하게 배려되어 매우 자연스럽다. 소박해 보이지만 내공 깊은 정성이 담긴 밥상이다. 훌륭한 감독과 스텝의 역량이 맺은 결실이다.

특히, 아들이 오줌 싸는 우람한 콘크리트 벽·친절 봉사??? 어쩌구 저쩌구라고 쓴 경찰서 간판들·김혜자가 자기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며 번뜩이는 눈빛·저 멀리 롱샷으로 길게 잡아 하염없이 걸어가는 둔덕길·스산하게 바람 치는 외딴 집·물이 엎질러져 진구의 손끝으로 다가가는 초조함·아정이가 누워서 핸드폰 사진들을 훑어보는 장면·쌀떡 소녀의 숨겨진 핸드폰이 나타나는 장면·질컥대는 진흙탕 길 저 만치에 외딴 고물상·고물상 할아범의 관자놀 돌리는 흉내에 김혜자의 내지르는 괴성의 날카로움…. 스산하게 소름끼치는 장면들에 쫄아드는 심장을 여미느라 힘들었던 틈새로, 감독과 스텝이 “참 정성들여 만들었구나!”며 감동과 노고가 스며들어 왔다.

유럽 사람들이, 우리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음험하게 뒤틀린 속내’를 깊이 상징하는 이런 이미지들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겠나? 그들이 이 영화의 값어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이에 비하면 <박쥐>는 그들이 추구하는 ‘현대예술의 정신병적인 미감’에 그리 낯설지 않다. 그래서 깐느 영화제에서, <마더>는 불리하고 <박쥐>는 유리하다.

잘 만들었는데도, 내겐 10% 부족했다.  *우리나라 영화의 시나리오가 대체로 헐렁하거나 빵구가 많은데, 이 영화는 시나리오가 아주 탄탄하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부담스럽다. 

* 원빈의 연기가 괜찮았지만, 그 반듯하게 잘 생긴 얼굴을 제대로 지워내지 못했다. (<말아톤>에서 조승우는 제대로 지워냈는데….) 이마를 더부룩하게 덮은 채 구정물 흐르는 머리카락이 너무나 상투적이었다. 아들에 집착하는 그 말큼한 엄마가 바보스런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었을 리 없지 않은가?


*동네 백수 진태의 다부진 불량끼에 느물거리는 속물스러움을 보탰으면 훨씬 더 어울렸겠다. 표정연기가 좀 고지식하게 딱딱했다.

*죽은 소녀 아정의 얼굴이 그토록 가난한 애라고 하기엔 단아하고 귀티가 나서 실감나지 않았다. 철없이 좀 천박한 기운이 감돌아야 하지 않을까?

*진태가 친구 엄마인 김혜자에게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반말로 협박하며 돈 뜯어내는 장면은 무슨 뜻일까? 만약 뭔가를 더 덧붙여 말하고 싶었다면 좀 더 이해가도록 설명해 주었어야 했고, 그런 내용까지 덧붙여 말하기에 너무 벅찼다면 차라리 잘라냈어야 하지 않을까? 잘라내도 스토리 흐름에 전혀 지장이 없는데…. 괜한 욕심을 부린 것 같다.

*형사가 김혜자에게 엄마라고 부르는데, 그 ‘음색과 톤’으로 보아선 동네 아줌마의 애칭이 아닌 것 같다. 배우가 연기를 너무 오바했나?

*마지막 즈음에 아들 대신 잡혀 들어온 학생이 굳이 그렇게 어리버리한 모습이어야 했을까? 나라면 ‘조금 깡다구 있음서 약간 싸가지 없는 데, 경찰 함정수사의 협박과 득달에 잔뜩 겁먹은 듯한 모습’으로 그려가겠다.

*김혜자의 억새밭에서 춤사위와 버스에서 막춤에 도회적 냄새가 배어나서 그리 촌닭스럽지 못했다.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그래도 운전하는 쫄다구 형사와 얼굴 흉터 여학생의 조연 연기가 훌륭했다. 앞으로 기대한다. 대중재미 : 시퍼런 스릴러를, 즐기는 사람에겐 A+, 즐기지 않는 사람에겐 B+·영화기술 A0·삶의 숙성 A0.
 
***봉준호 감독에게 많이 서운한 게 있다. 그가 진보적 감독이기에 더욱 그러하다.(이창동 봉준호 장준환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감독은 기본적으로 같은 코드를 가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표현양식이 다르다.

난, 이창동 봉준호 장준환의 표현양식을 좋아하고,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의 표현양식은 싫어한다.) 그는 <괴물>에서 ‘국가권력의 횡포와 허세’를 무던히도 비아냥거렸다. 이 영화에서도 형사를 상징으로 삼아 ‘국가권력의 횡포와 허세’를 개똥 보듯이 비아냥댄다. 그런데 능글거리고 뺀질거리는 형사들의 말씨에 ‘전라도 냄새’가 났다.

그 동안 우리는 “전라도 놈은 종자가 나쁘다!”는 ‘한국판 인종차별’의 사회구조적 이미지 작업에 얼마나 시달려왔나? 그 뒤에는 국가권력을 등에 없고 그 꿀단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핏대를 세우는 ‘경상도의 집단이기주의’와 그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서울 깍쟁이’들이 도사리고 있다.

전라도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고, 경상도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전라도에도 좋은 경찰 나쁜 경찰이 있고, 경상도에도 좋은 경찰 나쁜 경찰이 있다. 예술성이란 그 어떤 상징적 이미지를 얼마나 은유적으로 절묘하게 잘 담아내느냐가 관건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걸 A급으로 잘 잡아내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횡포와 허세’의 이미지는 단연코 경상도 쪽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전라도 냄새가 나는 나쁜 경찰을 그 이미지로 잡아 그리고 있다. 현실을 왜곡하는 잘못이다. 그리고 그 잘못은 아마 '한국판 인종차별'이라는 사회구조적 이미지 작업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그가 미처 배려치 못한 사소한 실수였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그 동안의 피해의식으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민감했다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민감해야 하는지 “졸라 서글프고 쪽 팔린다.” 우리 전라도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 쪽팔려야 하나! xx! ‘이토록 억울한 천형(天刑)의 땅, 전라도’가 그의 높은 예술적 역량에서 빗나간 게 너무나 서운하다.

그가 진보적 감독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가 일부러 그리한 건 아닐 꺼라 믿겠다. 노무현님이 전라도 민심을 이상하게 뒤틀어 버린 것에 만감(萬感)이 겹쳐 씁쓸한데, <마더>까지 이런 일로 사람 쪽팔리게 만든다. 비 내리는 곳에, 눈발이 날리더니, 무서리까지 깔리는구만! 개~같은 날들이다. ‘찬양과 박해’가 “인간의 한 조각이겠거니~”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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