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제삿밥 받아먹는 마을숲
해마다 제삿밥 받아먹는 마을숲
  • 시민의소리
  • 승인 2009.06.02 13: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 마을숲을 복원하자
④충북 단양군 단성면 뒷들숲·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윗당숲

인간에게 있어 나무는 어떤 존재일까. 오랜 옛날부터 나무는 인간에게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먹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인간은 나무를 이용해 자신과 신들의 거처를 지었다. 나뭇잎은 옷이 되기도 했다. 벼락을 맞은 나무에 불이 붙으면서부터 인간은 신의 선물인 불을 얻게 되었다. 물론 신화에서는 신이 불을 가져다준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스신화의 프로메테우스도 그중의 하나다.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과거만 해도 장작과 나무 화석인 석탄이 유일한 연료였다. 인간은 자신의 보호자이자, 의식주와 에너지를 제공해준 나무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인간은 나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 때문일까. 우리가 먼 길을 달려 찾아다니고 있는 마을숲은 그 기원에서부터 종교적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우주목 신화를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을숲은 마을신앙의 대상으로 삼거나 마을수호신이 내려오는 장소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이렇게 조성된 마을숲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을 살면서 마을주민들에게 해마다 제삿밥을 받아먹는다.

제의는 정기적으로 거행되는데 음력 정월에 지내는 곳이 많다. 이때 마을주민들은 마을의 평안과 풍요와 번영을 기원한다. 제의 명칭은 당산제, 당제, 산신제, 서낭제(성황제)가 많다. 이렇게 제삿밥을 받아먹는 마을숲은 일반적으로 당산, 성황림, 서낭당, 신림, 수살매기, 골매기, 액막이 등으로 불리면서 마을공동체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마을공동체의 불문율로 지켜온 뒷들마을 서낭당숲

충북 단양군 단성면 북하리 뒷들마을 서낭당숲은 제삿밥을 받아먹는 전형적인 마을숲이다. 마을 북쪽 경작지에 타원형의 단을 쌓아 조성한 이 숲에는 느티나무 노거수 10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서낭나무인 느티나무 2그루는 가슴높이 둘레가 4.5m에 이르며, 두 신목 사이에 있는 서낭당과 금줄로 연결되어 있다. 마을 앞 죽령천에도 마을숲이 조성돼 있는데, 하천제방을 보호하기 위한 호안림으로 느티나무 28그루가 제방을 따라 1열로 200m가량 이어져 있다.

▲ 죽령천을 따라 조성된 뒷들마을 하천숲.

이 마을에는 120여 가구에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워낙 깊은 산골마을인 탓에 논농사는 거의 짓지 않고 대부분 마늘, 고추 등 밭작물을 경작하면서 생계를 잇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 저녁 7시경에 당숲에 있는 서낭당에서 ‘당고사(서낭제라고도 함)를 지낸다. 당고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농악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걸립’을 하여 마련하며, 제의는 유교식 절차에 따라 거행한다.

마을주민 고문재(78) 옹의 이야기를 옮긴다.

“고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제관과 도가를 뽑아야 합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사주를 버봐 두 명의 제관을 뽑는데 그 분들에게 당고사를 맡깁니다. 그리고 집안에 궂은일이 없는 사람 중에서 도가를 뽑아 제물장만을 맡깁니다.” 

“제물로는 삼실과, 포, 닭, 나물 그리고 백설기를 시루 째 올립니다. 축관, 제관, 도가로 뽑히면 부부관계도 못하고 담배도 못 피웁니다. 또 고사를 지내기 2~3일 전에는 마을 노인들이 왼새끼로 금줄을 꼬아 서낭당과 서낭나무에 치고 부정한 것들의 출입을 금하는데, 평소에도 서낭당에는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렇다. 마을숲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는 금기였다. 당고사를 지내기 위해 정성을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발길을 많이 타다보면 숲이 훼손되지 않겠는가.

이 마을 뒷산인 두악산 정상에는 소금단지가 묻혀 있는 ‘소금무지’가 있는데 매년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이곳에서 ‘소금무지제’를 지내고 있다. 이 제사는 1985년 충주댐 건설로 군청이 신단양으로 옮기면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단성향토문화연구회가 1994년부터 행사를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에 전하는 전설을 들어보자.

“단양은 예로부터 불이 자주 나서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도인이 지나가다 단양의 단(丹)과 양(陽)이 모두 불을 상징하는데다 단양의 진산인 두악산이 불꽃모양이라 불이 자주 나고 불이 나면 강바람과 어울려 큰 불이 되니, 화기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두악산 정상에 소금 항아리와 물 항아리를 묻어야 한다고 하여 항아리를 묻고 소금무지제를 올려 화기를 잡았다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소금과 물이 없어지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가 물과 소금을 붓고 소원을 빌면 득남한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정월이면 젊은 여자들이 목욕재계를 한 후 소금과 물을 가지고 올라가 소금무지와 물항아리를 보충한다고 한다.

신령스런 기운 넘치는 성남리 윗당숲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2리는 치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깊은 산골짝이지만,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외지인의 발길이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다. 이 마을에는 7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주말이나 휴가철에만 와서 사는 외지인을 제외하면 실제로 60여 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 마을 안에서 바라본 윗당숲.

6·25 직후에는 화전민 100여 가구가 들어와 살기도 했으며, 마을 초등학교에 학생이 150명이 넘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20여 년 전 화전민들이 떠난 뒤로 분교가 되었다가 지금은 폐교되었다.

이 마을 입구에서 양쪽으로 이어지는 윗당숲은 무당들 사이에서 신령한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많은 무당들이 내림굿을 받으러 찾아오기도 했으며, <전설의 고향>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전형적인 온대낙엽활엽수림인 이 숲은 ‘활엽수의 박물관’, ‘초본식물의 보고’라고 불릴 정도로 종 다양성이 높아 1961년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마을 앞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윗당숲’은 길이 500m, 면적 5.4ha에 이르는 큰 숲이다. 목본식물만 총 34과 53속 91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소나무와 복자기를 비롯하여 층층나무, 느릅나무, 고로쇠, 졸참나무, 들메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돌배나무, 산벚나무, 버드나무, 찰피나무, 말채나무 등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그 아래에는 광대싸리, 각시괴불나무, 복분자딸기, 누리장나무 등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성황님(서낭님)’을 마을수호신으로 모신다. 음력 4월 7일과 9월 8일에는 윗당숲 속에 있는 성황당에서 농사풍년, 아들점지, 무사태평, 신병쾌차 등을 기원하는 성황제를 거행한다. 원래는 밤늦게 제를 지냈는데, 7~8년 전부터 원주시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기관장들이 참석하게 되어 오후 5시경으로 앞당겨졌다.

당집은 2000년에 부식재와 지붕을 보수했으며 숲 속에서 가장 큰 전나무(높이 29m, 가슴높이둘레 4m)와 음나무(높이 20m, 가슴높이둘레 3m)의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신목으로 섬기는 전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더 높게 우뚝 솟아 있어 신화시대의 우주목을 연상하게 한다.

이 마을의 성황제는 7~8년 전부터 문화재청과 원주시의 지원을 받아 거행되고 있다. 제물은 부녀회에서 장만하는데 돼지 한 마리, 시루떡(시루째), 메(솥단지째), 탕, 삼실과, 북어포 2마리, 오색과자, 그 철에 나오는 나물, 술 등이다. 원주시 지원을 받기 전에는 부정한 일을 당하지 않은 집을 ‘도가’로 선정하여 그 집에 금줄을 치고 제물을 장만하게 했으며, 당집에 묻혀 있는 단지를 이용해 옥수수로 술을 빚었다.

▲ 마을 밖에서 바라본 윗당숲.

마을주민 이병섭(83) 옹에 의하면, 제의는 진설, 부정풀이, 맑은 부정, 초헌, 아헌, 종헌, 독축, 소지의 순으로 진행된다. 부정풀이는 마을의 연장자 중에서 깨끗한 사람이 진행하는데, 바가지에 맑은 물을 떠서 숯을 띄운 다음 그 물을 당집 안 여기저기에 뿌리면서 “동네 모든 부정한 것 멀리 떠나게 해주십시오.”하고 축원한다.

맑은 부정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동네가 전부 깨끗하게 해주십시오.”하고 축원한다. 그 다음에는 백색과 청색 도포에 유건을 갖춘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축관, 집사가 나와 유교식 절차에 따라 제의를 진행한다. 독축이 끝나면 먼저 성황님 소지를 올리는데, 소지가 잘 타지 않고 떨어지면 성황님이 제물을 잘 못 잡순 것으로 여기고 잘 올라가면 잘 잡순 것으로 여긴다.

개인들의 소지를 올릴 때는 집사가 호별로 호명을 하면 초헌관이 축원을 해주는데, 이때 소지가 잘 올라가지 않으면, 한 해 동안 그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소지가 끝나면 장소를 옮겨 ‘수부’에게 제의를 올린다.

수부는 신목으로 섬기는 전나무 앞에 있는 느티나무로, 마을주민들은 이 나무가 성황님을 지켜준다고 믿고 있다. 수부에게는 떡시루, 메, 삼실과 등을 제물로 바치고 “나뭇가지 하나 부러지지 않도록 잘 지켜주십시오.”라고 축원하면서 소지를 올린다. 그런 다음 제사가 모두 끝났음을 알리고 당집 앞마당에서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음복을 한다.

마을주민들은 한결같이 “이 동네가 이만큼이라도 유지되는 것은 모두 숲 때문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숲을 보호하는 데 정성을 다하고 있다. 또한 성황제를 통해 신목을 섬기는 것도 부족해, 신목을 지켜주는 ‘수부’라는 나무를 따로 정해 제의를 올릴 정도로 성황목과 당숲에 대한 주민들의 종교적 관념이 각별함을 알 수 있다.

수목숭배의 오래된 전통

그렇다면 한국의 수목숭배는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나무에 경작지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거처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단군신화의 신단수가 그 시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전통마을의 당산과 서낭당도 이 신단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나무로 구성된 당산이나 서낭당은 마을의 수호신이며 신과 교통할 수 있는 신성한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마을주민들은 신목을 함부로 훼손하면 벌을 받고 신목에 치성을 올리면 병을 고치거나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너무나도 무엄한 시대이지만, 아직까지 소중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마을숲을 섬기는 그런 겸손함을 현대사회의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다면, 아마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태적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김경대 기자·정명철 전남대 문화재학 박사과정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