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년 전에 준비해둔 생태문화의 비전
361년 전에 준비해둔 생태문화의 비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9.05.2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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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마을숲을 복원하자
②전남 담양군 담양읍 관방제림

담양으로 가는 길,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5월의 햇살이 따갑다. 긴 소매 옷을 입었는데도 햇살이 살갗 깊숙이 파고든다. 그 길에서 만난 산천의 빛깔은 온통 갈맷빛이다. 운전대를 잡은 채 마주쳐오는 산천을 눈여겨보니, 그 짙은 초록빛이 다 다르다. 겹겹이 다른 초록들이 얽히고설켜 짙은 갈맷빛을 연출해낸 것이다.

관방제림에 도착하자, 외지에서 찾아온 관광버스 예닐곱 대가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다. 웰빙숲으로 소문난 죽녹원의 인기를 실감한다. 관광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대나무처럼 길게 이어져 대숲으로 들어간다. 죽녹원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관방제림은 호젓하다. 호젓함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기다랗게 이어진 터널 같은 숲길로 빨려 들어간다.

▲ 따가운 5월 햇살을 나뭇잎이 재차 흩뿌려 시원해 보인다.

관방제림은 36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숲이다. 수령 400년에 이르는 거목들과 마주치며 걷는 숲길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람들은 나무들이 뱉어낸 신선한 공기를 깊이 호흡하는 것을 좋아한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관방제림 숲길에는 연인들이 많다. 제방을 따라 2km 가량 이어지는 숲길은 데이트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그들의 뒷모습이 무척 다정하다.

2004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숲>으로 선정되어 대상을 차지한 것이 공연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길이 끝나면 곧바로 담양의 또 다른 명물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로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담양은 숲의 고장이다. 죽녹원, 메타세쿼이아 숲길, 그리고 관방제림까지 있으니 말이다.

1648년, 담양부사가 홍수 막으려 조성한 호안림

담양읍 북쪽에는 추월산, 용천산, 금성산 등 높은 산이 많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있듯이 가막골 같은 큰 골짜기도 많다. 그래서 장마철이 되면 담양읍에 물이 순식간에 불어난다. 지금은 댐이 생겨 홍수조절이 가능해졌지만, 옛날에는 홍수로 인한 피해가 아주 심했다고 한다.

▲ 1648년 담양부사가 홍수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호안림.

관방제림은 이러한 지형과 기후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하천 제방에 조성된 마을숲은 물이 갑자기 불어났을 때 제방의 붕괴를 막는 호안림(護岸林)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호안림 역할을 하는 관방제림은 용천산(龍泉山) 용연(龍淵)에서 발원해 담양읍 북쪽을 감싸고 돌아나가는 영산강 줄기의 제방에 조성되어 있다. 제방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숲길은 담양읍 남산리 동정마을에서 시작하여 객사리를 지나 천변리에 이르며, 50~400년 된 노거수가 숲을 이루고 있다.
관방제림을 조성한 주인공은 담양부사 성이성(成以性)으로, 조선 인조 26년(1648) 해마다 반복되는 수해를 막기 위해 하천에 둑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에 둑을 보수하여 홍수에 대비했다.

또한 철종 5년(1854년)에는 황종림(黃鍾林) 부사가 관비로 연인원 3만 명을 동원하여 담양읍 남산리 동정마을에서 수북면 황금리를 지나 대전면 강의리에 이르는 현재의 둑을 완성하고 숲을 조성했다. ‘관방제(官防堤, 관에서 막은 제방)’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 숲은 당초에는 1.2km 정도였는데, 지속적으로 후계림을 조성하여 현재는 4km에 이르고 있으며, 성이성 부사 시절에 심어진 나무는 수고 20m, 흉고둘레 3m가 넘는 거목으로 자라났다. 현재 관방제림에는 푸조나무(111그루), 팽나무(18그루), 벚나무(9그루), 서어나무(1그루), 음나무(1그루)을 비롯하여 왕버들, 이팝나무, 곰의말채, 검팽나무, 느릅나무 등 각종 낙엽활엽수들 420여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1980년에 10년생 느티나무 350주를 보식했다.

1991년에는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366호로 지정되었으며, 그 구역 안에는 노거수 180여 그루가 왕성한 생명력을 뽐내며 서 있다. 

▲ “담양만큼 시원한 동네는 없다.” 관방제림은 담양읍민들은 물론 인근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도 자주 찾아온다. 거목이 내려주는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마을 주민들.
1976년에 담양댐이 완공되어 홍수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관방제림은 호안림의 기능보다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995년 이후 민선자치가 실시되면서부터는 후계수를 식재하는 것은 물론 주차장, 구름다리, 정자, 벤치, 가로등 등을 설치하여 관방제림 일대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숲과 연결되어 추성경기장이 들어서 있으며, 지역축제인 대나무축제가 이 숲과 죽녹원을 거점으로 하여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담양만큼 시원한 동네는 없다”

숲길로 들어서자, 바람이 어찌나 시원한지 5월의 이상고온 현상도 맥을 못 춘다. 자전거를 타고 숲길로 들어온 김락규(75. 담양읍 천변리) 할아버지는 “다 돌아다녀 봐도 담양만큼 시원한 동네는 없다”면서 페달을 힘차게 밟고 지나간다.

관방제림은 담양읍민들은 물론이고 인근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도 자주 찾아오는 휴식공간이다.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주머니,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 마을 주민과 여행객 간에 묘한 경계가 있는 듯하지만, 그다지 뚜렷하지는 않다. 사는 게 곧 여행이고, 여행이 곧 삶이 아니겠는가.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인 담양읍 객사리로 3년 전에 돌아왔다는 이봉단(77) 할머니는 혈압으로 세 차례나 쓰러져 잘 걷지도 못하지만, 매일 같이 운동 삼아 관방제림에 나온다.

“여름에는 여기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요. 객사리에서도 오고 천변리에서도 오고,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화투도 치고,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나눠먹고. 외지에서도 돗자리 갖고 와서 하루 종일 놀다가고 그래요. 담양이 경치 좋고 시원하다고 유명이 났어요. 얼만 전에는 대나무굿을 크게 했는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말도 못해요.”

축제를 ‘굿’이라고 하는 할머니의 말처럼, 지난 5월 2일~7일까지 6일 동안 ‘자연 그대로, 향기로운 담양’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1회 담양대나무축제에는 무려 100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16만5천290㎡(약 5만평)의 죽녹원에 심어진 대나무 숫자보다 관광객 숫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는 후문도 들린다.

또한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관방제림에서 군민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거행하고 있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담양문화원 사무국장 고재종(53) 시인에 의하면, 당산제를 지낸 후에는 달집태우기와 민속놀이가 이어지는데 1,000여 명의 군민이 참여할 정도로 장사진을 이루고 흥겨운 축제마당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러한 지역 축제의 성공은 관방제림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 공은 마땅히 36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성이성 부사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영산강 자전거 길은 숲길로 조성돼야

얼마 전, 국토해양부는 4대강 하천 제방에 총 연장 1,297㎞의 자전거 길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중에 영산강 하구언에서 담양댐까지의 212㎞ 구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자전거 길을 만든다고 하천제방을 따라 아스콘이나 콘크리트 포장을 할 것이 아니라, 관방제림과 같은 제방숲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그 수종이나 식재 방법 등은 마땅히 관방제림을 모델로 해야 할 것이다.

▲ 징검다리를 건너 관방제림으로 가는 관광객들.

그리고 영산강 숲길 조성사업에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참여방안이 있겠지만, 나무를 기증받아 식재하고 그 기증자 가족의 이름을 나무에 걸어주는 방안을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광주천 역시 마찬가지의 방안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이 115.5km의 영상강 제방을 따라 두 줄기로 기다랗게 이어지는 거대한 숲길. 길이 11.8km의 광주천을 따라가다 영산강 숲길과 합류하는 도시 숲길.

100년 후 그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분명히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성이성, 황종림 부사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전라남도지사 아무개, 광주광역시장 아무개의 이름을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기증자 가족의 이름표를 목에 걸고 나무는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기증자 가족은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휴식을 취하거나 나무의 상태를 살필 것이다.

100년 후 세계가 부러워하는 숲길, 누구나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숲길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그 거대한 숲길을 내려다본다고 상상해보자. 담양에서부터 광주, 나주, 함평, 무안을 거쳐 목포까지 이어지는 숲길의 대역사와 대장정을.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아니 대한민국의 생태적 경쟁력이 그려지지 않는가? 그 생태적 비전을 관방제림은 벌써 361년 전에 예비해두고 있었다. /김경대 기자·정명철 전남대 문화재학 박사과정           

호안림이란 무엇인가?

전통사회의 생태적 사고는 처음부터 인간과 자연, 과학과 미신을 구분하지 않는 공생의 철학이고 상생의 철학이었다.  마을숲을 조성했던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모든 정보를 찾아냈다. 전통사회의 존속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위협도 자연이었고, 인간을 위협하는 힘을 차단하고 극복하는 해법도 자연이었기 때문이었다.

생업 자체가 전적으로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농경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의 힘을 빌려 마을숲을 조성했다.

마을숲 역시 자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유지와 보존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우순풍조(雨順風調)를 기원하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풍작을 기원했으며, 홍수와 태풍을 막는 방재벽으로 마을숲을 이용했다.
호안림(護岸林)은 마을숲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이다. 전통사회에서 호안림은 물의 공급처를 안정시키는 장치로 인식되었다. 천수답이 많은 옛날에는 천택(川澤)이 농사의 근본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하천이나 저수지의 보가 수리관개 시설의 중심이 되어왔다.

또한 하상계수(河狀係數)가 큰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도 호안림을 조성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는 저수지를 파거나 물길을 돌려막은 다음에는 반드시 제방을 쌓고 그것을 안정시키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

이와 더불어 마을 앞 합수처에 심어진 호안림은 제방의 침식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풍수신앙에 따라 수구막이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또한 제의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여름철에는 마을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호안림은 토양유기물을 공급하고 물고기의 서식처를 제공해주어 하천생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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