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문화의 전통, 마을숲을 복원하자
생태문화의 전통, 마을숲을 복원하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9.05.1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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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마을숲을 복원하자 <1> 프롤로그

마을숲은 생기 넘치는 자연에 깃들어 그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문화적 이상이었다. 마을의 생김새나 지형이 생태적으로 상서롭지 않을 때는 마을숲을 조성하여 그 생명의 기운을 마을 공간에 담아두고자 했다.

또한 마을숲은 생태적 사고의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신앙의 실천이었고 풍수적 관념의 실천이었으며, 자연재해로부터 삶의 공간을 보호하기 위한 과학의 실천이었다. 이런 이유로 전통사회의 가장 우선적인 요구가 먹고 사는 문제였음에도 금싸라기와 같은 땅을 숲으로 만들고 불문율을 통해 마을숲을 유지해왔다.

▲ 전남 담양군 담양읍을 관통하는 하천을 따라 조성된 관방제림은 한국의 마을숲을 대표하는 문화자원이다.

총15회로 예정된 이 연재의 목적은 마을숲이 지니고 있는 전통적 가치를 재해석함으로써 그 실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마을숲 문화콘텐츠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마을숲을 두루 살펴볼 것이다.

아마도 기능적·형태적 특성이 뚜렷한 마을숲을 찾아내기 위해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농촌, 산촌, 어촌 그리고 도시로 이어지는 머나먼 여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전국의 마을숲을 대상으로 하여 그 유래와 조성원리 등을 살펴보면서 마을숲 기능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재적 활용방안을 탐색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회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광주라는 도시공간에 마을숲 문화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다양한 측면에서 탐구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광주시가지를 관통하고 흐르는 광주천과 극락강을 비롯하여 아시아문화전당, 양림동근대문화유산지구, 중외공원 등 다양한 도시공간에 마을숲 문화콘텐츠를 적용하면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문화도시-광주’의 생태적 비전을 디자인할 것이다.

이렇듯 마을숲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중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문화유산이며, 미래의 도시공간을 생태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대안의 문화자원이다. 잔존문화가 아니라 활용문화로서 마을숲이 지니고 있는 현재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다양한 분야에서 병행되어야 함을 절감하면서 <생태문화의 전통, 마을숲을 복원하자>라는 제하(題下)의 연재를 시작한다. 독자제현의 관심과 호응 바란다. <편집자주>


어쩌면 너무나 익숙해서 무심히 지나칠 때가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나 인근의 농촌, 산촌, 어촌 마을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유난히 돋보이는 마을숲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것은 네댓 그루의 거목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거목이 큰 숲을 이루고 있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하여 조성된 마을숲은 그 마을을 오붓하고 안정적인 보금자리로 만들어 준다.

마을은 인간의 존재성이 표현되는 대표적인 공간이며, 숲은 자연의 존재성이 표현되는 대표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을숲은 마을과 숲, 혹은 인간과 자연이라는 두 이질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공간이다.

▲ 전남 무안군 망운면 목동리를 감싸고 조성된 마을숲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마을숲은 인간적이면서도 자연적이다. 인간이 만든 다른 공간과 달리 자연적인 요소가 훨씬 더 많이 깃들어 있고,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숲과는 달리 문화적인 요소가 훨씬 더 많이 깃들어 있다.

실제로 마을숲은 일반적인 산야의 숲과는 식생(植生)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마을숲은 수종이 다양하지 않고 단층림(單層林)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마을숲은 인위적으로 보존되면서 마을 공동체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연재에서는 ‘산야에 자생하는 숲과는 달리 인위적으로 보존되면서 마을의 역사, 문화, 신앙이 표현되어 있는 숲’을 마을숲의 개념과 범주로 삼는다.

마을숲, 성(聖)과 속(俗) 혹은 안과 밖의 경계

마을숲은 마을의 문화적 상징으로 작용한다. 마을을 수호하는 신이 되기도 하고 신과의 소통로가 되기도 한다. 제의가 전승되고 있는 마을숲은 일상성과 신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신앙의 대상이 되고 풍수적으로는 비보(裨補)와 압승(壓勝)의 장치가 된다.

일상적으로는 여러 가지의 세속적 기능을 담아낸다. 홍수, 태풍, 파도와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되기도 하고 휴식, 모임, 놀이 등과 같은 여러 가지 활동을 수용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마을숲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마을의 물리적·심리적 중심이 되어 왔다. 마을숲을 벗어나 마을 밖으로 나가면 그곳은 여전히 불안과 혼돈 뿐인 무질서의 세계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마을을 떠나 있는 사람에게는 마을 안의 세계가 언젠가 돌아가야 할 어머니의 가슴같이 포근하고 따뜻한 안식의 땅으로 기억된다.

마을은 자신과 가족과 이웃의 삶을 지켜주는 공간이고, 마을숲은 질서와 조화의 세계를 완성시켜주는 튼튼한 장벽이며, 불안과 혼돈의 외계와 구분되는 경계인 것이다.

그러나 신화와 제의가 사라지면서 마을숲의 전통적 기능이 점점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마을숲은 마을 경관에서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식량증산이 가장 우선이던 시절에는 논두렁을 반듯하게 다듬고 경작지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마을숲의 나무를 베었다. 공업화가 가장 우선인 시절에는 공장을 짓기 위해, 도시화가 가장 우선인 시절에는 택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마을숲을 송두리째 밀어버리기도 했다.

▲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방조어부림.

현대사회에서는 이렇게 마을숲의 전통적 가치가 의미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 기능인 종교적 기능이나 풍수적 기능이 더 이상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재해 방지의 기능도 많은 부분에서 효용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급속한 공업화와 도시화의 틈바구니에서 형해(形骸)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잔존문화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마을숲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을숲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소음공해 등에 대한 방비책을 오래 전부터 예비해 두고 있었다. 또한 역사와 문화의 교육공간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열려 있고, 생태적인 도시공간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도 마을숲의 기능이 검토될 수 있다.

현대사회 위기 극복할 대안 문화자원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마을숲의 정신문화적 의미를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 신목이 마을에서 사라지고 있고 마을의 가장 큰 행사인 당산제나 서낭제와 같은 동제도 점차 전승이 끊기고 있다. 심지어 아무 두려움도 없이 신목을 베고 마을숲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통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무례하고 무엄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생태적 재앙은 인간의 영혼이 오염되면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이성만을 중시해온 탓에, 다른 동물들이 아직까지 지니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이제 인간은 자연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연은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기호들이 무엇을 경고하는지 읽을 줄 아는 자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경고는 이성만을 고집하는 오만하고 무지한 인간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뿐이다.

신은 마을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말은 어쩌면 참일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단지 설계도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은 동구에 들어서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지만, 도시는 집 대문에 들어서야 겨우 마음이 놓인다. 이런 정서적 차이를 가져오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을숲 때문이다.

마을숲은 그 기원에서부터 생태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고대사회의 인간은 자연적 재난을 인간의 힘으로 모두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연의 부조화가 성에서 속이 분리된 데서 온다고 믿고 신성한 숲을 조성하고 수목숭배를 통해 재난을 극복하려고 했다.

마을숲 조성배경의 하나인 풍수적 사고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풍수라는 개념에서부터 인간은 우주적 요소인 바람과 물을 기본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풍수는 결국 바람과 땅, 물과 땅의 생태적 만남이다.

▲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만송정 숲.

마을숲은 인간에 의해 조성되고 보호되기는 했지만 결국 자연이 가꾸어낸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그 주변의 존재를 나눠놓고 봤을 때, 마을숲은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면서 식물·동물·곤충·미생물 등이 살아가는 작은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생물종의 다양성을 오래 전부터 실현해온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이용가치가 거의 없는 생물자원이었지만 마을숲은 인류의 생존과 관련된 미래의 자원을 그렇게 비축해두었다.

더욱 고마운 것은, 마을숲은 인간에게 많을 것을 선물하면서도 쓰레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공산품은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사용하고 난 후까지 자연생태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질들을 지구에 남긴다. 그리고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인간은 물론이고 자연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재앙이 되고 있다.

하지만 마을숲이 남긴 낙엽이나 나뭇가지와 같은 부산물은 박테리아나 곰팡이에 의해 유기물로 분해되어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연이 남긴 그것들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 자연을 키운다. 우주적 순환의 원리가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김경대 기자·정명철 스토리텔링사업단 기획스토리 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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