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귀하처(一歸何處)’ - 빙 돌아 고향 일세
‘일귀하처(一歸何處)’ - 빙 돌아 고향 일세
  • 범현이
  • 승인 2009.04.30 1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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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불성(佛性). 작가 ‘석주 박종석’(52)

▲ 박종석 작가.
지난 겨울 오르막길에 차를 세워두고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갑자기 눈이 내려 쌓이면서 미끄러워 차를 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차를 움직이며 다시는 이 길에 차를 세우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진월동, 작업실을 찾아 도착해보니 바로 딱! 그 자리였다. 다행이 눈은 오지 않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웃음이 나왔다.

건물 3층, 작업실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빼곡히 그림보다 책이 더 많은 분량으로 지지대를 세우고 있었고, 세계 오지를 여행하면서 가지고 들어 온 여러 가지 형태의 불상들이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미세한 생명체가 움직이고 있는 작은 불국(佛國)같았다. 불두(佛頭)와 불상(佛像), 불교관련 각 나라별 다른 형상들...

“더 많은 불교관련 불상들과 그림이 이미 송광사 성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세계 오지를 여행하다보니 여러 나라들의 불상을 만날 수 있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사모았는데 전시를 기획하면서 그림들과 어울려 같이 전시를 하게 되었다”고 작가는 웃으며 말한다.

▲ 석주 박종석 作 「새벽예불」

그림으로 만나는 불심(佛心)들


19년 동안 쉬지 않고 오지여행을 다녔다. 그가 생각하는 그림은 책상 위 머릿속에서 나오는 그림이 아닌 화구를 들고 직접 발로 걸으며 즉석에서 그려지는 그림이다. 보는 즉시 마음의 인연이 와 닿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에 들어가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 석주 박종석 作 「마하보디 사원」
유럽이나 일본은 근 거리 국가이고 아프리카의 남아공, 짐바브웨, 잠비아. 남미의 브라질, 페루, 아마존정글 탐험,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터키, 그리스, 이집트, 중국대륙 10회, 실크로드와 대만, 인도6회, 스리랑카, 파키스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네팔8회, 티베트 탐험3회, 그리고 2007 에베레스트 로체 원정대 참가 등 오지탐험을 위주로 세계문화유적을 탐방하면서 5000여점의 여행 스케치를 했다.

“세계 문화유적을 찾아 오지여행을 하다 보니 불교는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왔다”며 “문화유적이나 유산을 찾아가다 보면 가장 기본이 되었던 정신은 불교였고 그런 연유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림 안에 불교가 젖어들어 온 이유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모든 여행은 자양분이 되어 작가의 그림 안에서 고스란히 빛을 발하며 신문 잡지 등에 여행스케치 연재를 하기도 한다. 또, 작가는 한학(漢學)에 밝고 능통에 이 지역 중심의 아직 알려지지 않은 호남전통회화사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학포 양팽손의 예술과 사적고찰>,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절개>, <학포 양팽손의 묵죽도에 관한 연구>, <부러진 대나무> 등을 집필했다.

화살은 몸을 뚫고 선의 경지를 만들어 내

▲ 석주 박종석 作 「룸비니 석가 탄생지」
초기작품은 진경산수가 주조였으나 여행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그의 그림들은 담채로 표현하는 스케치 형식의 작품들이 많아졌다. 붓다와 관련한 성지들을 찾아가며 보이는 곳에서 들고 간 화구를 펼쳐두고 바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작업이 되었다. 일상처럼 하루의 과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부다가야금강좌>에서는 부처가 마지막 깨달음을 얻었던 보리수나무를 보여준다. 사진으로 자주 봐왔던 나무 한그루가 담채로 표현되어 다른 이미지를 선물한다. 연두 빛과 더 짙은 청록이 초록은 한 가지 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주며, 은은하면서도 마음 넉넉해지는 명상도 덤으로 가져다준다.

<룸비니 석가탄생지>나 <사르나트 녹아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제된 마음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푸른 하늘과 붉은 벽돌로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웅장함을 최대한 살려주며 여행 스케치만이 갖는 묘미를 살려준다.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백미는 <새벽예불>이다. 밝은 광채로 빛나는 중간과 계단을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으로 착각하기 쉽다. 음영의 표현이 너무나 근사해 충분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조금 더 눈을 크게 떠 보면 깨달음의 대웅보전인 새벽예불을 볼 수 있다.

오른 쪽에 날아가 박혀있는 화살과 왼쪽의 모퉁이에 피어오르고 있는 가느다란 연꽃.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한참 동안 그림 앞에 발목을 잡힌다.

빛나는 부처 아래 새벽예불을 드리고 있는 스님들 위로 꽂혀진 화살. 단지 허리를 굽혀 108배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자신의 내면으로 좀 더 깊숙이 내려가 더 뼈아픈 성찰을 했을 때, 묵언으로 드디어 화두를 내려놓았을 때, 마음 한 구석에서 비로소 깨달음 하나를 얻으며 진흙탕 속에서 가느다란 연꽃 한 줄기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삶이란 이런 성찰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화살이 내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 혹은 뾰족한 화살하나 무거운 바위처럼 가슴 안에 담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깊어지는 인생이다.

다시 돌아와 보니 마음의 고향은

▲ 석주 박종석 作 「부다가야 보리수나무와 금강」
작가의 그림은 스스로 깊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깊어지는 그림이다. 들여 다 볼수록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 앞으로 견뎌내야 할 시간들이 보인다.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은 하심(下心)이다. 오십이 넘었지만 잠들기 전까지는 늘 책을 가까이한다. 시대와 타협하지 않았던 올곧은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찾아 교량 역할을 해내고 싶다. 삶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미약한 점들이 모여 역사의 한 획을 되기를 바란다”

‘석주 화상이 자재한 선필을 들고 시방천지를 만행한 지 20 성상입니다. / 아주 낮고 어두운 곳을 심방하며 수고중생들의 행주좌와를 동체대비의 화폭에 또박또박 새겼습니다. / 그가 향리에 돌아와 때묻은 걸망을 풀어놓습니다. / 그가 펼쳐 보이는 만다라에는 현세의 극락과 지옥이 활구로 요동치고 있습니다. / 석주화상은 설합니다. / “빙 한 바퀴 돌았지만 결국은 고향이더이다.” / 隨處皆故鄕인가 萬處歸故鄕인가. / 석주가 탁발해 온 염색공양을 흠향하며 외지에 만발한 고향소식을 살펴보는 것도 한 즐거움이 되리라 싶습니다. / (헛소리, 마음이 떠돌고 있는데 고향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 한송주(언론인, 송광사 편집장)

일시 : 8월31일(월)까지
장소 : 송광사 성보박물관
문의 : 061-755-0108

▲ 석주 박종석 作 「송광불도(松廣佛道)」

에필로그


사람은 그 나이만큼 살아간다. 열여섯은 열여섯만큼 생각하고 서른하나는 서른하나만큼의 나이로 살아간다. 만만해 보이는 세상에 빨리 날개를 달고 싶어 한다. 잠깐 머무르는 이 세상에서 그 많은 눈물과 침잠, 묵언이 필요한 것임을 왜 간과하는 것일까. 쏟아 낼 눈물과 엄청난 고통을 치루지 않고 서른하나가 마흔여덟의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마음 안, 보여주지 않았던 흔적을 보니 아팠던 상처가 다시 떠오른다. 삶이란 다가갈수록 서로에게 잔혹한 흔적을 남기는 선인장이다. 다시 혹, 이별이 와도 서로 큰 아픔 없이 돌아설 수 있을 만큼, 버려도 되는 가벼운 추억만 서로의 가슴에 만들어야 할까보다. 왜 사람들은 모든 것이 떠나고 사라져버린 후에 비로소 후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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